KAIST 대학가 숨은 맛집, 오염된 혀를 치유하는 찜닭 본연의 맛
"닭볶음탕이 별거 있어?", "닭볶음탕 아니라니까!" 그 집 괜찮다는 무리 대장을 따라 무심히 찾아간 곳은 '맛있는 이야기 세번째 우물'. 대전 KAIST 대학가인 어은동 한 골목 상가 2층에 자리했다. 간판은 큼지막하다. "세번째? 분점인가", "아니래두" 농을 주고받으며 올라간 식당. 인테리어는 백반집과 돈가스집 사이 어딘가처럼 소박하다. 테이블이 열석이 안 됐다.
메뉴를 보니 궁중찜닭/빨간찜닭 단 두 종이다. 고기와 쌀, 배추는 국내산, 2인에 16000원이니 1인 8000원꼴. 맛도 좋으면 가성비를 충족한다. 무리는 두 패로 나눠 궁중찜닭과 빨간찜닭을 주문했다.
드디어 음식 등장. 채도가 낮은 양념에 담긴 각각의 찜닭이 나왔다. 찜닭이라기보단 닭볶음탕에 가까웠다. 찬은 콩나물과 무짠지가 다다. 위에 얹어진 채소는 큼직하니 신선해 보인다. 우리쪽 자리는 자리는 궁중찜닭. 심심해 보이는 색감에 센 맛일 거라는 기대를 내려놨다. 불을 올려놓고 수다를 떠는 동안 슬슬 올라오는 풍미가 은근한 기대를 하게 한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이성 친구를 기다리는 느낌이다.
'퍽퍽살' 부위인 가슴살도 뜯어봤다. 탄력 있게 찢어졌고 식감은 부드러웠다. 잘 다져진 오믈렛을 먹는 느낌이다.
일본 드라마 중에 '고독한 미식가'가 있다. 중년 사내가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게 다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사내는 반찬 하나를 먹어도 맛이며 식감이며 만든 과정까지 별 만상을 떠올린다. 한두 편 봤을 뿐인 이 드라마가 생각난다니···이 음식을 인정한다.
고기를 다 먹고 국물에 밥을 볶아 치즈 토핑을 얻었다. 치즈는 뭐든 치즈의 종속으로 만들어버리는 강한 맛이 있다. 그런데 원래 음식의 풍미가 치즈에 지지 않았다. 아쉬운 입을 달래주는 좋은 후식이 됐다.
소박한 음식을 요란하게 먹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 대학가 인심으로 양도 많았는데 다 먹었다.
식당 주인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가게 이름 '세번째 우물'의 뜻을 물었다. 주인은 "성경의 인물 이삭이 주변국들과 평화를 위해 판 광야의 세 번째 우물"이라며 이번 식당이 두 번째 식당을 접고 차린 세 번째 식당이라고 했다. 입가심으로 받은 조그만 사탕은 상쾌했다.
외식에 지친 입맛이라면 이 식당을 추천한다. 타지에서 오랜만에 집에 온 자식에게 끓여주는 엄마의 요리에 세련된 이모가 간을 한 '치유의 맛'이다.
▲궁중찜닭/빨간찜닭. 소(2인) 18000원, 중(3인) 27000원, 대(4인) 31000원. 주차장은 따로 없다. ▲대전 유성구 어은로 48 10-5 2층 ▲042-825-5200 ▲평일 11:30~21:00, 토요일 11:30~21:00, 일요일은 저녁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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