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뛰어든 과학자③] 美 제임스 메디슨대 최영배 교수

"한군데 가만히 붙어 있지를 못했어요. '새로운 기회다' 싶으면 연구소, 기업, 학교 계속 떠돌아다녔죠.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느새 융·복합연구를 할 수 있겠더라구요."

미국 제임스 메디슨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영배(46) 교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최 교수는 전공을 수시로 바꿔 2개의 석사학위와 1개의 학제간 박사(Interdisciplinary Ph. D.) 학위를 갖고 있다. 직장생활 역시 연구소, 기업체, 학교를 두루 거쳤다. 일단 그는 전남대에서 계산통계학을 배웠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공학으로 전공을 바꿔 전산학 석사(1985)를 마쳤고,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리 캔자스대학에서는 컴퓨터 네트워킹 전공으로 다시 석사학위(1991)를 받았다.

그 후 미주리 캔자스대학에서 애드리언 탱(Adrian Tang) 교수의 지도를 받아 네트워킹과 텔리커뮤니케이션 두 분야에 걸친 복합 전공으로 각각 1992년과 199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력 또한 이채롭다.

박사 학위를 받고 그는 1996년 3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프로토콜 엔지니어링센터(PEC)에서 에서 박사 후 과정(포스닥)을 밟았고, 연구팀 리더를 맡았다. 당시 ETRI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쿠퍼티노에 있는 미국 컴팩(Compaq)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1998년 12월부터 1년간 컴팩에 파견되어 소프트웨어 개발매니저로 일하며 두 직장에 근무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2000년 7월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건너온 그는 실리콘밸리의 인도 IT 벤처기업 'Birlasoft'라는 소프트웨어 컨설팅 회사에서 시니어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그 후 싱가포르 다국적기업인 'CREATIVE Technology'라는 초고속통신 관련 IT 회사로 옮겨 1년 여간 연구개발담당 수석엔지니어로 일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몸을 담고 있는 제임스 메디슨 대학에서는 그가 전공한 분야가 아닌 상과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전공, 직장, 국가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미있게 살자'는 그의 인생철학이 있었다. 여기에 전공분야에 대한 남다른 욕심도 있었다.

"IT 분야의 기술은 생명력이 짧기 때문에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사과정 때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셨던 애드리언 지도교수의 영향도 컸어요. 아카데믹한 컨퍼런스 보다는 실제로 우리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해 스스로 '나는 떠돌이 인생'으로 말하기도 하는 최 교수는 어느 순간 돌이켜 보니 오히려 그러한 다양한 경험이 자신에게 큰 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보다 자유스러운 연구와 교육을 위해 그가 제임스 메디슨 대학에 지원서를 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측에서는 학교, 연구소, 산업체 경험이 있는 그가 외국인이지만 컴퓨터와 텔리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기반으로 경영학을 가르치기에 손색이 없을 거라고 평가하며, 수많은 후보 중에서 그를 선택했다. 고생도 많았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계속 길어지면서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진로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해 혼자 결정을 내려야 했다는 것.

"제가 가는 길은 다 처음이었어요. 전남대에서 KAIST 전산학과에 진학한 선배도 없었고, 전공을 바꿀 때도 경험을 나눌 사람이 없었죠. 처음 걷는 길이었기 때문에 벤치마킹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외롭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기만 하단다. 최 교수는 "불확실한 미래에 내 인생을 걸어보는 위험한 도박과 같다고나 할까요. 비록 실패하더라도 한번 과감히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는 점이 많고, 그 실패 경험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전공 고집 말라"...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교육

최근 학제 간 공부를 점차 강조해 나가는 미국 대학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산업계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고 학생들을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연계할 계획이다. 한국과의 교류에도 적극 나서 공부할 기회를 마련할 생각도 갖고 있다. 특히 통신분야의 한국 교수들과 휴직이나 연구연가 형식으로 상호방문 등을 통해 정보를 교류할 예정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요. 4년 반 또는 5년 졸업이 아주 일반적이죠. 여러 분야를 접목할 수 있을 정도로 2~3가지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죠. 저로서도 잡탕처럼 공부한 것이 오히려 가르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현재의 연구개발 흐름은 한 가지 전공으로는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과학자가 융·복합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공을 너무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 고생은 하겠지만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서 적어도 연구에 있어서 만큼은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 되라고 충고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휴먼 네트워크를 쌓는 일에도 부지런하다. 미국 과학자협회(SRS)인 시그마 사이(Sigma Xi)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국제적인 통신산업관련 포럼인 'TeleManagement Fourm'에서 국제적으로 기술기고서 기고활동이 활발한 사람에게 주는 'Outstanding Contribution Award'를 1998년에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전기및전자공학회(IEEE) 회원으로 2004년에는 'IEEE 커뮤니케이션 매거진'의 부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재미과학기술자협회(KSEA) 일에도 앞장서서 움직이고 있다.

"연구에는 '오픈 마인드'가 매우 중요하죠. 물론 노력이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글쓰기 준비 '착착'...새로운 도전위해 이력서 관리

최 교수는 바쁜 일상 속에서 에세이식의 글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들을 글로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는 "누구나 해보는 흔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그간 내 마음 속에 있는 내면적인 투쟁의 결과물들을 글로 보여줄 생각이예요. 인터넷 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출판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도전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력서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도전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력서입니다. 저는 사소한 내용이라도 일단 자세하게 기록해 놓습니다. 단순한 기록 보다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경력 위주의 이력서를 만들어 놓습니다."

덧붙여 그는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 없죠. 균형있는 국제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도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 교수는 서글서글한 눈 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이다. 46살이 아닌 30대처럼 보이는 이유는 '재미있고 도전적으로 살자'는 그의 인생철학이 마흔을 훌쩍 넘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인 듯 하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국제 무대를 누빌지 기대해 본다.

미국 캘리포니아 = 문정선 기자 jsmoon@hellodd.com

* 이 기사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www.kosen21.org)의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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