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를 잡아라!" 국내 ADSL 업계가 일본 최대 통신사업자인 NTT가 발주한 150만 회선 규모의 ADSL 장비를 수주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에 맞선 NEC 등 일본 업체들의 수성도 볼만하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NTT 그룹은 최근 분할된 동(東) NTT 및 서(西) NTT,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 자회사인 NTT 아카 등 3개사가 ADSL 장비를 공동 발주키로 결정하고, 1차분 150만 회선을 발주했다.

이번 발주는 모뎀이 제외되고 시스템(DSLAM)으로만 한정됐다. 회선당 가격이 20만원선임을 감안하면 대충 3천억원 규모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발주인 셈이다. 사업 제안서는 다음달 4일 마감된다. 또 다음달 중순쯤 현장 테스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국내 업체 누가 뛰나

국내 업계의 중심에는 한국통신이 있다. 한국통신 가재모 글로벌사업단장은 "NTT는 한국통신이 보증해주길 원한다"며 "한국통신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이를 위해 장비 업체를 소싱하고 있는 중이다.

가 단장은 "현재까지 현대네트웍스, LG전자, 이스텔시스템즈, 미디어링크 등 7개 업체가 NTT 입찰에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중 한 곳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 단장은 그 이유에 대해 "150만 회선이면 국내에서는 큰 규모지만 일본에서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일단 기술력이 담보된 한 업체를 선정한 뒤 추가로 대형 물량이 발주되면 국내 다른 업체에게도 분배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현대네트웍스가 일본식 제품을 먼저 준비해온 만큼 이번 NTT 입찰에는 현대가 낙점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승철 현대네트웍스 사장은 "일본 장비는 국내와 달라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점이 적지 않아 고민했지만,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한국통신 ADSL 장비를 독점한 삼성전자의 경우 참여를 망설이고 있다.

가 단장은 "보름 전에 삼성전자에 제의했는데 아직 답신이 없다"며 "더 기다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황호연 차장도 "아직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아직 내부 방침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밖에 머큐리도 일본향 제품을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적수는 누구인가

이번 입찰은 3파전, 혹은 4파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한국통신 컨소시엄이 가장 강력하다. 일본은 NEC, 후지쯔, 쓰미또모 등 3개 업체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일본의 경우 이제 ADSL을 시작하는 단계지만 NEC와 후지쯔 등은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가 단장도 "NEC와 후지쯔가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4파전 이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국통신 컨소시엄에서 낙점되지 못한 국내 제조업체가 별도로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도 아예 없잖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업체의 숙제

이번 입찰을 낙관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에 발주된 제품이 일본식이라는 점. 국내 업체가 ADSL 경험이 많지만 이번 제품에 대해서는 꼭 그렇다고만 할 수 없다.

이스텔시스템즈 이재호 연구소장은 "국내 제품은 '어넥스A' 타입인데 이번에 제품은 '어넥스C' 타입이어서 별로 준비를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어넥스A는 일반 전화선(PSTN)에서 돌아가는 ADSL을 뜻하며 어넥스C는 디지털종합정보통신망(ISDN)에서 도는 ADSL을 의미한다. 특히 국내는 ISDN을 거의 쓰지 않는데다 일본의 ISDN은 독특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또 이번 일본 제품은 핵심 칩도 센트리움칩을 써야 한다. 국내에서 쓰던 칩과는 다르다.

박승철 현대네트웍스 사장도 "기술진이 이번에 발주된 제품의 사양을 분석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와 이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특히 NTT가 기술사양을 너무 촉박하게 제시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TT가 일본 업체에게 유리하기 위해 기술사양을 늦게 공개했다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한국통신이란 브랜드 네임을 제외하면 불리한 구석이 많다는 뜻이다. 또 제품 개발과 양산에 따른 노력이 많이 드는 만큼 수주를 한다해도 자칫하면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아이뉴스24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이구순기자 cafe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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