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글 : 유상연 과학칼럼리스트

 

종이에 전기를 흘려주면 어떻게 될까? 직접 실험을 해봤더니 신기하게도 전기를 받은 종이가 '부르르'하고 떨렸다. 담뱃갑 종이는 물론이고 껌종이, 복사용지, 셀로판지까지 닥치는 대로 모두 가져와 실험을 하니 떠는 정도가 달랐다.

수천 번의 실험 끝에 셀룰로오스 함량이 종이의 떨림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펄프에 많이 함유된 섬유질, 즉 셀룰로오스 함량이 높은 종이가 더 잘 떨렸던 것이다. 이런 종이실험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놀랍게도 잠자리처럼 가볍게 날 수 있는 비행기로봇, 초소형 벌레로봇, 초경량 우주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미항공우주국(NASA)은 이러한 종이의 특성을 이용해 화성 표면에 수많은 종이비행기를 띄워서 관찰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뿐 아니다.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 기술로 만든 초박막 렌즈를 붙이면 종이 정찰로봇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고, 전자책(e-paper)이나 지능형 벽지로도 개발이 가능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기초연구 단계이기 때문에 먼 미래의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한가지 다행인 것은 종이의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기작동종이(EAP, Electro-Active Paper)'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인하대 기계공학과 김재환 교수라는 점이다. 김 교수는 종이에 전기를 걸었을 때 떨린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지난 2003년부터 본격적인 원인 규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전기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원인 몇 가지를 찾아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고체에 전기를 흘려주면 떨림 현상이 발생하는 압전효과와 종이 내부의 결정과 비결정 부분을 옮겨 다니는 전하 움직임이 힘으로 바뀌는 이온전이현상이다. 지금은 종이 성분을 바꿔가며 정전기적 특성을 측정하는 실험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이다. 이제 떨림 현상을 일으키는 몇 가지 원리만 더 밝혀내면 MEMS기술과 결합하는 연구만 남게 되고 김 교수의 예정대로라면 2009년경에는 종이와 안테나, 회로를 하나로 합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현재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NASA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로선 종이 위에 얇은 안테나와 고주파 신호를 전기로 바꿔주는 회로를 덧붙이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만약 종이의 움직임을 완전히 이해하고 무선을 이용한 전기공급까지 가능해진다면 '종이로봇'도 만들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종이의 아주 미세한 떨림을 이용해, 잠자리나 나비처럼 아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거운 배터리를 싣고 다니지 않고도 10~20기가헤르츠(GHz)의 전파만 쏘여주면, 수신된 전파를 이용해 이동하는 데 필요한 동력과 수집한 정보를 되돌려 보내는 데 필요한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NASA가 김 교수팀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공동연구를 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움직임이 부드러운 소형 비행체나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현재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사람처럼 걸을 수 있는 휴보나 아시모와 같은 로봇도 등장했고, 달걀을 집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한 로봇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로봇들의 움직임은 알고 보면 무척 단순하다.

모터를 활용한 회전운동이나 피스톤에 의한 직선운동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움직임이 정교해질수록 로봇의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로봇들은 에너지 소비가 많기 때문에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물계의 움직임을 모방해 좀더 자연스럽게 동작하는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최근에는 팔 근육 움직임을 모방한 인공 근육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나 이런 인공근육도 잠자리처럼 가볍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로봇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반면 전기작동종이를 이용한 종이로봇 기술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특히 가볍고, 작은 종이로봇은 모터의 회전운동으로 가동되는 금속성 로봇과 달리 뼈 근육 등 생체조직과 유사한 종이재질로 이뤄져 거부감이 없어 실생활 적용 가능성이 더 높다. 전쟁터, 또는 테러나 재난 상황에서 무인 정찰 및 촬영 등 전문적 분야에도 활용 가능하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관문들이 많다. 종이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종이의 전기적 특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 종이가 습도에 민감하게 작용하는데다 아직까지는 종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할 만큼 전기를 공급할 수 없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필요가 발명을 불러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미래는 긍정적이다.

탄소나노튜브, 전도성 고분자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종이 위에 입혀 출력을 더 키우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금까지 연구성과와 계획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해외 연구자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NASA가 연구비를 지원하고 공동연구를 요청한 것도 그렇다. 종이에 전기를 흘려본다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가 언제쯤 결실을 맺게 될지 기대된다.

* Kisti의 과학향기에서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따라서 Kisti의 동의 없이 과학향기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배포등을 금합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