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마당] 수자원공사 '물'...강과 사람이 시작하는···

어둑한 갈잎나무 숲을 오른다. 이파리 하나 없는 겨울 숲은 깊은 묵언수행 중이다. 암묵의 숲길을 올라 산봉에 다다를 때 비로소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저 바람은 대간을 훑고 지나는 바람이다. 머나먼 남쪽 지리로부터 시작되어 온 대간의 진로는 사선으로 북동진하며 나누고 합침을 번복한다. 대간줄기는 태백을 지나며 구봉산 자락에서 낙동정맥과 만나고 이 둘은 다시 합쳐져 동해안을 따라 수평을 이루며 백두로 나아간다. 태백은 본격적인 직북진을 위해 대간마루가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남풍은 지리로부터 오고 북풍은 백두로부터 온다. 지리에서 온 것인지 백두에서 온 것인지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이 겨울산봉을 사방으로 세차게 넘나든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태백은 제 몸을 다 내어보인다. 겨울의 태백은 풍성한 잎들로 치장한 패셔너블한 산이 아니다. 골과 골 사이 봉과 봉사이의 깊은 속살이 다 들어난다. 새벽 칼바람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은 칼바람 때문인 것 같으나 칼바람 때문만은 아니리라. 새벽의 능선에 서서 밝아오는 동녘 해의 온기를 따라 시선을 훑다보면 덥혀진 심장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아득히 멀어지는 대간의 첩첩능선. 이곳은 백두대간마루이며 민족의 젓줄 한강이 시작되는 발원지이다. 태백산과 함백산을 중심으로 해발 1,500m 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지며 백두대간의 줄기를 이루는 태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악지대이다. 주변 환경이 워낙 척박해 논은 아예 구경할 수도 없고 밭은 겨우 전체면적의 4%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말 그대로 예전의 태백은 화전 마을이었을 뿐이다. 한때 태백은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첨병구실을 했다. 1935년부터 탄광업이 들어서면서 외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석탄산업은 이곳의 주 수입원이 되었다. 한창 번창했을 무렵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우리나라 석탄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에너지원이 바뀌면서 석탄산업은 차츰 쇄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사북을 비롯한 주변의 다른 탄광지역은 거의 폐광촌이 되어버렸고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새로운 길이 모색되고 있다. 바로 관광산업이다. 척박하게만 여겨졌던 자연환경이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인식되면서 태백의 관광산업은 해마다 수십만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다소 엉뚱하게 고한에 카지노랜드가 들어서며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를 표방하기도 했지만 태백산맥을 근간으로 펼쳐진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모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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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강을 내려보내고 한강 발원지- 검룡소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이다. 강의 발원은 그 강을 거슬러 가장 먼 곳의 샘을 찾아야하는데 북한강의 발원은 북한지역인 강원도 금강군 옥밭봉(1,240m) 자락이며 남한강의 발원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의 금대봉(1418m) 자락 검룡소이다.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북쪽의 골지천을 따라 오대산 자락 우통수에서 흘러온 오대천을 합류시키고 다시 정선, 영월, 단양, 충주를 흘러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서울을 거쳐 서해바다로 빠져나간다. 강의 총 길이 514km. 길이로 보면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다음으로 길다. 그러나 국토의 중심을 흐르는 지형적 특성과 역사적 상징성으로 인해 한강은 그 길고 너름에 관계없이 우리나라의 으뜸 강으로 인식되고 있다. 검룡소에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용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온다. 서해바다의 이무기 한마리가 용이 되고자 한강을 거슬러 검룡소까지 왔다. 이곳에 자리를 튼 이무기는 마을의 소들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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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난 마을사람들은 돌로 소를 메워버렸고 이무기는 메워진 소에서 용트림만하다가 결국은 용이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마감한다. 검룡소에서 20m 구간은 마치 이무기가 몸부림치던 모습의 형상으로 움푹 패어있으니 이 전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다만 신기한 노릇이다. 겨울아침. 검룡소를 오른다. 칼바람에 숲은 말랐으나 정갈하며 길이 완만해 부담없는 산책길이다. 인적없는 길을 걸으며 천을 보았다. 온통 얼어붙어있다. 내심 샘까지 마르지 않았을까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태백의 또 다른 발원지(낙동강) 황지연못이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솟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검룡소는 그보다 훨씬 좁고 훨씬 춥다. 검룡소에 다 와가도록 천변은 꽁꽁 얼어있다. 두터운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안함은 기우였다. 이무기가 몸부림을 치던 그 좁은 낭하로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푸른 요기와 얼음과 시원의 신령함이 검룡소 주변에 가득했다. 흐르는 강을 보며 공자는 말했다. "흐르는 것이 저와 같구나" 솟아 넘치며 흘려보내는 강의 시원 앞에서 혼자 주절거렸다. "시원의 샘은 얼지 않고 저와 같이 솟고 또 흐르는구나" 강을 따라 흐르던 구성진 아라리 자락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을 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는 두갈래로 흘러 온 강이 하나로 아우러지는 것을 뜻하는 지명이다. 골지천, 오대천, 지장천, 용탄천, 어천, 임계천의 작은 천들을 합류시킨 강은 강원도골 골산골의 북과서를 휘돌며 꾸불꾸불 흐르다가 정선 아우라지에 이르러 송천을 만나 조양강이 되는데 이 강은 정선땅의 서남쪽에서 영월군으로 빠져나가며 남한강의 상류줄기인 동강이 된다. 영월의 동강으로부터 한양에 이르는 남한강 물길은 수도와 강원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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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로 근접하기 어려운 물산들이 죄다 한강의 수로를 통해 오고 갔다. 배들이 오가던 구간은 북한강 물목을 따라 춘천, 남한강 물목을 따라 영월까지였다. 특히 세금으로 거둬들이던 세곡의 운송로로 한강은 큰 역할을 했다. 강원도, 충청북도, 경기도 내륙의 세곡들이 한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갔다. 강이 지나는 요소요소에 나루와 강창이 들어섰고 이 부근 마을들은 한강 하구인 강화, 김포를 비롯한 수도권에서 올라오는 각종 수산물과 생필품의 보급로 역할을 하며 번성을 구가했다. 한편 나라의 큰 공사가 있을 때마다 강원도 산골의 질 좋은 목재들이 뗏목을 타고 서울로 수송되었다. 특히 1867년, 대원군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중건할 때 영월과 정선땅의 뗏꾼들은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에 동강은 여울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밑천 잡으러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뗏꾼들로 흥청거렸는데 '떼돈을 번다'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 남한강 상류지역 주민들의 생활수단이자 교통수단으로 숱한 사람들의 애환과 땀이 배어있던 뗏목은 철도 등 교통의 발달과 경제발전으로 연료사용이 장작에서 연탄으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수운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져 뗏꾼의 구성진 아라리자락도 강마을의 번성도 모두 옛 기억이 되어버렸으나 한강은 수도권지역의 식수원으로, 관광자원으로, 국토 혈맥의 상징성으로 그 가치를 보전해오고 있다. 특히 관광자원으로서의 한강은 강만큼이나 풍성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수도권과 내륙의 강마을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람의 삶을 살찌우는 자원으로 기대가 크다. <글, 사진 / 남정우 여행칼럼니스트> ※ 이 콘텐츠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저작권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와 본지의 허가 없이 이 내용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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