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의 잔디 특성으로 엿보는 독일 월드컵 '향방'

독일 월드컵까지 딱 99일 남았다. 과연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어떤 훈련을 하고 있을까. 경기를 좌우하는 유럽 축구장 잔디에 적응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월드컵 공인구로 슛 연습을 하느라 쉴새없이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경기를 둘러 싼 환경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는 법. 사커(Soccer) 과학의 실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글 싣는 순서는 잔디구장의 특성-공인구에 숨겨진 과학-프리킥의 묘미 順이다. [편집자의 편지] "유럽 잔디 적응이 독일월드컵 성공의 관건이다." 한국의 축구 대표 선수이자 세계 축구 명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한 말이다. 박 선수는 "한국의 잔디는 짧고 딱딱하지만 유럽은 훨씬 미끄럽고 부드럽다"며 잔디가 축구경기에 미치는 중요성을 설명했다. 잔디의 특징은 축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대덕연구개발특구 잔디박사로부터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봤다. 김태준 동부한농화학 잔디박사에 따르면 잔디는 화본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종으로 약 600속(屬) 7천500여종(種)이 있으나 크게 나누면 난지형과 한지형으로 나뉜다. 박지성 선수가 말한 '한국의 잔디'란 난지형 잔디 종류인 한국잔디(Zoysiagrass). 이 잔디는 약 35℃정도의 고온지대에서 잘 자라며 2~6mm정도의 비교적 넓은 잎으로 되어 있다. 표면 또한 매우 거칠며 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한지형 잔디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축구장에 많이 사용되는 한지형 잔디의 일종인 벤트그래스(Bentgrass)종은 25℃이하에서 잘 자라며 0.5mm정도의 매우 얇은 폭을 가지고 있다. 재질은 매우 부드러운 편이며 밀도 역시 난지형 잔디에 비해 매우 높은 형태를 띠고 있다.

▲한지형 잔디(좌)와 난지형 잔디 ⓒ2006 HelloDD.com
잔디의 표면이 거칠고 잎이 넓은 난지형 잔디는 표면 마찰력이 높다. 이러한 마찰력은 공의 속도에 영향을 미쳐 땅에 바운드된 후 속도가 상승하지 않고 튀어 오르는 높이도 한지형 잔디에 비해 낮다. 또한 난지형 잔디는 선수들이 활동하는데도 적당한 마찰력을 유지해줘 쉽게 미끄러지지 않고 급회전이나 급정거가 용이하다. 한편 밀도가 높지 않은 관계로 공이 튀어 오르는 방향이 일정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난지형 잔디에 익숙해 있는 한국 선수들이 이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한지형 잔디에서 경기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볼이 잔디에 바운드된 후 굴러가는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높이 또한 높아져 선수들의 좀 더 빠른 대응력이 필요하게 된다. 한국선수들이 유럽에서 경기를 할 때 패스미스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도 평소보다 빠른 볼의 속도때문. 골키퍼 역시 땅볼 슛의 속도가 국내의 일반 구장에서 보다 빨라져 대처하는데 애를 먹곤 한다. 한지형의 부드러운 잎은 선수들이 달리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축구화를 신는다 해도 쉽게 미끄러져 자주 넘어지게 되고 급하게 회전하거나 멈추는 것이 용이하지 못하다. 게다가 비가 많아 습한 유럽 기후의 특성상 보슬비라도 내리게 되면 마찰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또 하나의 축구 승부 관건 '북덕이 잔디' 한지형 잔디와 난지형 잔디에서 경기력 차이는 테치(Tatch)를 통해서도 좌우된다. 테치란 잔디의 뿌리 잔해나 잎의 찌꺼기 등이 토양의 위에 쌓이는 것을 뜻하며 국내에서는 '북덕이 잔디'라고도 불린다.

▲한지형 잔디로 조성된 독일의 알리안츠 아레나 내부 모습 ⓒ2006 HelloDD.com
테치는 기본 토양에 비해 밀도가 떨어져 공의 바운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난지형 잔디는 한지형 잔디에 비해 테치의 양이 많아 그만큼 공이 높이가 낮아지게 된다. 또한 테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이는 높이가 변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잔디가 조성된 기간도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에는 한지형 잔디를 갖춘 구장이 없나? FIFA의 규정에 따르면 공식 국제 경기를 치루는 잔디구장은 모두 한지형 잔디를 사용하도록 돼있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한 한국도 이러한 규정을 지켜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에 한지형 잔디를 사용했다. 현재 각 프로구단 선수들이나 국가 대표 선수들은 이런 경기장에서 훈련을 실시하며 한지형 잔디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지형 잔디가 유지비용이 높은 이유로 일반적인 연습장에 사용하지 못하고 아마추어나 학생들은 대부분 난지형 잔디구장이나 잔디가 없는 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러한 구장에서 훈련하던 선수들이 단기간에 한지형 잔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박지성 선수의 발언은 이러한 부분을 통해 나오게 된 것이다. 김태준 박사는 "현재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흙바닥에서 먼지를 먹어가며 공을 차고 있다"며 "자라나는 꿈나무 들을 위해서 학교 운동장에 난지형 잔디라도 시급히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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