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동 김민혁 씨...잘 나가던 벤처인, 파산선고 맞고 현재는 폐암 투병

"제가 사업할 때 명절이면 전민동사무소 앞에 아무도 몰래 쌀 50가마씩 갖다놓곤 했지요. 그런데 그 쌀을 제가 다시 받아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의 이 쌀 한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현재 전민동 월세집에서 부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김민혁 씨(가명). 그도 한 때는 잘 나가던 벤처기업 CEO였다. '벤처'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인 1995년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C사를 10억여원에 인수, 년 매출 1백억원대에 직원수만해도 1백11명에 달했다.

당시 이 회사와 협력관계를 맺은 곳만 해도 쌍용정보통신, 삼성전자, 코오롱정보통신, 핸디소프트 등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쟁쟁한 곳들이 '수두룩'하다. 또 CEO였던 김 사장은 미국의 시스코시스템스를 직접 방문해 제품샘플을 받아와 국내에 보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에만 의존하고 경영쪽으로 부실했던 회사는 IMF때 은행의 대출상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다. 당시 부채만 해도 25억원. CEO였던 김 씨는 회사가 부도난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사업을 하려면 가슴에서 시커먼 먹물이 나와야 하는데 저는 뜨거운 피가 흘렀습니다. 냉정하지 못하고 너무 인정이 많았지요. 직원들이 연구개발비로 쓰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사업이 어렵다고 구조조정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던 탓에 부도를 맞았고 모든 재산을 채권단에 정리한 채 1998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소비자 파산선고'를 법원에 신청했다.

부채를 모두 갚지 않은 상태에서 신청한 '파산선고'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회사운영을 위해 3년간 매달 2천만원가량을 투자한 김 씨의 신청을 1999년 받아들였다. 그리고나서 가족과 함께 살던 엑스포아파트도 채무로 변제하고 현재의 월세집을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련해 살고 있다.

그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군장교 출신인 아버지와 다방종업원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 씨는 7살 때 서울역 대합실에 버려지게 된다. 그 때부터 김 씨는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이 당시 한 번은 구두닦이 하는 형들과 처음으로 빵집에서 빵을 도둑질하다 걸려 이빨이 모두 부러지도록 얻어터진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 때 "도둑질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이후로는 절대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동양화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매일 막노동판에서 '짐통'을 지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는 그의 인생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국내 유명화가의 수제자로 입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하는 등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림그리는 작업이 정신적으로 너무도 고달팠다. 그리고 한 때 미국에서 반도체를 공부한 경험도 있었다. 그간 모은 몇십억원대의 재산을 들고 대전으로 내려와 C사를 인수, CEO가 됐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과 우수한 기술력이 있었지만 이 회사는 인수 이전부터 경영부분이 '부실투성이'였다. 거기에 김 씨의 인간적인 우유부단함이 더해져 결국 회사는 무너졌다. 3년간 회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고군분투했던 그에게 남은 것은 10년 연상의 부인(대학시절 하숙집 주인의 동생이었던 부인은 그 시절 김 씨에게 많은 도움을 줘 김 씨가 훗날 성공한 후 부인을 찾아가 결혼하게 됐다)과 10살짜리 딸, 그리고 암덩어리로 찌든 몸 뿐이었다. 그나마 부인과 딸도 모두 병(골다공증과 천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부인과 딸이 병에 걸린 것을 자신의 병이 옮은 것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박희윤 전민동장의 소개로 17일 만난 김 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50∼60억원도 소유해봤지만 황금은 내 것이 아니라 모래알이다. 능력있을 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라. 나를 도와달라는 말이 아니다.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내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을 돕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현재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사는 그를 잡는 유일한 끈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독한 약을 복용해 잠든 그를 '아빠! 아빠!'하며 흔들어 깨우는 딸 아이의 해맑은 웃음

뿐이다. 도움 주실분 : 대덕밸리벤처연합회 '이웃사랑' 계좌(하나은행 679-003719-00804, 예금주 : 대덕밸리벤처연합회 '이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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