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넷 총각 2명이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물건너 다녀왔습니다. 충북대 교환학생으로 온 모리시타씨가 대덕넷에 근무한 인연으로 11월 마지막 날 출발, 민폐만 잔뜩 끼치고 12월 8일에 돌아왔습니다.

일본, 정말 가까운 나라입니다. 도착한 나고야 공항은 인천공항에서 불과 1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보고 경험한 것은 짧은 여행시간으로 느끼는 친숙함을 무참히 깨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에 대한 널리 알려진 정보보다는 외국에 다녀오지 않은 대덕밸리 벤처인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외국을 경험하라는 재촉의 의미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동양문화권에 같은 피부색을 지닌 일본. 이나라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 있는 것은 사실 입니다. TV와 책, 주위 사람들...이러쿵 저러쿵 말도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 한번 걸러진 내용인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군대이야기를 예비역 병장과 아직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느낌의 차이라고 할까요?

◆ 일본의 첫 느낌은 '깨끗하다' 입니다.

휴지 하나없는 거리, 상쾌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 반짝거리는 자동차 등 깨끗함이 저희를 반겼습니다. 나고야 공항에 마중 나온 모리시타씨의 대학동창인 하타씨의 승용차 뒷자석에는 좌석마다 고무로 된 넓은 발받침이 따로 있었습니다. 발에 묻은 흙이 떨어져도 그 고무 받침만 털면 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인은 유난을 떤다고 싶을 정도로 차를 아낀다고 합니다. 관광을 하는 일주일 내내 갖 세차한 차들만 다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도로 위를 지나는 차들이 깨끗했습니다. 심지어 트럭조차도 광이 번쩍 번쩍 날 정도였습니다. 나고야 성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하타씨는 바람에 나 뒹구는 과자봉지를 주워 휴지통에 넣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일본의 거리가 깨끗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 역시 일본은 외국이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이상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혹여 나 실수 할까 행동을 조심조심 했습니다. 하지만 어이없는 상황에서 일본이 외국임을 느껴야 했습니다. 일본에 온 첫날 저녁, 나가노 의 전통적인 농촌마을 인 모리시타씨 집에서 한^일 청년 4명이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인 아사히 맥주와 기린 맥주를 먹고 있었습니다.

저녁 9시가 넘자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한국청년 2명은 일제히 일어났고 일본청년 2명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른이 오면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는 것 외에도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가로로 놓인 젓가락,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숟가락, 잔이 채워지지 않아도 따라주는 술, 좌우가 바뀐 핸들과 차로 등 작지만 외국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고집할 수는 없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숟가락을 만들어 내라고 떼 쓸 수도 없었습니다. 단지 익숙해져 있었을 뿐 입니다. 익숙하다는 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일 제쳐두고 외국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 TV와는 다른 점은 또 있었습니다.

일본 차들은 정지선을 잘 지키며 보행객들은 신호등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을 한 코메디 프로그램이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동경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본 TV프로그램은 원망스럽게까지 했습니다. '밤마다 반라의 여자들이 나온다'는 기사를 미리 읽은터라 일주일 내내 밤마다 TV를 봤습니다. 하지만 지역방송이 많은 시골지역은 물론 도시지역도 특정 케이블 방송을 신청해야 그러한 프로그램이 방송된다고 합니다. 저희에게 장미빛 꿈을 심어준 스포츠 신문들이 미울 뿐 입니다.

Dutch pay 문화.

일본에선 이를 '와리깡'이라고 하는데 바다 건너 온 저희는 제외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직장동료들과의 회식자리에선 자연스레 더치 페이를 하지만 귀한(?) 손님인 저희에게까지 더치 페이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처럼 일본 사람들도 손님이 오면 자신들이 밥도 사고 술도 샀습니다. 일본에 가면 꼭 더치 페이를 꼭 해야 된다고 믿게 만든 일본 통신원들의 이야기를 이제 걸러 듣기로 했습니다.

◆ 일본의 IT는 한국보다 뒤져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많은 않습니다. 일본은 이제 ADSL을 깔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 한집마다 몇 대씩 있는 컴퓨터가 방문하는 집마다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환경은 우리나라보다 몇 발 앞서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컬러휴대폰을 갖고 있었고, 저희가 방문한 모리시타의 나이든 부모님도 서로간에 휴대폰으로 메일을 주고 받았습니다. '문자 메시지'가 아닌 e-mail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실제로 NTT docomo의 무선컨텐츠인 iMode는 이용자수가 1000만을 돌파했습니다. 그 저력을 가지고 이미 세계표준으로 채택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명, 유선인터넷 다음은 무선인터넷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IT가 일본보다 앞서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일본이든 외국을 방문할 때는 미리 공부를 하고 가야합니다.

알고 있는 만큼 본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에 가기 전 '마쓰시타의 리더쉽'이란 책을 읽고 갔습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Panasonic과 National이란 브랜드로 전자제품을 만들고 있는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 입니다.경쟁사인 Sony에 비해 뛰어난 기술도 없고 든든한 배경도 없지만 '품질은 30% 좋으면서 가격은 30%가 더 싼 제품 생산'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의 실천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그렸습니다.

'일본에 간김에 뭔가 보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오사카 근교의 마쓰시다 기념관을 들렸습니다. 마쓰시타 전기의 초석이 된 '자전거 전등'을 비롯해 각종 전자 제품이 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전시품마다 그 속에 담겨진 의미가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전시관 한 켠의 마쓰시타 연설 비디오를 보는 곳에선 'Bet your life'라고 외치는 마쓰시타의 육성이 멀리 바다 건너온 두 청년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미리 알고 가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전시관 중의 하나였을 마쓰시타 기념관이 일본에 가장 기억 남는 곳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기타 여러 가지

한국은 늘 일본을 주시하지만 일본은 한국을 아시아의 여러나라 중 하나 정도로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동행자였던 모리시타씨도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한국이 어떤 나라일까라는 호기심이 1년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도록 만들었습니다.일본에서 만난 모시리타씨 친구들도 한국을 모리시타씨가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나라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역사적 사건도 있고 해서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한국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주목을 받기엔 한국이란 나라가 그리 견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 다는 뜻이겠지요.

또 한가지 어학공부를 하기위해선 그 나라 말을 잘하건 못하건 직접 방문하는 것이 학원을 몇 달 다니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입니다. 단 하루만 있어보면 언어로 인한 답답함이 몸 속 깊이 느껴 질 것입니다. 일본어를 전혀 몰라 어설픈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가 철도 매표원이며 백화점 판매원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미안한 적이 많았습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나라보다 더 한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10일도 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에 머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외국에 갔다오면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구경을 하고 왔다고 들 합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밖에서 바라본 우물이 그리 크지 않음은 우물밖에 나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좀 더 크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생각도 커진다는 것을 새삼 깨닿게 됩니다. 2002년 새해에는 대덕밸리 모든 벤처인이 해외에 한번씩 꼭 나가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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