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계, 창의력 중심의 체질변화로 화합 이뤄내야"

이땅의 과학계를 이끌어 나갈 새 대통령 당선자로 이명박 후보가 결정된지도 만 하루가 지났다.

과학계에서는 대통령 당선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벌써부터 '기초과학 육성이 필요하다', '과학행정체제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인재 육성에 최선을 기울여 달라' 등 다양한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이 것들은 이명박 당선자로서는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말들이다. 현장을 알아야 과학기술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항들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땅의 과학기술자들이 지적하는 현 과학계 문제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과학계 문화이다.

이에 대해 대덕특구 출연연의 기관장 L 씨는 20일 "한국 과학 행정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새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원천, 기초과학기술에 투자할 경우 30% 성공률을 기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00% 가까운 성공률을 요구하고, 사정상 그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는 연구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요하는 성과수준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구에 실패하면 다음 과제신청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나 기술개발 보다는 안전하게 외국에서 먼저 개발한 기술, 혹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어야 과제로 채택해 신청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 없는 것은 만들 수 없다는 말과 같다"며 "세계 선진국들치열히 경쟁하고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이같은 과학행정체제는 큰 문제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관리'에 집착하고 있는 현 과학계 '행정체제'와 인재에 대한 출연연의 처우 역시 문제다.

연구에 10%, 보고서 작성 및 과제수주에 90%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한 과학자의 푸념은 농담으로 돌려버리기엔 현 과학계 실태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L 원장은 "출연연에서는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그마저 점점 축소되어 가는 분위기"라면서 "우리나라 과학행정시스템은 인프라 구축에만 관심을 보일 뿐, 사람에 대한 대우는 크게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않다"고 말했다.

연구현장이 안정되지 못하니 우수한 인재가 과학도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그 결과 이공계 위기도 초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시각은 비단 L 원장 한사람만의 주장은 아니다. 현 과학기술 행정체제가 도입된 이래 과학계 인사들과 과학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문제점이다.
[참고 : 대덕넷 특집시리즈, 업그레이드 사이언스 코리아 바로가기]

◆세계 유일의 국가 과학기술 행정체제… "무엇이 부족한가?"

많은 현장 과학자들이 우려하고 비판하고 있는 대한민국 과학행정.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국가 행정체제는 낙후된 것일까?

시스템만을 놓고 보면 외국에 비해 손색이 없어 보인다. 독일의 연구회 체제, 호주의 단일화 체제,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연구개발과제 수탁사업(PBS) 제도 등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다양한 시스템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복잡한만큼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운영만 잘 된다면 어떤 국가의 연구개발 행정체제 못지 않은 효율을 거둘 수도 있다.

더구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에는 30명에 달하는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고,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다.
'국가의 수반'이 과학발전에 직접 참여하는 드문 형태를 갖고있는 것이다.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인 나라도 우리나라 뿐이다. 청와대 비서실에도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자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듯 막강한 국가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갖추었다고 해서 과학계 현실이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대덕특구의 또 다른 기관장 P 씨는 "과학행정의 혁신과 변화의 발목을 잡는 주범은 외부가 아닌 연구소 내부에 있다"고 지적하고 "과학계 혁신을 위해서는 출연연 내부의 혁신부터 이뤄나가야 한다. 일부 연구원들이 우수 과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조직 전체의 문화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 출연연 체계 아래서는 아무리 좋은 행정시스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며 "시스템이 완벽해도 수혜자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무의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과학계, 체질개선 도모 필요… "민간·정부기관 상생 이룩해 나가야"

그러면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은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 최근 공학한림원에서 발간한 책 한권이 해결의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대덕넷은 지난 11월 공학한림원이 발표한 정책총서 '창조적혁신으로 새 성장판을 열자'에 대한 분석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우리나라 과학·공학분야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 40여 명이 집필에 참여한 이 책은 국내 관계자들로 부터 "과학·산업계가 원하는 정확한 미래사회 방향을 한권의 책으로 압축해냈다"는 높은 평가를 들었다.

이 책은 '먼저 체질변환을 꾀해야 한다. 선진 과학기술의 모방을 버리고, 이제는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해 지식창출 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집필 과정을 총괄한 최영락 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세계적 신규지식 개발은 2030년 이후에 가능해지리라고 예상한다"며 "지금은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해 지식창출 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할 때"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땅의 과학기술인이라면,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우리나라 과학계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고 세계를 선도할 창의적 과학지식을 보유하길 간절히 원할 것이다. 이같은 바람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역시 똑같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가의 운영을 맡게 될 이 당선자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과학 강국 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정책을 펴 나가야 할지 고민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천하는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선 이명박 당선자. 그가 과학기술계의 부흥을 위한 '쾌도난마'의 해법과 진정한 '실천'의지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대덕넷 특별취재팀> enhanced@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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