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과제 50% 탈락', SK 간질치료제 성공요인?

SK라이프사이언스사업본부, 年 로열티 2000억원 예상
'통합신약연구개발체계'로 엄격한 사업성 검증

지난달 24일 밤 10시. 대덕특구에 있는 SK라이프사이언스사업본부(이하 SK생명과학)에 낭보가 미국으로부터 날아들었다.

다름 아닌 SK생명과학이 1999년 독자 개발한 간질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Carisbamate·개발코드명 YKP509)'가 임상시험을 마치고,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에 신약판매 허가를 신청했다는 소식.

국내 개발 신약으로서는 LG생명과학 팩티브(Factive) 이후 두 번째다. SK생명과학은 보통 FDA 승인까지 1년에서 1년 반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에 내년 이맘때쯤 세계 의약 시장을 대상으로 시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생명과학은 독자 개발한 카리스바메이트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마치고 이후의 임상시험과 상업화를 위해 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 존슨앤존슨(J&J)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자본과 인력의 한계로 인해 독자 임상시험 수행과 시판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SK생명과학은 J&J의 카리스바메이트의 시판시 10%대의 로열티를 받게 된다. J&J 측은 현재 판매 중인 자사의 간질치료제 토파맥스(topamax)의 후속 의약품으로 카리스바메이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

SK생명과학은 J&J가 카리스바메이트로 토파맥스의 상당하는 판매고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때 SK생명과학은 연간 2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합신약연구개발체계'로 3년간 과제 50% 탈락
 
▲신약판매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카리스바메이트 ⓒ2008 HelloDD.com
1993년 신약개발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출범한 SK신약개발사업부가 국내 2번째로 FDA 신약판매 허가 신청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냉혹하고 엄격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였다.

SK생명과학은 2006년 사업본부를 출범하고 Stage Gate Model(SGM)·Target Product Profile을 통한 목표관리와 Portfolio Management·Resource Management System·보상제도 등을 연계한 통합신약연구개발체계를 구축했다.

SK생명과학은 최근 SGM를 통해 약 40억원을 투자했던 과제를 탈락시키고 관련 R&D팀을 해체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통합신약연구개발체계를 도입한 이후 3년간 R&D과제를 절반으로 줄이는 개혁을 진행했다.

곽병성 사업본부장은 "신약개발사업은 연구가 진행될수록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투자금을 상회하는 가치가 없다면 빨리 없애야 한다"며 "자금과 인력이 풍부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끊임없이 과제를 평가해 가능성 있는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들과 똑같이 하면 이길 수 없다는 설명이다. SK생명과학의 SGM은 과제제안에서 상업화까지 9단계로 이뤄져 있다.

연구에 앞서 신약 발굴 과제를 평가, 시장성과 신약 구성물질 조사, 동물과 사람을 상대로 순차적으로 발굴 물질을 투여하는 단계별 임상시험 등 과제의 단계마다 세계적 수준의 자문위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과제의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SK생명과학은 질병영역별로 자문위원 1인을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각 과제의 단계별 심사시, 교수나 의사 등 세계적 수준의 R&D 전문가 3~4인을 구성해 과제를 평가하고 있다.

또한 과제의 세계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3~4인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R&D 및 시장의 측면에서 과제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 1년에 운영되고 있는 자문위원들의 숫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신약이 나올 시점을 기준으로 약효·부작용·경쟁제품·예상 약물가격 등을 평가한다. 이 외에도 사업본부는 살아 움직이는 제약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SGM과는 별도로 1년에 한 번씩 전체과제에 대한 심사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엄격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신약개발사업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R&D를 통해 발굴한 신약후보물질이 상품화될 확률을 1%미만으로 보고 있다. FDA의 미국 임상시험 승인이 나서 임상 1상에 성공하면 20%, 임상 2상 성공시는 40% 이상의 상품화 성공률을 점치고 있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소요되는 시간이나 투입되는 자금이 많아지기 때문에 엄격한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 SK생명과학의 설명이다.

SK생명과학에서는 매년 수 천개의 화합물을 합성하고 있지만 동물실험·독성 평가를 통과하는 화합물은 연간 1~3개 뿐이다. 철저한 평가시스템의 힘으로 사업본부는 FDA의 승인을 받고 임상시험 중인 국내 치료제 11건 중 7건을 개발해내는 성과를 냈다.

SK생명과학은 R&D 과제의 개수를 연간 15개 정도로 유지하면서 매년 2개 정도를 미국에서 임상 2상에 올려놓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SK가 성공 확률도 낮고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신약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은 자연과학을 전공한 故 최종현 회장의 판단이었다.

최태원 현 회장도 신약개발을 SK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여기고 1993년부터 매년 적자를 보고있는 SK생명과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두 리더의 미래를 바라본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자들에 대한 믿음이 FDA 신약판매 허가 신청이라는 성과를 불러온 것이다.

SK는 앞으로도 세계 의약품 시장 진입을 위해 더욱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SK생명과학의 올해 연구비가 500억원이었고 내년에는 800~900억원, 2010년에는 1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계획하고 있다.
 
◆"신약개발, 철저한 시장 분석 필요"…곽병성 SK라이프사이언스사업본부장
▲곽병성 SK라이프사이언스사업본부장 ⓒ2008 HelloDD.com


기자(이하 기) : 중추신경계 중심의 신약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곽병성 본부장(이하 곽) :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항생제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에 비해 중추신경계는 경쟁이 덜 하다. 또한 중추신경계 연구개발의 장점은 같은 약으로 가지고 여러 가지 증상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중추신경계 질병들은 조울증이나 통증 등의 증상을 수반하는데 중추신경계 의약들은 각 증상에 관한 각각의 효능을 보인다. 우울증 치료용으로 개발된 약이 통증 치료 쪽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기 : SGM을 비롯해 통합신약연구개발체계를 2006년 도입한 배경은?

곽 : 시스템 경영을 하자는 것이다. 예전에는 간질치료제 시장 규모가 5조원이라고 하면 현재 9개의 약이 있으니 신약으로 시장에 들어가서 10분의 1을 차지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외국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끊임없이 TPP(Target Product Profiles)라는 말이 나왔다. 글로벌 기업들은 R&D의 초기부터 신약의 경쟁력을 분석해 성공률을 지속적으로 제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한국과 같이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시스템을 통한 집중과 선택이 절실했다. TPP·SGM·Portfolio Management·Resource Management System·보상제도 등을 묶은 통합신약연구개발체계로 남들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R&D가 가능해졌다. 생산성이 좋아졌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기 : 신약R&D에 있어 산·학·연의 역할은?

곽 :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산·학·연 협력이 매우 힘들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구의 수준은 높지만 신약으로 연결이 잘 안된다. 대학의 경우 연구의 성과를 국내 기업들에게 제공하면 좋은데 교수들이 사업화까지를 바라보고 있다. 출연연과의 협력의 경우도 연구자들이 다른 연구를 동시에 하고 있어 속도가 느리다. 또한 국가 과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에 중단하기가 힘들다. 신약개발은 속도와 사업성 판단이 중요한데,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 기술이전에 있어서도 대학과 출연연은 자신들이 연구에 들인 시간과 비용을 모두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신약개발은 임상 1상에 들어가도 성공률이 잘해야 20%에 그친다. 기업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성과에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없다. 자신들의 연구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대학과 출연연, 기업의 명확한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 대학은 기초, 출연연은 기초와 응용의 중간 연구, 기업이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화 전 단계를 맡아야 한다.

기 : 앞으로의 계획은?

곽 : 예전에는 자금이 부족해 임상 1상에서 다른 곳과 협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약개발은 투입한 만큼 로열티를 받는다. 임상 2상만 통과해도 로열티는 배로 뛴다. 2010년 이후에는 임상 3상까지 그리고 나아가 독자 신약개발까지 추진할 생각이다. 매년 2개 이상의 연구가 임상 2상에 가있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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