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노하우 축적할 수 있는 R&D 프로세스 구축 시급
우주개발청 설치 등 산업육성 위한 거버넌스 변화 필요

기술 자립과 종속의 차이?

나로호(KSLV-1) 발사 중단 사례에서 온 국민이 그 차이를 목격했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약육강식 논리로 따지면 죽느냐 사느냐의 척도다. 핵심 원천기술을 보유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로켓 발사체 같은 국가전략 기술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과학기술 특성상 이번 나로호는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넘어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때문에 '우리가 로켓 1단을 개발하면 안되냐, 과학기술 강국이라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맞다. 우리가 개발하면 된다. 나로호의 차기 프로젝트 KSLV-2가 그 시험대다. 앞으로 9년 남았다. 하지만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또, 과거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문도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따르면 나로호 프로젝트 처음 기획 당시 러시아로부터의 발사체 전체 체계시스템과 발사대 등에 대한 기술을 이전받는 공동개발이 전제됐다.

기술이전의 핵심은 로켓 1단 액체엔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러시아가 로켓 1단에 대한 기술이전은 절대 불가 입장으로 변모했다. 기술이전을 위해 1~2년간 러시아에 파견됐던 수십명의 항우연 연구원들은 모두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의 국민적 해명이 필요한 부문이다.

결국 로켓 1단에 대한 기술이전이 안되는 상황이라면 나로호 개발 목표를 우리나라에 맞는 현실적인 전략이 추진됐어야 했는데 별도의 전략 수정절차 없이 그대로 진행된 양상이다. 본래 과학로켓 KSR-Ⅲ와 연계시켜 나로호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전혀 연관성이 없이 개발됐다.

그렇다면 KSLV-2는 이번 나로호와 기술적 연계·연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 연구진들만의 손으로 발사체 1단 기술을 완전 자립화시킬 수 있을까? KSLV-2 마저 나로호와 전혀 연계성 없이 추진될 경우 우리나라 발사체 기술개발은 기술 축적과는 무관한 단순 개별 프로젝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독자 로켓발사체 1단 엔진 기술개발의 당위성이 있다면 우리만의 원천기술을 축적·보유할 수 있는 연구개발 환경 조성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러시아가 개발한 나로호 1단의 추력은 170톤급. 상당히 힘이 센 로켓이다.
현재 항우연은 액체엔진 로켓 30톤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가운데 KSLV-2가 표방하는 발사체 개념은 이렇다. 현재 항우연이 보유한 30톤급 로켓기술을 75톤급으로 업그레이드시켜 로켓 1단에 4개 75톤급 로켓을 묶는다는 복안이다. 그래서 300톤급 1단 발사체를 만들 계획이다. KSLV-2의 2단은 1단의 75톤급 1개 로켓을, 3단은 현재 나로호 2단 고체로켓을 쓰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개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항우연의 30톤급 로켓은 비행시험을 포함해 지금까지 연소시험 단 1번만 실시했다. 200초 정도 연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한 우주발사체 독립국가의 명성을 가질 수 있는 기술축적을 하려면 연소시험을 무수하게 해야 한다.

완벽한 연소시험을 거쳐 30톤급 로켓을 실제 발사대에서 로켓을 띄어보는 비행실험도 숱하게 해야 한다. 로켓 비행시험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30톤급이 숙성된 다음 75톤급으로 용량을 늘려야 한다. 75톤급도 연소시험과 비행시험을 완벽히 거쳐야 한다. 시험을 해봐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하우와 데이터가 축적되고 실패율을 줄일 수 있다.

발사대에 세워 비행시험에서 나오는 문제점을 찾아 보완해 나가야 한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기술이 성숙했다 싶으면 본격적인 발사체 전체 체계개발사업에 들어가야 한다.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시험 기회를 줄 수 있는 예산과 연구환경을 지원하는 문화 조성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 R&D 예산운용 구조상 거대 프로젝트를 위해 1000억원 예산을 받아도 시험을 위한 예산 100억원 받는 자체가 힘들게 돼 있다. 로켓 핵심 개발사업 위해 100~200억 예산을 신청하면 예산 담당 관료들에겐 '우물 가서 숭늉 달라'는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 번 연소시험 하고 단 한 번에 발사하는 구조는 우주 발사체 기술 독립을 원천적으로 이룰 수 없게 만든다. 연구자들에게 시험과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시험을 위한 연구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나로호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개발과정에서 밟아야 할 단계를 무시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꼴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귀찮고 힘들어도 한단계씩 계단을 올라야 기술을 축적하고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주변 강국들이 한 층 위에 있으니 무리하게 뛰어올라가면 결국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크다.

발사체 핵심 기술인 1단 액체로켓 엔진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세계 10번째 위성 자력 발사국가를 강조하는 현 실태는 기분이 썩 상쾌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미국 NASA처럼 우주개발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제언이 들린다. 교과부의 연구개발 체계와 우주 기술개발의 특성이 다른데 동일한 잣대로 들이대는 것과 부처간 이해득실에 좌지우지되는 현 R&D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관료의 전문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조황희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과학기술전략센터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기상청의 연간 예산이 2000억원인데 우주개발 예산이 3000억원대에 이르고 있어 독립적인 청으로의 발전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보다 원천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과 투자가 우리나라를 발사체 독립 국가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25일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가 우리나라가 우주개발 강국으로 도약하는 진정한 재성찰의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