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바라보는 대덕기업②]3대째 이어오는 장맛 사명감
고객 신뢰도 깊어져…3대 대표 취임후 R&D 집중으로 급성장

"우리나라 기업은 설립 50년후 0.7%가 생존하고 100년후에는 0.03%만 살아남는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습니다. 기업의 생존이 그정도로 어렵고 치열하다는 말이겠죠. 1948년에 창립한 진미식품도 몇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럴때마다 힘이 된건 고객의 신뢰와 R&D였습니다."

3대를 이은 전통 장류 회사로 지역의 대표적인 장수기업으로 손꼽히는 진미식품(대표 송상문). 1948년 설립해 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62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나락까지 떨어졌던 진미식품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2대 대표인 송인섭 회장을 만나 진미식품의 위기 관리에 대해 들어보았다.

공장 전소되는 화재로 많은 것 잃었지만, 고객의 신뢰가 큰 힘

진미식품의 초대 대표인 고 송희백 회장은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인이 운영하는 장류 회사인 '부사충장류'에 근무하면서 장 담그는 기술을 익혔다.

고 송 회장은 해방 후 1948년 일본인 사장이 남기고간 70여평의 적산가옥에 보일러를 설치해 메주 발효 시설을 갖추고 '대창장류사'라는 기업명으로 첫 제품을 출시했다.

"70여평 규모에 살림집과 공장이 같이 있으니 협소하기가 말 할수 없었죠. 아버님은 품질문제도 중요하게 여기셨지만 안전관리를 항상 염두에 두셨어요. 아버님은 화재에 대한 걱정으로 꿈까지 꾸셨죠. 한번은 불이 났는데 불이 나기전 아버님이 꿈을 꿔 크게 번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먹을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피난민들에게 진미식품은 큰 위안이 됐다. 대창장류사에 가면 간장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간장을 사기위한 사람들이 언제나 100m이상 줄을 설 정도였다.
 

▲처음 오류동으로 이전 후 사옥 전경.  ⓒ2010 HelloDD.com

▲화재 후 새로 건립된 진미식품의 사옥 준공식.  ⓒ2010 HelloDD.com

1957년 오류동에 약 3300㎡(1000평정도)의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어 사옥을 옮겼다. 이후 군납 자격을 얻으며 회사는 성장세를 달렸다.

또 후발 업체들이 간장의 단맛을 위해 사카린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감초를 이용한 건강까지 생각하는 '감로간장'으로 진미식품의 위상은 업계에 확고해졌다.

"그런데 실수는 한순간에 모든걸 빼앗아갔어요. 당시 난 ROTC 1기로 제대를 6개월 앞두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신문을 보고 회사에 불이 난 사실을 알았죠. 휴가를 신청해 집에 내려와 보니 공장은 전소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1965년 화재로 군에 납품하기로한 제품도 폐기처분할 위기에 놓였다. 항아리에 들어있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제품들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아버님은 직접 간장과 된장을 드시며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셨어요. 자리에 있던 군 관계자가 아버님의 모습에 감동했고 국방과학연구소에 검수를 의뢰해 안전하다는 결과에 따라 군납이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아버님의 장맛에 대한 사명감은 여전했지만 많이 약해지셨는지 내게 도움을 요청하셨지요"

송인섭 회장은 제대후 진미식품으로 합류했고 공장을 재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다행히 기존에 거래하던 은행에서 지원을 해주었고 동업자와의 협약으로 공장을 새로 지을 수 있었다.

고추가루 파동과 외환 위기로 나락까지 떨어졌지만

송인섭 회장의 전공은 약학이다. 그의 꿈은 큰 제약회사에서 일을 배워 제약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를 이어 장맛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어릴 때 부터 아버님 사업을 눈여겨 보며 관심은 꾸준히 가지고 있었죠. 그래도 내가 가업을 이을 거란 생각은 안했습니다. 가업을 잇는 일은 내가 하고자 해서 되는게 아닌것 같았어요. 어떤 숙명같은 끈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회사가 전소되는 화재가 아니었으면 아마 다른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송 회장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숙명처럼 선택되었지만 고집스럽게 지켜온 진미식품의 장맛을 믿고 좋아해주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전혀 그런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소회했다.

"회사에 합류해 군에서 배운 리더십을 활용했지요. 또 후배 기업인들에게는 JC 등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리더십의 중요성을 알렸습니다. 회사는 순조롭게 성장 했고요. 1985년 용계동으로 공장을 옮기고 회사명도 진미식품으로 변경했습니다."

1985년 방송에서 장류 회사들에 대한 비위생적인 제조공정이 보도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진미식품은 신설공장으로 위생기업의 표본이 되면서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진미식품은 진미간장, 진미고향고추장,진미일품콩된장 등 '진미'가 붙은 제품 대부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또 된장을 만들 때 쌀이나 보리를 섞지 않고 콩 100%를 사용, 품질을 중시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확산되면서 최대 매출액이 연간 400억원을 넘었을 정도였다.
 

▲50주년 행사시 진미식품은 고추가루 파동과 외환위기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2010 HelloDD.com

그러나 위기는 항상 도사리고 있는법. 1996년 언론에 진미식품이 '불량고추가루를 사용한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끝이 없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검사결과 안전상 문제 없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진미식품의 불행은 계속됐다. 외환 위기와 대기업들의 시장 참여로 진미식품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그런 상황속에서 10년이 흘렀다.

"아마 인심까지 잃었더라면 회사 문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창업주인 아버님이 지역에 많은 공헌을 하셨고 다행이 인심을 잃지 않아 각 기관과 지역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신뢰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시기였습니다."

송 회장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 회사 운영이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그는 미국으로 MBA과정을 공부하러 가려던 아들을 붙잡았다.

"나 자신도 하고 싶었던 일 대신 가업을 이었는데 아들도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어요. 다행히 아들은 경영학을 전공한 전문경영인입니다. 그리고 사원부터 시작해 회사의 구석구석까지 꿰뚫어 보았죠. 아들이 2007년부터 대표를 맡고 인재육성과 R&D에 집중하면서 회사가 안정됐고 매출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송인섭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지 꼭 40년만에 송상문 대표가 3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3대로 이어지면서 인재육성과 R&D주력, 제3의 전성기
 

▲진미식품이 생산하는 제품들.  ⓒ2010 HelloDD.com

2007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3대 송상문 사장이 전통에 첨단을 가미하면서 진미식품의 매출도 급물살을 탔다. 벤처기업 이노비즈 인증을 받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으며 웰빙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청국장을 주원료로 만든 건강식이지만 냄새와 트랜스지방산을 없앤 나또볼, 술안주와 간식용으로 인기가 높은 쇠고기치즈샌드 등 전통에 현대의 맛을 접목시켰다.

송 사장은 대외 경쟁력 향상을 위해 혁신경영체계를 도입하고 인재육성에 주력했다. 회사 체질을 현대식으로 개편하면서 R&D에도 투자했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식물공학 전공자들로 구성된 R&D팀에게 스타르타식 마케팅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비싸면 팔리지 않는다'라는 업계의 공식을 깨고 경쟁업체와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였다. 웰빙 열풍을 겨냥해 만든 100% 오곡찹쌀고추장과 오덕청국된장은 젊은 고객층에게서 높은 호응을 얻었다.

송상문 대표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국산 원료를 이용한 고품질의 차별화된 상품으로 분명한 색깔을 내겠다"면서 "청소년들에게 바른 먹을거리를 제공하기위해 학교급식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미식품은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해 왔다"면서 "앞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보다 적극 나설 예정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진미식품은 2008년기준 125명의 직원으로 36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외에도 참그루, 장맛뜰, 이비또, 웰콩 등의 제품을 출시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진미식품은 대전 현지 공장의 생산시설 부족에 따라 괴산군에 제2공장을 설립키로 결정했다. 오는 2017년까지 43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한편 송인섭 회장은 "진미식품은 사명감을 가지고 기본에 충실하며 제대로 된 장맛을 지켜가겠다"면서 "또 국민의 건강지킴이로 새로운 음식 문화를 선도하며 소비자의 신뢰에 보답하겠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대전시 유성구 용계동에 위치한 진미식품 사옥 ⓒ2010 HelloDD.com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