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기획 ②自疆]중국 칭화대의 살아있는 '어훈'

지난 2003년 중국 베이징에 행사 취재차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베이징 시내는 1년 만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할 당시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는 첨단 시설의 고층빌딩이 즐비해 있었고 건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반면 시내 후미진 곳은 아직 개발이 덜 돼 우리나라의 1960년대 낙후된 모습을 연상케 하는 광경을 보여주는 등 개발과 미개발의 다면적인 모습을 안고 있어 앞으로 중국의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자못 궁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필자가 중국을 방문할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이 해외자본 및 해외기업 유치 등을 통한 적극적인 경제부흥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던 터라 중국을 한번쯤 방문한 사람이라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 가는 중국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정도였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전 세계가 위기감을 갖고 중국의 예의주시하기 시작한 때도 바로 이 맘때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탓에 세계 언론은 중국을 ‘현대판 천지개벽 국가’, ‘세계 경제의 블랙홀’, ‘세계의 공장’ 등 위기감과 놀라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말들로 비유하곤 했다.

모든 취재일정을 마치고 ‘중국의 테크노그라트’이자 ‘중국의 MIT'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칭화대(淸華大)을 방문했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발전과 함께 칭화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있었던 때라 주의깊게 캠퍼스를 둘러봤다.

대국(大國)답게 칭화대 규모에 입이 쫙 벌어졌다. 캠퍼스 규모만도 1000만평에 달했다. 규모로 보면 경쟁대학인 베이징대학보다 큰 규모다. 칭화대 캠퍼스는 100여년 남짓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청나라 황제인 강희황제가 머물렀던 칭화원에서부터 칭화대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건물인 ‘칭화학당’에 이르기까지 캠퍼스가 말 그대로 문화재 그 자체이기에 충분했다. 또한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메타세콰이어류의 수목들로 가득차 있어 마치 잘 가꿔진 공원에 와 있는 듯 했다.

학생들의 표정과 모습을 유심하게 바라봤다. 우리나라 대학생과 같이 영락없는 풋풋한 청년의 모습이었지만 캠퍼스를 거니는 칭화대 학생들은 우리나라 대학생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뭔가가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주관적인 판단이기만)

자연스럽게 ‘그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얼마 안 돼 그 이유를 캠퍼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칭화대 정문 표석과 캠퍼스 곳곳에 붙여져 있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疆不息 厚德載物)’이라고 쓰여져 있는 슬로건이 나의 의문을 푸는 열쇠를 제공해 주었다.

뜻을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 쉼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많이 쌓아야 재물이 들어온다'라는 의미다. 이 말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것으로 칭화대 학생들은 등하교를 하면서 그리고 캠퍼스를 거닐면서 ‘자강불식 후덕재물’이라는 어훈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어느새 가슴 속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록 하나의 어훈에 불과했지만 칭화대에서 만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자강불식 후덕재물은 우리 칭화대 학생들로 하여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자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칭화대 학생들에게 이 어훈은 졸업한 뒤에도 잊지 않고 있는 우리들만의 지침입니다”라고 설명해 줬다.

이런 모습은 중국의 실용주의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칭화대가 오늘날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대덕특구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대덕특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메카이자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보고(寶庫)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느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가 봐도 특색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칭화대의 ‘자강불식 후덕재물’이란 어훈처럼 연구원들이 어려운 연구환경 속에서 밤을 새가며 연구하는 이유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요즘의 경제불황 속에서 칭화대의 ‘자강불식 후덕재물’과 같은 어훈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해 삶의 변화 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희망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하기에도 쉽지 않는 오늘날의 우리나라 과학계를 볼 때 눈에 보이고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한국판 ‘자강불식 후덕재물’과 같은 어훈을 만들어 연구자들이 더욱 분발하고 힘을 낼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디지털타임스 이준기 기자 =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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