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매각 착수 후 핵심 연구주역 포함 20여명 떠나
지경부 "3차 입찰 추진 검토 단계"…연구현장 "특단 조치 시급"

"실험실로 출근해 연구하려는 과학자들보다 떠나려는 연구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연구소의 모습입니다." 민간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안전성평가연구소(KIT)는 지금 가라앉는 배나 다름없다.

연구소의 김 모 박사는 "철학과 전략없이 정부의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된 민영화 작업으로 연구소 전체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KIT는 국내 신약개발 독성 연구분야에서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손꼽혔던 연구소다.

그런 연구소가 지금은 내부의 핵심인력들 조차 줄지어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조차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98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내 안전성 실험실에서 1984년 한국화학연구원으로 이관된 후 30년 가까이 국가적 신약개발 전임상시험 체계 구축을 위해 달려온 KIT 주역들이 말없이 이삿짐을 싸는 분위기다.

2009년 본격적인 민영화 절차에 돌입한 뒤 작년 1차 매각 유찰과 함께 지난 1월의 2차 매각까지 파행이 계속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험실 안에서 연구중이던 과학기술자들의 탈 연구소 현상은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찰계획 준비까지 겹치면서 남아 있는 연구원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무거운 연구소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 상황이다. KIT의 이직 실태를 확인한 결과, 민영화 추진 이후 20여 명이 넘은 연구원들이 다른 직장을 선택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연구소 핵심 요직인 선임연구부장과 센터장급도 새로운 꿈을 찾아 이직함으로써 남아있는 연구원들의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균 선임연구부장이 호서대학으로 이직한데 이어 고우석 생물의약품센터장이 개인 컨설턴트 회사를 창업했고, 지난 20일에는 김충용 영장류센터장이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실험동물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들어 벌써 5명이 퇴사했으며, 이전과 비교했을 때 책임연구원급 핵심연구인력의 유출이 더 늘었다. 그에 반해 작년과 올해 추가 채용인력은 전무한 상태. 인력을 연간 33명 수준까지 채용했던 2~3년 전과 대조된다. 연구인력이 많을땐 75명까지 있었으나 현재는 66명으로 줄었다.

연구소 민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지식경제부의 조현훈 연구조직혁신팀 사무관은 이에 대해 "2006년 2007년도에도 인력 유출이 10명 수준으로 현 상태와 특별한 차이가 없으며 유입된 인원이 나간 인원보다 많았다"면서 "연구소(KIT)가 과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KIT의 3차 입찰 추진에 대해 조 사무관은 "현재 내부적으로 3차 입찰을 진행할지 말지 검토 단계에 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할 계획"이라고만 밝힌 뒤 추가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이런 가운데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최중경 지경부 장관에게 올해 있을 FDA 사찰 준비를 위해 KIT의 민영화 추진 일정 연장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최 장관은 "유연하게 검토하겠다"는 선에 그쳤을 뿐 더이상 자세한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송창우 KIT 선임연구부장은 "미국 FDA의 엄격한 사찰 기준을 통과하면 국내 신약개발 전임상 시험을 외국에 맡길 필요가 없게 된다"며 "모든 연구인력이 FDA 사찰 준비를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지만, 핵심인력 유출이 계속되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기만하다"고 말했다.

송 선임부장은 또 "만약 사찰 과정에서 데이터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에서 임상 3상중인 발기부전 치료제 토종 신약이 미국에서 시판 허가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기술계의 한 관계자는 "매각 대상인 KIT의 노하우와 인프라가 사양산업에 있다면 오래 끌어서라도 민간에 팔아야 하는게 정상이지만, 최첨단 분야의 앞서가는 분야를 정부가 스스로 황폐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정부가 시급히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21일 공공연구노조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KIT 민간매각 중지 요구 등 획일적인 공공기관 선진화 지침 철회를 촉구하는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공공연구노조가 과학의 날 기념식에 투쟁결의대회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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