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서재②]이호성 표준연 박사 "다독보다 정독하는 편"
아이돌 신곡도 멋지게 연주하는 드러머…"스트레스 훌~훌~"

 

"자연과학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주는 무엇으로 구성 돼 있는가' 등 철학자들이 합리적인 답변을 찾으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철학과 과학이 별개가 아니라 같은 뿌리라는 거죠." 이런 영향에서일까.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김명수) 박사의 책 읽기는 철학서적으로부터 출발했다.

이후 그의 업무와 주변 환경에 따라 인간관계론, 건강 등으로 테마가 바뀌기도 했지만 독서의 바탕은 여전히 철학 등 인문서적이다. 주말을 이용해 이호성 박사의 서재를 방문했다. 서재에 앞서 집안 분위기부터 온화한 그의 인상만큼이나 편안하고 정갈하다.

서재에 대한 첫 인상으로는 소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몇 번의 이사와 자선 바자회를 통해 대부분의 책을 기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주로 철학과 종교서적들을 서재와 안방에 마련된 책장에 두고 틈틈이 읽고 있다.

책장을 둘러보는 사이 이 박사가 조금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로 '진짜 보물'이 있다면서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어라? 이름만으로도 몸의 율동이 느껴지는 리듬악기 '드럼'이 방 전체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이 박사가 아이돌 가수의 최신곡을 연주했다. 그가 보물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 안방과 서재에 마련된 책장은 바자회 등에 많은 책을 기증해 비교적 소박했다.  ⓒ2011 HelloDD.com

◆철학과 종교 서적의 매력에 빠지다

이호성 박사의 독서 습관은 철학과 종교 서적 등 인문서적을 정독하는것으로 일관된다. 그중에서도 노자, 장자, 한비자 등 동양철학서와 인도사상 등 종교 서적에 심취해 왔다. "매일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모든 책을 정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공서적과 함께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바탕으로 쓴 책 등은 정독하며 깊이 의미를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처럼 인문서적에 빠지게 된 데는 헤르만 헤세의 영향이 크다. 고교시절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을 읽은 후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이 박사는 "헤세는 감성적 인간의 손을 들어줬다고 본다. 지와 사랑은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생각의 꺼리를 제공한 책이다. 이 책은 그후 줄곧 삶의 굴곡마다 사색의 단초가 됐다"고 소회했다.

철학 서적을 즐겨보는 그이기에 독서습관은 당연히 정독하는 편이다. 따라서 책을 맹목적으로 많이 읽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재에서 새벽을 밝히며 독서 삼매에 빠지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 독서하기에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잠이 올때까지 책을 읽다보면 어느때는 어슴푸레 새벽녘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없어졌습니다.

좀 아쉽긴 하지만 세월에 따른 신체의 변화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퇴근 시간 이후와 모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독서를 하는 편이다. 평소에는 소설책을 거의 보지 않는 그이지만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열독 중이다.

◆후배 연구자들 위해 방향 바꾸고 관련 분야 책 독파

"어린시절 막연히 우주는 얼마나 넓을까, 우주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죠. 서양과학은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는데서 시작됐는데 우리나라에는 기본 정신은 빠지고 결과에만 초점을 두는 과학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과 중심의 과학이 됐고, 기초과학이 없어 노벨상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 됐고요." 이 박사는 지금의 과학 환경이 옆길로 빠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그는 "과학의 기본정신과 성과주의가 함께 들어왔다면 좋았을텐데 우리나라에는 뿌리 없이 열매만 들어왔다"면서 "이런 시작으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연구환경이 됐다"고 지금의 과학계의 연구환경을 진단했다.

이호성 박사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표준연에서 원자시계 분야를 연구했다. 올해로 연구원 생활 27년째를 맞는 그는 10년전 어느 날 연구자가 아닌 경영자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당시 제안이 왔을때 주변에서 만류했습니다.

과학자가 무슨 경영을 하느냐고. 그런데 연구현장에 17년동안 있으면서 정책입안자의 역할에 따라 연구환경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경험하면서 후배 연구자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에 망설임 없이 결정했습니다."

평소 철학책을 정독하던 그가 책을 읽는 방향을 일시적으로 바꾼 시기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CEO 박정희' 등 관련 서적을 독파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자도 여러가지 길이 있다는 인식과 개념이 미약하다"면서 "과학자 중에도 정치가, 공무원 등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의 대화는 조용한 느낌이다.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들어 있어 외유내강(外柔內剛) 카리스마가 느끼게 한다.
 

▲이 박사가 후배 과학자들에게 더 나은 연구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연구대신 경영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보던 책들 중 일부다. ⓒ2011 HelloDD.com

◆드럼 두드리며 스트레스 날리고 생각의 깊이를 채운다

과학자로서 연구와 지원현장에서 27년을 지내온 그가 지난해부터 외도(?)를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미술과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언젠가는 해야지'하고 마음 속에 담아뒀던 작은 소망을 지천명(知天命)이 훌쩍 넘어서야 이룬 것이다.

물론 드럼을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냥 쉬울 것 같아서란다. 잠시 연주를 부탁해 보았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주말마다 1년 조금 넘게 배웠다는 그는 아이돌 그룹 빅뱅의 '거짓말'을 멋지게 소화했다.

드럼을 두드리며 리듬에 몸을 맡기는 그의 표정이 음악과 하나가 되며 멋진 하모니를 이뤘다. "드럼은 리듬악기로 다른 악기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쉽겠다 생각했는데 모든 악기를 아우를 수 있는 본능적 리듬감이 필요한 것 같아 요즘 슬럼프입니다.

그래도 드럼을 시작한 이후 스트레스로 인한 고민은 거의 없어진 것 같습니다.(웃음)" 멋진 연주를 끝낸 이 박사는 화두를 다시 과학쪽으로 옮겼다. 그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과학은 이용하는데만 투자해서는 한계가 있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면서 "앞으로 과학의 열매뿐만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를 튼튼히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계획을 내비쳤다.

그는 "기초과학 육성과 활성화를 위해 지인들과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다. 또 융합을 위한 모임과 독서 모임도 하고 있다. 아직 성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작은 성과라도 기초과학을 튼튼히 할 수 있도록 도움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방 하나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이호성 박사의 드럼.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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