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명장은 국가의 보물⑤]조병원 KIST 박사, 20년 이상 2차전지 연구 몰두
기술이전 5건, 최대 10억원

집에서 사용하던 전화기가 휴대폰으로, 회사에서 사용하던 데스크 톱이 노트북으로 대체 가능하게 된지 오래다. 그 덕분에 지하철이나 커피숍에서 IT 기기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이제 낮설지 않다.

앞으로는 더욱 작고 가벼운 IT 기기들이 등장함으로써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또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렇게 한 자리에 붙박이로 자리잡고 있던 전화기나 노트북을 어디로든 이동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2차전지'다.

2차전지는 화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변환되는 방전과 역방향인 충전 과정을 통해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과거 한 때 우리나라는 2차전지의 중요성에 눈을 뜨지 못한 적이 있다. 1980년대만 해도 그랬다.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들은 리튬2차전지 연구 내용을 학회에서 빈번하게 소개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남의 일에 불과했다. 2차전지 관련 연구가 '중소기업 고유업종 보호제도'로 보호받고 있어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업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중소기업도 2차전지 시장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연구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선진국이 리튬2차 전지에 매진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한 연구원이 있었다. KIST 조병원 박사다. 그는 해외 학회나 선진국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2차전지에 대해 왜 저렇게 난리일까를 곰곰이 생각했고, 뭔가를 깨달은 바 있어 2차전지 소재에 관한 연구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을 시작으로 조 박사는 지금껏 20년 이상을 2차전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조 박사는 먼저 KIST의 자체 연구비를 지원받아 88년부터 2차전지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2차전지연구는 관심 대상이 아니어서 지원금이래야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도 한국전력에서 지원하는 기술연구개발비를 만나게 된다. 그는 "한전에 장기적으로 전력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한 2차전지를 개발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한전도 요구를 받아들였다"면서 "한전으로부터 받은 연구개발비와 KIST 자체 연구비를 지원받아 80년 말부터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2차전지는 국내서 주된 연구관심 분야가 아니었지만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90년 초 일본기업 소니가 리튬이온전지를 상용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이온전지 붐이 일기 시작했다.

"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이 2차 전지를 연구하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휴대폰과 노트북에 가벼우면서 장시간 사용 가능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함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이 일제히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상용화하기 위해 기기들에 들어가는 2차전지를 개발했고 국내에서도 2차전지개발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미리 시작한 덕에 KIST가 시발점이 돼서 삼성과 LG등 대기업과 함께 2차전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 뒤 한국의 2차 전지 시장은 놀랍게도 5년 만에 일본을 따라잡았다. 노트북과 휴대폰 등 IT기기 부분에 있어서 세계 강국이라는 명칭까지 덩달아 따라왔다.

조 박사는 앞으로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를 좀더 싸고, 성능 좋게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상용화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돈과 기술개발의 쾌거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

◆ "소재가 저렴하면 제품도 싸진다"…천연 흑연 표면처리 원천기술 개발

전지의 성능과 특성을 좌우하는 것에는 양극, 음극, 소재, 분리막 등 4가지 핵심소재가 있다. 조 박사는 특히 소재 개발에 주력했다. 그는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양극소재와 음극소재의 에너지가 많아야 한다"면서 "가벼운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양·음극 소재를 집중 연구했고 2차전지의 주 목적을 전기차라고 생각해 전기차 상용화를 아이템으로 선정해 영향력 있는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조병원 박사는 인조 흑연을 쓰는 기존 2차전지의 극 소재를 천연 흑연으로 표면처리하는 원천기술을 2006년에 개발했다. 원 재료(천연 흑연)의 값이 싸기 때문에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전기자동차를 제공할 수 있다.

천연 흑연은 싸지만 그 동안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이 없어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 박사가 개발한 정제기술을 쓰면 천연 흑연으로 표면 처리가 가능해진다. 그는 "천연 흑연은 땅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렴하다.

원소재에서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소비자에게 더욱 싸게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그는 ▲리튬2차전지용 전이금속산화물(Li4Ti5O12)음극소재 제조기술 ▲리튬2차전지용 인산화물 양극소재 제조기술 ▲리튬2차전지용 불화유기용매 제조기술 및 분리막 표면처리 ▲리튬2차전지용 고용량/고안정성 양극소재 제조기술 ▲Solar Cell과 Ni/MH 전지를 결합한 가로등 장치 등 5건 정도의 기술을 기업과 기술계약을 맺었는데 각각 최대 10억원에서 최소 3천만원까지의 기술료를 받았다.

◆ 펼치지 못한 사업의 꿈, 사업화 연구 시발점되다

원가가 저렴하고 돈이 되는 기술, 즉 사업화 연구를 많이 하게된 이유는 그가 한 때 벤처를 세우고자 맘 먹었던 경험 때문이다. 조 박사는 KIST에 오기 전 전기학을 공부했고 KIST에서 3~4년간 전기도금을 공부해 도금분야의 기업을 차릴 예정이었다.

그러던 도중 KIST와 KAIST가 통합되면서 박사과정에서 전기학 2차전지 분야를 공부하게 됐다. 처음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사업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전기도금이 미래 유망사업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아쉽지만 조 박사는 사업의 꿈을 접는다.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나름의 계획도 세웠지만 전기도금이 전망이 없을 거라는 소문에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예상이 틀렸다. 반도체 시장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반도체는 도금을 해야 하는데 그 때 핵심이 되는게 전기도금이고 점차 각광받는 기술이 됐다.

실제 80년 중후반 함께 일하던 친구가 도금업체를 차려 성공했다. 사업에 뛰어들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에 따른 만회라고나 할까? 더 열심히 연구했고 그 결과 많은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게 됐다."

◆ "국내 환경에 맞는 전기자동차 개발해야…무조건 선진국 따라해선 안돼"

조 박사는 실험실에서 개발된 원천기술들이 상용화되는 것은 또 다른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기자동차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미국과 중국의 경우 땅이 크기 때문에 가정에 차고를 만들 수 있어 충전에 구애 받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충전소를 만들기 열악한 환경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5분 내외로 충전할 수 있는 2차전지를 개발하는 게 낫다. 조 박사는 "전지 자체를 주유소에서 교환하는 식의 충전방식도 이야기 되고 있는데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전지를 남의 것과 교환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면서 "에너지 밀도는 줄이지 않되, 5분 내외로 충전해서 50Km를 달릴 수 있는 2차전지를 만드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동기를 '즐거움'이라고 표현한다. "연구자체가 어렵고, 실패를 거듭하게 마련이지만 다른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로 실패하면서 연구를 하는 거다. 좌절할 필요 없다. 타겟을 잘 정해 방향을 잃지 않는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실패해도 즐겁게, 홀가분하게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또 조 박사는 "창의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감춰진 내면에 있는 것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난제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구성원들, 연구하는 학생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더욱 친해지고 함께 밤도 새면서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