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대덕-세종시 입지는 미래 위한 역사적 순리
"인류 기여 목표로 과학계 높은 책임감과 사명감 가져야"
"충청권은 결과 통한 나눔과 공생 지향해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대덕-세종시 입지가 거의 확정적인 듯 합니다. 정책담당자들이 아직 정식발표가 안나서 말을 아끼면서도 보도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보도가 난 이후 접한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이제부터'라는 입장입니다.

이제 입지가 결정된 만큼 결실을 맺도록 과학기술자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죠. 요즘 주변의 경험담과 보도 등을 보면 오늘날 우리 삶의 수준은 여러 해결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달았다고도 여겨집니다.

최근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원장 박영서)가 주최한 산업탐방에서 만난 정혜순 박사는 자신의 미국 경험을 들려주며 우리가 이제는 차원이 다른 사고를 해야할 때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정 박사의 발언을 요약합니다. 참고로 정 박사는 퇴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1년간 미국에 안식년으로 연구차 다녀왔다. 20년 전에도 1년간 산 경험이 있어 많은 비교가 됐다. 그런데 20년 전과 지금의 미국은 상당히 다른 나라가 됐다. 20년 전 많은 미국사람들은 여유가 있었고, 이방인에 관용적이었다.

그들의 차도 포드나 GM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가니 사람들의 생활이 각박해졌다. 조그만 법규 위반에도 어김없이 스티커가 발부됐고, 관공서는 빈번히 쉬었다. 재정악화로 세수가 줄은 것이 그 이유란다. 또 중산층 대다수의 차가 토요타로 바뀌어 있었다.제조업이 쇠퇴한 것이다.

20년 전에는 한국이 불안하니 미국으로 오라던 교포들이, 이제는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며 역이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20년전에는 미국서 살고 싶었으나 이제는 그럴 생각이 없고, 우리나라에서 여생을 마칠 생각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아직 세계 최고는 아닙니다.

개선돼야할 사회 정치적 문제도 많고, 과학기술의 수준도 세계적으로 못미치는 분야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일정 부분에서는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미국보다도 삶의 질이 높다'는 말은 분명 지금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 우리가 일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새로운 시대 도래

미국보다 잘사는 나라!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는데, 부족하나마 우리 사회의 일부 부분에서는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하는 시사점이 아닌가 하고 함께 자리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그동안 한국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세계에서 이슈로 나오고 있습니다. K-POP 공연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유럽에서 일어났고, 세계적 디자인 대회에서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고, 제조업 분야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가 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한국을 소개하며 세계적인 산업국가라고 이야기한 바도 이전에 화제가 되기도 했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직 우리가 부족한 점은 많지만 우리의 실력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적 수준이 된 것은 우리보다 외국에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돌이켜 보아야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분명 오늘의 우리는 세계적 삶의 수준을 누리고 있는데, 그럼 과연 우리가 세계에 기여한 것은 얼마나 되는가 하고. 1996년 무인 화성 탐사 우주선 패스파인더가 화성에 안착하고, 로봇차인 소저너가 활동을 할 때 세계 언론에서는 인류의 지(知)의 결정판이란 보도를 했습니다.

그 때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질문이 생각납니다. 거기에 한국은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하는.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사는데, 인류에 기여한 것은 얼마나 되는가?

◆ 한국, 이제는 인류 삶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오늘날 우리의 삶은 우리의 근면성과 창의성, 인내력, 도전정신, 열정, 긍정의 힘 등등의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아직은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원천 기술을 세계로부터 받아 그것을 값싸고, 질좋게 잘 만들어 잘 사는 것이지 아직 우리가 인류에 이것이 한국의, 한민족의 작품이라고 쉽게 내놓을 것은 그닥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론 노벨 과학상을 많이 받았지만 우리 보다 못사는 나라도 있고, 우리들의 창의성 또한 제품에서뿐 아니라 최근에는 기초과학에서도 많은 것이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의 위상에 걸맞는 대표작이 뚜렷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의 과학벨트를 조망할 필요가 있지 않나 여겨지기도 합니다. 다름 아니라 한국의 대표가 아니라 인류 미래에 기여하는 첨단 과학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입지가 대덕-세종시로 된 것은 역사의 순리에도 맞다고 봅니다.

하나의 과학집적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반세기에서 1세기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사람이 모이고, 장비가 설치되고, 네트워크가 가동되며 시너지 효과가 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은 가져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덕이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대인 70년대 초반인 약 40년전부터 준비해온 지역이니까요.

새롭게 시작할 경우 맨땅에서 해야했다면 대덕은 그나마 인프라가 갖춰졌다는 점이 이번에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 대덕, 출연연-KAIST-민간연의 '긴밀한 네트워킹 절대필요'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이제부터'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대덕이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모여는 있지만 네트워킹이 미흡하고 시너지 효과가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각종 정부출연연구원과 KAIST(한국과학기술원), 민간연구소들이 아직은 각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전략을 갖고 시스템 플레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동안은 한국 최고면 되었기에 협력의 필요성이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벨트 입지를 계기로 '인류에 기여하는 한국 과학'이란 새로운 목표를 갖는다면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입니다.

또 인류가 나아가지 못한 영역을 개척해 나갈 때 기회도 많다는 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는 금언도 그렇고, 신항로 개척 및 신대륙 발견으로 현대 문명을 주도한 유럽이 좋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개척과 도전은 분명 쉬운 길이 아닙니다. 많은 난관이 있고, 시련이 있으며, 결과가 없는 경우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이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이 된만큼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여하고 도전한다는 관점을 갖고 과감하게 시도할 여건이 됐고, 시대적 사명도 있다고 봅니다.

◆ 충청권, 다른 지역에 대한 배려와 공생의 정신 가져야

이 연장선상에서 대덕-세종시가 자리잡은 충청권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지역에 와서, 지역 경제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지역차원에 국한하는 것은 자제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과학벨트는 지역과 유관하기는 하지만 지역만의 사업은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21세기 명운을 걸고, 성공의 결과 인류에 기여하기 위한 대의명분을 가진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기술계와 지역내 오피니언 리더분들 가운데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과학기술계는 물론 지역이 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좋은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야함은 물론 이 결과물을 다른 지역과 나누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우리가 과학벨트를 유치했다고 기쁨에 겨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번에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지역을 배려하고, 결과물을 통해 나눌 수 있는 보다 품격있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인 2048년에는 '세계적 결과물을'

과학벨트는 한국이 처음으로 인류에 기여하기 위한 사업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앞으로 1세대 가량 남았습니다. 2048년이니 올해로부터 37년이 남았고, 중이온 가속기 완공을 2018년으로 계획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꼭 30년 뒤가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초·첨단 연구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이온 가속기 완공으로부터 30년 뒤에는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내겠다는 장기목표를 갖고 과학기술계가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 전에 결과가 나오면 더욱 좋을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지금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입지문제의 대강이 잡힌만큼 어떤 결과를 낼 것인가를 놓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과학기술계가 중지를 모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특히 대덕특구에 밀집돼 있는 출연연과 KAIST, 민간연, 기업 등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관계자들은 깊은 고민을 해야합니다.

인류 미래를 위한 도전, 대덕이 담당한다는 열정으로 소아(小我)를 뛰어넘어 '우리'로 단합하고, 뭉쳐야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주문입니다.

추신 - 대덕넷은 미력하지만 과학기술계의 단합과 도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각오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원에도 감사드리지만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도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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