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형섭 전 장관, 고 이태규 KAIST 전 교수, 토야마 박사, 권병현 대표 등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다만 그가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던 시대는 지났다.

집단지식의 시대에서 교사는 학생과 지식을 공유한다. 함께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오늘날의 스승은 지식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도록 돕는 조언자로서의 역할로 변하고 있다.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해주는 스승보다 홀로 개척해 나갈 수 있게끔 방향을 설정해주는 스승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도 기억에 남는 스승은 그런 분들일 것이다.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도영규 KAIST 화학과장, 곽상수 생명연 책임연구원, 이들 3명의 과학자를 통해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회고해 본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영원한 스승 최형섭 전 장관과 이태규 KAIST 전 교수, 그리고 공직을 은퇴하고 사막 녹화에 열정을 태운 토야마 세이에이(遠山正瑛) 박사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정년이 없음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권병현 녹색대사를 소개한다.

◆ 원자력계 대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최 장관은 여전히 살아있는 과학기술계 역사"
 

▲왼쪽부터 한필순 전 소장과 고 최형섭 전 장관. ⓒ2011 HelloDD.com
"늘 말씀하시던 이야기가 있었죠. 과학은 조국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자기 조국에 영예를 바칠 수 있는 과업에 전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죠.

또한 연구하는 사람의 성실하고 올바른 사고와 자세, 행동을 주축으로 하는 연구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하셨어요."

한국 원자력계 대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의 말에서 여전히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고인과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 중 하나인 한 전 소장은 "재미교포 과학자들을 유치하던 시절의 일이 생각납니다"라며

"'노벨상이 목표인 사람은 좋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국 근대화를 위해 나와 함께 가자'고 열정적으로 말해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이라는 옥토를 버리고 척박한 한국으로 돌아와 이것이 결국 한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습니다"라고 고인의 업적을 회고했다.

한 전 소장에 따르면 최 장관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기틀을 잡아 준 사람이다. 연구에 몰입하는 최 장관의 자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언제나 첫 새벽이 될 때까지 그의 실험실은 불이 꺼지는 법이 없었다.

그는 늘 훌륭한 연구는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겠다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후배 과학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최 박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살아있는 역사다.

한국 최초 정부출연연구소를 세우고, 현 연구소들의 맏형 격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대 소장과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오늘을 구축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 전 장관이야말로 '과학기술자들은 끊임없는 창의와 밤잠 안자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개인의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겨 스스로 새벽녘까지 연구소의 불을 밝히며 진리를 탐구해온 연구자이며, 한국 과학발전의 기틀을 잡은 정책가이고, 또한 국가과학기술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였습니다.

그의 연구 인생은 오늘날 대한민국 과학계 젊은 종사자들의 거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고 한 전 소장은 강조했다.

◆ 도영규 KAIST 화학과장…"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였던 이태규 교수"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로써 해방 후 서울대학교 초대 문리과 대학장을 역임하고, 대한화학회를 창립하는 등 우리나라 화학발전에 초석을 놓았던 이태규 교수. 그는 미국 유타대에서 정년퇴임 후 KAIST에 초빙돼 타계할 때까지 20년동안 우리나라 화학 연구와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액체의 점성도에 대한 이론인 'Ree-Eyring Theory'는 액체의 비-뉴톤성 점성에 관한 최초의 이론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유명한 이론이다. 평생동안 'Relaxation Theory of Transport Problemes in Condensed Systems'에 관한 논문 등 50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고, 이러한 업적과 공헌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포상과 다수의 학술상과 공로상을 수상했다.

현재 KAIST 화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도영규 교수와 유룡 교수에게도 이태규 교수는 좋은 스승이었다. 유 교수는 "지도 교수는 아니셨지만 우리나라 화학계 선구자로 외국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며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었습니다"라며 학창생활을 기억했다.

KAIST 1회 졸업생인 도 교수는 교수님과 함께 이론물리화학센터에서 1년간 연구를 했다. 그는 "연륜이 돋보였다. 인간적인 면모로 학생들을 어루만져주셨던 것 같다. 꼼꼼하기는 누구와도 비할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문화와 관련된 엉뚱한 에피소드도 많았다고 한다. 도 교수에 따르면 당시 이 교수는 외국에서 많이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한국 문화가 깃든 한국식 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죠. 센터에서 일할 때 저를 찾는 전화가 왔었답니다.

그때 교수님이 전화를 받으셨는데, 그쪽에서 '도영규 씨 있습니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도 선생 말씀이십니까?'하고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더니 상대방에서 웃었대요.

지금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도 선생이라고 하면 밤 손님을 의미하는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교수님이 저를 도 군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게 도 교수의 지론이다. 그러나 도 교수가 바라본 이 교수는 달랐다.

"전혀라고는 말을 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분들과 비교했을 때, 완벽했던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학문에 대한 일관된 집중 때문에 그러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KAIST에 따르면 이 교수는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과학인재를 육성하는데 열성을 다했다.

특히 이 교수는 미국에서 은퇴 후에도 국가의 부름에 응해 귀국한 후, KAIST에서 90의 연세까지 후진교육과 연구에 정진하는 과학자의 귀감이 됐다. 이러한 모든 업적을 기려 이 교수는 최초의 과학자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도 했다.

◆ 곽상수 생명연 책임연구원…"사막 녹화에 열정을 다한 노익장들"
 

▲왼쪽부터 곽상수 박사와 미래숲의 권병현 대표. ⓒ2011 HelloDD.com
"이 분들은 제게 힘을 실어주시는 분들이죠. 꿈을 꾸게 해줍니다. 국적에 관계가 없어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분들이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바이오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인 곽상수 박사는 국내외 조건불리지역(사막화지역, 간척지역, 오염지역 등)에 잘 자라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용 고구마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중사막화방지생명공학공동연구센터' 한국측 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가 평소 존경하는 스승은 2명이다. 공직을 은퇴하고 사막 녹화에 열정을 태운 토야마 박사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정년이 없음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권병현 녹색대사다. 곽 박사에 따르면 토야마 박사는 돗토리대 건조지연구센터 교수로 근무하고 65세에 정년 퇴직했다.

84세가 되던 1991년에 '일본 사막녹화실천협회'를 설립하고 민간인이 참여하는 녹색협력대를 발족했다. 이어 97세로 운명하기 전까지 내몽골 사막에 주로 머물면서 약 150회에 걸쳐 녹색협력대원 8000명과 함께 약 350만 그루의 포플러를 심어 사막생태원을 조성했다.

곽 박사는 "토야마 박사는 늘 '하면 된다' '노하우, 기술, 자금 3가지만 있으면 불모의 땅도 개발할 수 있다' '쉬지 않는 것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이다' '농학은 쉼이 없다' '실천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안 된다' 등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실천적 농학자의 길을 강조했습니다"라며 "이런 분들을 보면 60세는 어리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죠. 정년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저

역시 정년 뒤에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사막 녹화에 열정을 다하는 노익장이 있다. 미래숲 대표인 권병현 녹색 대사는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주중 한국대사를 포함해 평생을 외교전문가로 근무한 후 2000년 퇴임했다.

한중 청년교류와 사막 녹화를 위해 2002년 '미래숲'(한ㆍ중문화청소년협회)을 설립했으며, 매년 봄 100여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녹색봉사단을 이끌고 중국 대학생들과 사막에 나무도 심고 우의를 다지는 민간외교를 이끌어 오고 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약 4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권 대사는 지난해 유엔 3대 환경협약의 하나인 UNCCD(유엔 사막화방지협약)의 초대 지속가능 토양관리 및 녹색대사(Greening Ambassador)로 임명돼 글로벌 사막화 방지의 대표주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곽 박사는 "이들 두분이 존경스러운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막화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사막화 방지에서 나무를 심는 것은 1차원적인 해결 방법이예요. 근원적인 원인은 지역민들의 소득이 없다는 데서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사막에서 농사를 지어서는 소득을 바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축을 기르는데, 가축들에게 줄 사료가 없으니 풀을 뜯어먹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나무를 베게 된다.

사막화 방지가 가속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곽 박사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봄이면 불청객 황사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최근에는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계절에 관계없이 황사가 찾아와요.

중국에서만 매년 제주도 면적의 약 1.5배 땅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막화 지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라며 "이미 15년 전부터 이에 대한 문제점을 자각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사막 녹화를 위해 열정을 보여준 두 노익장의 끝없는 도전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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