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 선정이 일단락됐다. 선정에서 탈락한 타 지역 지자체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과학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며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사실 과학벨트 입지가 결정됐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바라는 꿈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을 뒷바침해야할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부과된 짐도 만만치 않다. 과학벨트의 핵심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는 건물만 지어올린다고 저절로 운영되고 성과를 낼 수 있는게 아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기초원천 연구 수준을 도약시키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국가의 연구 역량을 집결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전쟁이후 폐허 속에서 현재의 한국을 이끌어 오기까지 전후세대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산업화와 더불어 산업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과학기술계의 치열한 노력이 자리잡고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 후 혁명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을 본격 추진했지만 당시의 한국사회에는 이를 가능케 할 변변한 산업연구소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과학 육성이라는 또하나의 과제에 직면해야 했다.

그래서 1965년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춰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안을 미국측에 제시했고 미국과 한국 양국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것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었다. 그후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유능한 한인과학자들이 선진국의 앞선 연구환경 자리를 마다하고 '국가 발전'이라는 목표아래 속속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밤을 하얗게 밝히며 연구에 몰두했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과학입국을 위한 계획을 본격 수립하고 허허벌판이던 대덕 지역을 제2연구단지 부지로 확정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정부출연연구소와 민간기업 연구소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이들 연구소들의 연구성과가 국내 산업발전으로 이어지며 한국의 경제성장은 가속도를 더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덕에는 29개의 정부출연연구소와 국내 대기업의 민간 연구소들이 자리하게 됐다. 국내 최고의 연구 인프라를 갖춘 과학도시의 면모를 갖췄음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 한국의 위상은 올림픽 개최국을 넘어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후진국의 선진 모델로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성과속에서도 한국 과학계는 기초연구보다 응용연구에 치우쳐 원천기술이 없으며, 덕분에 노벨상 하나도 없는 나라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과학벨트 입지 확정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말해 한국 과학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이름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알맹이를 제대로 채워나가야 한다. 기존 대덕의 연구시설에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는 것은 이를 위한 주춧돌을 놓는데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지금 당장 머리를 맞대고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는 추격형 연구에서 벗어나 20년, 30년 후 한국의 중심에 될 산업 아이템을 정하고 그에 대한 창조적인 연구에 집중해야 한국의 새로운 100년과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

이들이 내 놓는 연구 결과에 의해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스스로 몰려오도록 해야 하며 나아가 과학벨트 입지가 글로벌 테크노폴리스의 면모를 갖춰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변화해야 한다.

기초연구는 기존 응용연구와 다르다. 기초연구는 인간의 근원적인 호기심을 채워가는 분야다. 단시간에 성과를 기대할수 없고 어느 때는 아니, 더 많은 경우 연구는 실패할 수도 있다. 정부는 과학자들이 기초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연구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벨트는 과학자들 뿐아니라 지역을 초월해 정부, 국민 모두가 합심해 성공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과학이 국가 발전 차원을 넘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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