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뿌리 한국과학원부터 2011년 국내 최고 과학교육기관까지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태어나 현재는 과학기술 국가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1971년, KAIST의 뿌리가 되는 한국과학원부터 2011년 국내 최고의 과학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 일련의 사진을 통해 KAIST의 40년을 살펴본다.

▲1970년 8월, 한국과학원의 청사진을 그린 실리콘벨리의 아버지 프레데릭
터만 박사(오른)의 한국 방문은 카이스트 설립의 첫 걸음이었다.
ⓒKAIST

▲1970년대 초 서울 홍릉 캠퍼스에서 이공계 특수대학원으로 출범한 카이스트는
우리나라 이공계 교육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당시 카이스트의
서울 캠퍼스 전경.
ⓒKAIST

▲1971년 4월 14일 과학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의 합동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나갈 원동력 축의 큰 그림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KAIST

▲제 1회 신입생 선발 입학시험 모습. 1973년 1월에 이웃 경희대학교 공학동에서
첫 번째 입학시험이 치러졌다.
ⓒKAIST

▲1981년 1월 5일 한국과학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통합되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발족하게  된다. (왼쪽부터 이한빈 이사장, 이주천 초대 원장,
이정오 과기처 장관)
ⓒKAIST

▲1986년 3월 컴퓨터 수업 모습. 컴퓨터를 도구로 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모든 신입생이 첫 학기에 컴퓨터 과목을 수강하도록 했다.
ⓒKAIST

▲한국과학기술대학교KIT의 첫 입학식. 첫 신입생을 맞은 KIT가 1986년 4월 모든 건설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과학기술대학의 역사를 열었다.
ⓒKAIST

▲대전 대덕단지 한국과학기술원 기공식. 카이스트는 KIST와 통합 홍릉시절을 보내다가
1987년 다시 분리되어 대덕 캠퍼스로 이전한다. 이때 KIT와 통합 운영하게 되면서 본격
카이스트 시대(한국과학기술원: KAIST)의 보무를 뗀다.
ⓒKAIST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협약 조인식.산학협동 체계는 카이스트의 청사진이
되어준 실리콘밸리에서도 볼 수 있듯 카이스트의 건학이념이었다. 이로써 대학 내에
특수한 목적을 지닌 연구센터나 연구소 등이 하나둘 생겨났다.
ⓒKAIST

▲1970년대 과거 축제와 체육대회의 모습들. 학습뿐만 아니라 체력단련에도 열정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KAIST

▲KAIST의 역사만큼이나 기나긴 역사를 가진 동아리 모임.  (왼)초장기 태권도
동아리의 모습, (오른)근래, 태권도 동아리 단원들이 시범 보이는 모습.
ⓒKAIST

▲1986년 한국과학기술대학, 태울축전의 대단원의 막을 알리는 마라톤대회에는 거의
모든 카이스타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참여한다. 삶이 곧 마라톤이라는 말을 증명하듯이.
ⓒKAIST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두뇌인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활발한 학생교류를 목적으로
해마다 두 학교가 번갈아 개최하는 정기교류전인 ‘사이언스 워Science war’란 이름의
카포전을 벌인다.
ⓒKAIST

2006년, 축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는 콘서트는 카포전의 열기를 식히는 동시에
새로운 열정을 열어젖히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KAIST

▲기계공학동 로비. 학생들은 밤 깊은 줄 모르고 과제 해결을 위해 모여앉아 몰입하고
있다.
ⓒKAIST

▲미국 MIT 석좌교수 출신의 서남표 박사는 2006년 카이스트의 13대 총장으로 선임되었고, 2010년 14대 총장으로 재임되었다. 서남표 총장은 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계기인 강연에 특별한 열정을 쏟는다. ⓒKAIST

▲2009년 학위수여식,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인재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수여식에

참여했다.
ⓒKAIST

▲현재, 카이스트 캠퍼스의 야경. ⓒKAIST

▲KAIST의 힘찬 미래를 그리며... '파이팅!'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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