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狂' 정혁 생명연 원장 "연구도 스포츠맨십 필요"
제대로 된 평가 문화 정착 시급…"연구하기 좋은 연구원 만들겠다"

'괄괄하다, 화끈하다, 화통하다, 까다롭다, 별나다, 세다, 단호하다…' '인공씨 감자 박사'로 이름을 날려왔던 정혁 신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을 가르키는 수식어들이다. 한국의 감자 기술로 세계 식량난을 돌파하겠다던 원대한 포부에 인생을 걸었던 그가 이제는 연구원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소신을 펼치게 됐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줄 겁니다. 원장을 한다고 하면 행정에 치어서 하던 일 놓아버리는 게 현실이죠. 이번 기회에 안 그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모든 해결책은 일하는 손끝에서 나옵니다. 제가 믿는 단 하나의 모토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성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건 위선이에요. 직접 책임자가 실험을 해가면서 이끌고 나가야 막혀있던 문제도 뚫리게 됩니다." 첫마디부터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기존 연구 성과도 자신감을 뒷바침하고 있다.

물론 인공씨감자에 관한 것이다. 그는 "두고 두고 좋은 소식을 계속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때를 만났다. 중국에 시범 공장 계약을 체결하고 기술이전 준비를 하고 있다"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가만 해도 5∼6개 국가다.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 정도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팎으로 좋은 소식만 들리고 있는 요즘, 정 원장의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이렇듯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연구자가 연구를 하기 위해서란다.

새벽 5시에 연구실에 들러 오전 9시까지 연구에 몰두한다. 오전 9시부터는 원장 업무를 본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많은 먹이를 먹는 법이다'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하겠다는 그는 "새벽에 연구를 하니 몰입이 더 잘 된다"며 "새벽에는 전화가 별로 걸려오지 않아 더욱 더 집중할 수 있다.

업무 효율이 거의 3배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새벽형 인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대를 바꿔 끼고 태를 바꿔 쓴다는 뜻이다. 정 원장은 리더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과학기술자들 스스로가 그동안 대내외적인 환경 여건 때문에 스스로 진이 많이 빠졌고, 사기도 떨어져 있었다. 내부적인 원인보다 외부적인 여건 탓에 과학기술계가 홀대를 많이 받았다"며 "그래도 과학기술인 스스로가 자긍심을 갖고 자존심을 세운다면 외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견딜 수 있다.

묵묵하게 은근과 끈기를 배양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연구 책임자들이 먼저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가 과학기술계에 요구하는 것들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중고참 과학기술자들이 먼저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정 원장은 "연구 책임자로 일을 할 때 정말 24시간 내내 연구에 대해 생각했다. 꿈에서도 나왔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못한 곳에서 막힌 게 뻥 뚫린다"라며 "계속해서 연구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자가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책임자가 핵심되는 부분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일이 해결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고 외부 인건비 달라고 말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네부터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침체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꼬집은 그는 "책임자들이 무조건 학생들을 시킨다. 그렇게해서 실험이 잘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실험실 미팅을 통해 연구 진도를 체크하는데, 진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진도 체크할 필요가 없다"며 "과학기술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리더가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 내부에서 만능 스포츠맨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연구에도 스포츠맨십이 정착돼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정 원장은 "스포츠를 통해서 살아가는 인생 철학을 체득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겸허히 승복하고, 승부에서 진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한다. 그런 정신이 연구계에 퍼져나가야 한다"며 "스포츠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그게 아름다운 이유다. 이기려면 체력을 기르고 남다른 기량을 연마해야 한다.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 연구도 똑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다른 결과를 내고 싶고, 뭔가를 세상에 남기고 싶다면 남이 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도 즐거워서 해야 한다. 그게 26년 연구생활을 통해 터득한 진리다"라며 "내 재임기간 동안 연구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하고, 그런 연구원들을 있는 힘껏 밀어줄 예정"이라고 자신만의 경영 철학을 피력했다.

정 원장은 특히 "연구와 실험을 마치 취미생활 하듯이 하는 가장 행복한 연구자들이 가장 많은 생명연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꿈이었다"며 "우리 모두가 희망과 기대로 가슴 설레던 연구원 초년병 시절로 돌아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하게 일하는 연구원으로 만들어 가는데 힘을 모아가자"고 강조했다.

◆ "연구하기 좋은 생명연 만들겠다"…평가 문화 정착 시급

"연구자들이 제일 견디기 힘든 부분은 평가 부분입니다. 평가위원들 10명이 쫙 앉아있는 데 그 중에 연구원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위원들이 1∼2명 정도거든요. 그래서 연구원들이 결과를 통보받고 납득을 잘 하지 못하는 겁니다.

새로운 평가 문화 정착이 시급합니다. 객관성과 공정성, 전문성 3대 지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름아닌 전문성입니다." 연구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다는 그는 무엇보다 연구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원장은 "전문성만 따라오면 나머지는 다 해결될 수 있다. 10명 중 7∼8명은 전문가들을 배치해야 한다"며 "피평가자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앉혀놓으면 그 누구도 결과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신념이 모두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확신을 줄 수 있으려면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원장은 "잘못된 부분에 있어서는 소신있게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대통령 앞이라도 예외는 없다"라며 "기관장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정 원장이 임기 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점 사업은 5가지로 요약된다.

▲대학ㆍ기업과의 차별화 및 적극적인 협력과 경쟁을 통한 연구원 역할과 위상 제고 ▲주요 R&D 인프라나 거점센터 확충 및 내실화를 통한 질 높은 서비스 제공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국내외 협력연구 수행 ▲선진화된 R&D경영시스템 도입ㆍ운영 등이다.

5가지 사항은 모두 '연구소는 연구를 잘 해야 한다'라는 그의 모토가 잘 실현되기 위한 핵심 사항이기도 하다. 그는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에 정책기능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가의 바이오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허투루 정책을 기획할 수는 없다"며

"진짜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중장기 발전 계획을 짜야 하는데, 지금 출연연의 정책실은 고유 기능을 상실하고 기관평가에만 매달려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정책실은 앞으로 고유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조정할 계획이다.

정부 부처에서 아쉬워하는 부분이 큰 이슈가 터졌을 때 실시간으로 원인 분석이 안 된다는 점"이라며 "정책 기능을 강화해서 국가에 큰 이슈가 터졌을 때 원인 분석이나 해결책을 실시간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프라 확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내셔널 아젠다 과제를 대폭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판을 짜둔다는 계획이다. 그는 "인프라가 중요하다. 기존에 잘 돌아가고 있는 인프라는 더 잘 되게하고, 쓸데없는 인프라는 대폭 정리할 것"이라며

"새롭게 구축될 판을 중심으로 대내외 기관별 협력연구가 진행되고, 적극적인 협력과 경쟁을 통해 연구원 역할과 위상이 제고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과학기술계와 상생효과 기대"

"이제부터 진짜 힘든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과학기술인들이 고민이 많아져야 합니다. 저한테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됐어요." 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거점지구로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선정된 것과 관련,

그는 "하드웨어가 바뀐다고 해도 연구원들이 하는 일은 바뀌지 않는다. 껍질에 치우치는 과학기술 정책 집행은 지나간 시대의 아젠다"라며 "그 안에 콘텐츠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가 문제다. 과학기술인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대한 좋은 콘텐츠로 실력을 길러나가야 한다는 그는 "물론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실력도 없이 몸집 불리기만 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라며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하게 초지일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단지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 무용론에 대해서도 정 원장은 "과학벨트에 지원을 해주면서 이쪽을 내팽개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좋은 측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초과학연구원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우리도 덩달아 잘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서로 상생효과를 낼 수 있도록 과학기술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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