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기관장 인터뷰]'준비된 기관장' 박필호 천문연 원장
"세계 톱 수준 연구원 도약 위해 천문연만의 연구개발 시급"

"작지만 강한 강소형 일류화 연구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선임연구본부장에서 기관장으로 변신한 박필호 한국천문연구원 신임 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취임하자마자 간부들 수부터 줄였다. 36명이었던 간부들을 21명으로 대폭 줄였다. 이유도 색다르다. 바로 열정 때문이다.

박 원장은 "확대 간부회의를 할 때면 36명이 다 앉지도 못할 뿐아니라 마지못해 끌려나온 느낌으로 회의에 참여한다"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연구소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간부진을 갖추자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간부 조직 체계 정리는 그가 일찌감치 구상한 강소형 일류화 방침의 첫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간부들만이 아닙니다. 연구원에 재직하는 사람들 모두가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직원들이 갖고 있는 숨겨진 열정을 깨우고 싶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저마다 사명감을 갖고 있어야죠. 정부출연연구소는 국책연구기관입니다. 당연히 사명감이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 분야에 대해서 국가 대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연구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은 당연히 따라와야 할 덕목들이죠." 원장이 되기 전 선임연구본부장을 역임한 그는 이미 연구원 전체 살림을 꿰뚫고 있던 살림꾼이었다. 덕분에 준비된 원장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박 원장은 "4년4개월 동안 내부 살림을 거의 맡아왔다. 어떻게 보면 그 기간 동안 원장이 되기 위한 준비를 미리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장이 됐다면 힘들었을 수도 있었는데 시간을 번 셈이다.

한차원 높은 경영으로 연구원을 이끌어 나갈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일반인들에게 천문연은 연구보다는 과학대중화에 앞장섰던 대표 연구기관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것이 박석재 전 원장이 과학문화 전파에 남달리 공을 들여왔다.

예산을 6년새 3배로 끌어올려 새로운 연구소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박 원장은 "박석재 전 원장님이 과학문화 창달에 노력해 천문연을 밖으로 알리신 업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과학문화 창달도 좋지만 우선해야 할 것이 연구"라며 "연구기관은 연구 성과로 승부를 내야 한다. 우리의 비전이기도 한 우주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 수준의 천문기관을 만들기 위해 열정과 소통, 문화를 키워드로 기관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라고 새삼 포부를 밝혔다.

◆ "선진국 쫓아다니기 급급? 이제는 일류화 실현할 것"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언급되는 나라가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등이다. 작으면서도 전세계 국가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나라들이다. 박 원장은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류화다.

일류화를 실현할 수 있다면 자연히 천문연의 국제 위상도 올라가고, 유명한 과학자들이 앞다투어 천문연으로 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소형 일류화'는 연구소가 지향할 키워드다. 수시로 변하는 세태와 분위기가 과학기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즘 실속없이 말만 번지르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박 원장은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현재 천문연에서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같은 국제적인 학술지에 제1저자로 실린적이 없다"며 "어쩌면 부정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3년째 선도 연구 그룹을 만들어 이에 대한 대응을 해왔다. 핵심기술연구그룹의 연구은 세계 탑 수준이다. 곧 실현되리라고 본다."

물론 세계 탑 수준의 국제 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을 올린다면 국가 R&D 예산을 쓰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인력과 예산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서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네이처와 사이언스 급 논문이 1년에 20편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기관에 비해 턱없이 작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천문연이 논문을 실을 수 있다면 자연히 작지만 강한 연구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제 특허 부분도 마찬가지다. 박 원장에 따르면 천문연은 논문과 마찬가지로 국제 특허를 낸 적이 없다.

그는 "우리 스스로 특허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잘못된 인식"이라며 "국제 특허를 올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술이 활발한 천문 분야인만큼 앞으로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사실 천문연만큼 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도 드물다. 연구하고 싶은 분야에 사용할 장비를 평소 스스로 개발해내야 하는 과정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하나가 적외선 분야다. 국방과 바로 직결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보안에도 신경써야 한다.

박 원장은 "적외선 분야에서 10년 이상 키워온 그룹이 있다. 이 그룹들을 특화시켜 나갈 생각이다. 이쪽에서 나온 기술들은 이미 국방 쪽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화 역량을 축적해왔으면서도 정작 산업화에 이르지 못한 데는 천문연 나름대로의 관성이 지배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기초연구만을 담당하는 연구원 분위기 탓인지 산업화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지배당한채 고급 기술들을 알릴 생각도 안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업쪽에서는 천문연이 갖고 있는 기술들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인력개발을 담당하는 강사분이 이런 말을 한 것을 잊을 수 없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천문연이 다 갖고 있더라고. 기업 쪽에서는 출연연이 기술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우리 역시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탓"이라며 "연결고리만 있으면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본다.

그 부분은 조직적으로도 강화할 생각이다. 외부 전문가들을 끌어들여 우리 기술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고, 활성화시킬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갖혀있던 우리 인식이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세계 1등 천문연이 되기 위한 방법은?…"'Made in 천문연' 발굴"
 

▲과학자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박 원장이 책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2011 HelloDD.com

천문연이 세계 1등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박 원장의 대답은 '유니크'라는 단어였다. 그는 "천문연이 일류다라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과의 공동연구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 사업 역시 1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며 "망원경을 만드는 데 여러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면 자연히 그룹에 들어갈 수 있다.

유니크한 소재로 대한민국 천문연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낸다면 세계 1등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물론 박 원장의 야심찬 도전을 위해서 준비돼야 할 것도 많다. 가장 애로사항은 인력 부분이다.

정부가 인력 활용 부분을 제도로 묶어놨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함에도 더 뽑아 쓸 수 없다는 고민이 있다. 박 원장에 따르면 천문연의 현 기초연구비는 1인당 3억원 수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기관의 경우 1인당 1억5000만원 선의 연구비를 적당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2배 가까이 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력이 사업에 비해 훨씬 적다. 늘릴려고 해도 정부에서 막고 있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인력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거물급 과학자들도 영입해볼 생각이다. 3명만 보유하고 있어도 내부 수준이 올라간다. 일류들과 함께 연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우리가 일류가 돼야 거물급 과학자들이 합류할 수 있다."

천문연이 국제 사회에서 일류로 불리는 날이 오도록 만드는 게 박 원장의 최종 목표다. 히딩크가 이룩한 4강 신화의 기적처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그의 신념이 앞으로의 천문연을 기대케한다.

"영화 '300'을 봤는가. 300명의 스파르타 군이 17만 명의 페르시아 군을 상대한다. 물론 다 죽지만 정신은 이어가지 않는가. 300명의 군인들이 한가지 생각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신이 쭉 이어진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전체 직원이 249명이다. 원장인 저부터 맨 밑의 직원까지 같은 생각을 가지면 응집력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큰 조직은 어렵지만 작은 조직은 가능하다.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 대기업보다는 튼실한 벤처기업이, 졸부보다는 알부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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