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항우연 신뢰 회복 등 난제 해결 국면 전환 시급
3차 발사 용단 못할 경우 심각한 휴유증 예상…향후 수개월이 중요

지난해 6월 10일 오후 5시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KSLV-1)가 하늘로 치솟았다. 1차 실패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연구소는 물론 국민 모두가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2009년에 이어 이번 2차 발사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1년. 나로호 핵심주체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공황에 가까운 충격에서 벗어나 겉으로는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내부를 들여다 보면 여전히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산·학계의 항우연 불신과 원장 중도 사퇴 등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아직도 정상 궤도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러시아와 한국 정부간 나로호 3차 발사에 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항우연은 물론 국가 우주개발 미래도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된다.

나로호 발사 실패의 원인 분석을 위해 조사 중인 한·러 조사위원회의 결과 발표와 나로호 3차 발사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우주개발 핵심주체인 항우연과 교육과학기술부가 시급히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숙제를 안고 있다.

◆ 충격의 나로호 2차 실패 '그 후 1년'…첫 번째 과제 "신뢰 회복 시급"

2차 발사 실패→충격→공황심리→조사위원회 가동→항우연 내부와 러시아 실패 책임 공방→한국형 발사체사업 예산 통째 삭감→항우연 기관장 중도 사퇴→연구 현장 침체→항우연 배제 별도 발사체사업단 조직→조사위원회 정부 차원 재구성→정부와 항우연 간 불신 심각→연구열정 분위기 위축.

나로호 발사 실패 이후 지금까지 1년간 걸어온 한국 우주개발의 간략한 이력이다. 항우연과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해결 과제는 마치 한국 과학기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집대성한 농축표본처럼 돼 있다.

정부와 연구현장 간의 종속적 불신 관계, 콘트롤타워 부재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연구 현장을 덮친 실패 후유증과 한꺼번에 몰려든 여러 가지 악재들, 그로인한 각계의 불신까지 겹쳐 항우연으로서는 지난 1년간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정부는 1990년대 우주R&D를 본격화한 이래 처음으로 항우연 중심 개발체제가 아닌 개방형 사업단 형태의 한국형 발사체사업단을 별도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다 나로호실패 조사위원회를 다시 꾸리는 등 강수를 둬가며 우주개발 신뢰 회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다. 전반적으로 나로호 발사를 주도했던 항우연 연구원들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을뿐 국가 우주개발 상황은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발사체 사업을 주도할 항우연을 거의 배제하다시피 우주개발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정부와 연구현장간 신뢰지수는 과거에 비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 양상이다. 우주개발 주무부처인 교과부에서는 항우연의 폐쇄·독점성을 지적하며 항우연 중심R&D체제에서 벗어나려 시도 중이고, 연구현장에서는 우주개발 정책들이 현장과의 실질적·기술적 검토와 협의·조정 없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자괴감에 빠진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항우연 한 책임연구원은 "정부와 출연연간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정책 형성과정에 과학기술자 의견이 반영돼 움직였다. 그에 반해 지금은 정부 정책에 연구 현장이 배신감만 느낄 정도"라면서 "정부와 연구소가 손뼉을 치고 박수소리가 나야 뭐라도 될 판에 지금은 현장에 대한 불신이 깊고, 정부와 현장이 지배-종속의 개념으로 치닫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한 연구원은 "우주 엔지니어들의 기술적 여론이 현 우주개발 정책에 제대로 담기게 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며 "현재 세워져 있는 2021년 목표의 한국형 발사체 프로젝트와 새로 생긴 2018년 10톤짜리 발사체 소형위성 발사 프로젝트는 모두 시험·평가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현 상황에서 100% 실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윤대상 교과부 우주기술과장은 "기획재정부, 국회, 산업계 등 우주개발에 대한 대체적 의견이 국가 우주개발은 항우연 중심이 대세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라며 "항우연 중심으로 R&D사업을 추진했던 기존 상황에서 앞으로는 프론티어사업단처럼 국가 산·학·연 역량을 결집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과장은 "정부는 항우연을 배제한다기 보다 제대로 런닝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연구현장의 의견도 더 수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항공우주계 한 원로는 "새로운 항우연 원장이 선임되면 하루빨리 정부와 산업계 등 사회와 신뢰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며 "국가 우주개발 선순환의 시발점은 정부와 연구현장간의 신뢰부터"라고 말했다.

◆두 번째 과제…우주개발 정책·연구 리더그룹들의 자성도 시급

"나로호 사업의 잘못된 것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진솔한 성찰과 반성이 없다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외부로부터의 강요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차초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해야 합니다."

항우연과 밀접히 연관을 맺고 있는 한 우주개발 사업자의 주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 사업자는 한국 우주개발의 근본적인 문제는 시스템이나 외부의 문제도 있지만, 항우연 내부의 핵심 연구리더그룹이 갖고 있는 인식에도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열심히 했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발사체에서 몇차례 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정부나 외부의 시각이 비판적으로 나온다면 정작 그들은 무슨 대안을 갖고 있는가, 할테면 해봐라' 같은 막가파 식의 입장이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사업자는 "나로호 문제 원인을 스스로 찾고 자성하는 자세를 갖기 전까지는 문제의 해결방법이 없다고 본다"며 "어쩌면 이런 시각을 갖게 된 것이 그동안 정부의 지나친 보호와 유착 때문이라는 생각도 있다. 내부의 변화 없이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럼 우주개발 현장에서는 어떤가. 그들은 우주개발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하며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 세워진 국가 중장기 우주개발 계획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일관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항우연과 이웃해 있는 한 출연연 책임연구원은 "가정사까지 포기하면서 밤샘으로 연구에 몰두했던 항우연 연구원들이 요즘 놀고있다는 소리를 듣게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며 "연구원이 진정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연구원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이다. 우주개발 R&D에 인생을 건 연구자들이 있다면 그와 똑같이 우주개발 정책을 인생을 걸고 책임져 나갈 관료들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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