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식 교수, '환경 친화성 헥사메틸렌 HDI 합성 신공정 기술' 개발
"예산 고민?…이산화탄소사업단 지원 덕분에 연구 올인 가능했다"

폴리우레탄 제조에는 맹독성 물질인 '포스젠(Phosgene)'이 필수 소재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방사능 만큼이나 인체에 유해한 포스젠을 다른 물질로 대체할 방법은 없을까. 독일 등 극소수 나라에서만 성공한 특수 공정이 조만간 한국에서도 실현될 전망이다.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는 일본뿐 아니라 주변국들에까지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누출 방사능이 기류를 타고 우리나라로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되면 세포 조직이 손상되는 피해가 발생한다.

심한 경우 피부가 허물처럼 벗겨지거나 암에 걸려 며칠 안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유전자 변형을 가져와 기형아가 태어나는 등 자손에게까지 재앙이 이어진다. 원자력은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싼 값으로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더욱 안락하게 해준다.

하지만 후쿠시마의 경우에서 보듯 만에 하나의 사고로도 방사능 발생 리스크를 안고 있어 이런 양면성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원전 건설에 반기를 드는 배경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양면성을 원전만 갖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원전의 방사능만큼 위험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생활의 필수품 소재로 쓰이는 '포스젠'이다. 포스젠은 원래 2차대전 때 독가스로 이용했던 기체다.

맹독성을 갖고 있지만 반응성이 커서 합성수지나 고무, 접착제, 스티로폼, 폴리카보네이트(자동차 내장재, 렌즈, 전자기기, 휴대폰 껍질 재질 등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폴리우레탄 등의 제조 원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포스젠을 사용하는 공장에서 누출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과거에 실제로 그런 사건이 발생했었다. 1984년 12월 2일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에 위치한 미국계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에서 한밤 중 포스젠 등 유독가스가 누출된 사고였다.

이로인해 한밤 중 2800여 명의 주민이 죽고 20만 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해 이 사고는 인류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불리고 있다. 생명을 한순간에 빼앗아가는 위험한 포스젠이지만 현재 국내 생산되는 폴리우레탄은 전량 포스젠을 사용해 제조한다.

최근에는 폴리카보네이트를 제조하는데 있어 포스젠을 사용하지 않는 공정으로 점차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약 70% 가량의 공정에서 폴리카보네이트 제조에 포스젠을 사용하고 있다.

이토록 위험한 포스젠을 대체할 수 있는 신공정 기술이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연구 중이다. 이런 가운데 김훈식 경희대 화학과 교수가 맹독성 물질인 포스젠을 이산화탄소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헥사메틸렌 합성 반응기구. ⓒ2011 HelloDD.com
그가 개발한 '환경 친화성 헥사메틸렌 디이소시아네이트(HDI) 합성 신공정 기술'은 폴리우레탄의 원료인 이소시아네이트(isocyanate) 합성시 사용되는 맹독성 물질인 포스젠을 이산화탄소 또는 이산화탄소 유도체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특히 여타 지방족과 방향족 이소시아네이트 합성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국내 폴리우레탄 산업의 녹색성장을 촉진하고 관련 원자재 산업의 신규 시장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불리는 이산화탄소의 활용과 동시에 포스젠 사용에 따른 위험성과 환경 부하를 줄일 수 있는 일석이조 연구를 수행한 김훈식 경희대 화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 인도 보팔사건 충격으로 시작된 포스젠 대체공정 만들기…어느덧 20년

김훈식 교수가 환경 친화성 HDI 합성 신공정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84년 인도 보팔사태 모습에 충격을 받고 김 교수는 포스젠을 대체할 수 있는 공정을 만드는 것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녹색'이란 단어를 많이 이용하지만 그 당시만해도 청정이란 말을 사용했고 청정공정, 청정화학의 관점에서 연구를 했다. 그러다 84년 인도 보팔사건을 보며 청정공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돼 최근의 연구성과를 뒷받침하고 있는 기초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김 교수가 꾸준히 해온 기초연구는 지난 2002년 교과부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인 이산화탄소저감 및 처리기술개발사업단(이하 이산화탄소사업단)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연구 과정에서 우수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교수도 물론 연구에 참가하지만 대학원생과 협력하며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초반에는 박사과정 학생도 부족하고 인력이 자주 바뀌곤 해 숙련된 일꾼이 부족해 연구 활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비가 장기적,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훌륭한 인적자원이 우리 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김훈식 교수는 "최고의 인적자원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우리학교에 국한하지 말고 실력과 열정을 가진 연구진들을 적극 발굴하여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HDI 합성 신공정 기술 2015년 완공 목표…KIST와 공동연구 추진

김훈식 교수가 개발한 '환경 친화성 HDI 합성 신공정 기술'은 '지방족 디우레아의 제조방법', '알킬렌 카보네이트의 제조방법', '지방족 디카바메이트의 제조 방법' 등 3건의 국내 원천기술 특허 출원과 등록을 마쳤다.

또 2편의 SCI 논문을 발표, 산업화를 위해 지난 1월 말 기술이전도 완료한 상태다. 이제 김 교수는 상용화가 가능한지 확인하는 단계의 연구만을 앞두고 있다. 그는 "본격 상용화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문길주)과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이라며 "늦어도 2015년 상용공장 건설을 완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때문에 이 공정을 이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량으로 줄여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결과를 통해 국가와 산업체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을 알림으로써 이산화탄소 저감에 대한 국민 의식 개선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선진국의 왕성한 포스젠 대체공정 활동, 반면 늘어나는 포스젠 공정
 

▲HDI 시장이 확대되면서 프랑스와 일본, 중국 등이 HDI 공정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2011 HelloDD.com

독일을 비롯 선진 유수기업들(Bayer, Huntsmann, BASF, Mithui Chemical, Rhodia 등)은 1980년대 초부터 포스젠을 사용하지 않는 이소시아네이트 제조기술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상용화됐거나 상용화 단계에 와 있다. 특히 독일 화학전문업체 BASF는 포스젠 없이 HDI를 제조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도 받아 상용화 했다.

또 중국의 란저화학물리연구소도 이산화탄소를 고정화한 후 탈수제를 이용해 이소시아네이트를 제조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포스젠을 이용해 만드는 폴리커버네이트를 쓰지않는 공장을 만든 회사들이 있다.(제일모직, 호남석유화학 등)

그러나 국내 포스젠 관련연구는 미미한 실정으로 여전히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게 현실. 김 박사는 "기업체는 환경적, 경쟁력 면에서 뛰어나지 않으면 손해를 보면서까지 효율성 없는 공정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포스젠은 위험하고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는 물질"이라는 점을 들어 포스젠 대체공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스젠이 위험한 화학물질임에도 불구하고 포스젠 공정을 더 지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HDI는 자동차와 트럭, 비행기의 손질과 부식방지 코팅, 목재가구코팅 등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물질로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프랑스는 HDI 생산 설비를 20% 증설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 등도 HDI를 수입하거나 자국 내에서 생산 공급할 예정이나 이들 대부분이 포스젠 공정을 채택하고 있어 환경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그는 "이소시아네이트 합성과 같은 이산화탄소 활용기술의 개발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을 청정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전기를 제공할 것"이라며 "이 기술이 녹색공정에 대한 국내기업들의 관심을 제고시키고, 국내 저탄소 녹색성장 기틀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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