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제가 명함이 없습니다." 재미과학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국내에선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누구나 갖게 되는 명함을 몇 년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30대 중후반의 고급 인력들이 굳이 만들지도, 갖고 다니지도 않았다.

그들이 뒤에 덧붙이는 말이 있다. "워낙 이동이 잦아서…". 반면에 가방에서 명함집을 몇 곽이나 꺼내 그 중에 한 장을 내미는 연구원도 있었다. "세일즈맨 같다"는 말에 대해 그의 대답은 이렇다. "제가 지금 잡(job)을 찾고 있어서…". 어떤 과학자의 명함에는 인쇄된 전화번호 위에 펜으로 줄을 슥슥 그은 후 다른 번호가 적혀있기도 한다. 그의 설명은 "예전 명함이라서…". 미국 바이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 중에는 명함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 다소 놀랐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한 재미과학자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로 명성(名聲)이 자자한 한국인 정도였다. 물론 그런 자랑스러운 한국인 과학자들도 많고,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꽤 높은 자리에 오른 연구원들도 "당장 내일 한계와 위기를 만날 수 있다"고 토로했고, "매일 편견과 맞닥뜨린다"고도 했다. "어느 날 동료연구원들 앞에서 연구 주제를 설명 했는데 끝나고 한 친구가 '너 발표 정말 잘하더라'고 칭찬하더군요. 기분이 좋아 '그래 그 연구에 대해서 이해했니?'라고 묻자 '아니, 그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나는 외국인인 네가 영어로 발표를 잘해서 신기했어'라고 대답해요. 순간 힘이 쭉 빠지더군요. 10년쯤 미국의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나니 나는 그 친구들한테 '일만 열심히 하는 동양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로젝트 책임자급에 오른 연구원이 한 말이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가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의 단계에 오른 후에는 자신도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에 온정주의(溫情主義)는 없고, 거기서 한국인 과학자들이 자리매김하는 것은 더더욱 요원한 일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면서 그가 꺼낸 말은 1990년대 이전 미국으로 건너온 과거 이민세대와 이후 시점에 들어온 현재 이민세대의 차이점. 맨땅에서 시작한다는 투지로 부부가 모두 몸으로 떼우는 서비스 산업에 뛰어들었던 1세대 전과는 달리, 현재 이민세대들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이민 온 고학력자들이라는 것. 목표는 높지만 투지는 더 적고, 맞벌이 비율은 낮아 경제 형편은 더 팍팍하다.

또 미국인들이 하지 않으려 하는 분야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이민세대에 대한 국내의 접근방식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그들은 예전처럼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생필품을 잔뜩 들고 가끔 한국에 방문하는 부자 삼촌·고모가 아니다. 한국을 가고 싶어도 가족들의 왕복 비행기 삯이 부담되고, '한국이 너무 잘 살아서' 선물을 고르기도 벅찬 사람들이다.

특히 과학기술자들은 미국의 학부 과정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조금이라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생이나 박사후과정으로 건너 간 인재들이 다수다. 거의 다 가진 것이라고는 배움에 대한 열의 뿐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무조건 받으려 하는 접근이 아니라 주는 것도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산업규모가 아직 그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부족하다면, 그들이 그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나갈 수 있도록 조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과거 해외로 나갔던 인재들이 애국심 하나로 국내에 돌아와 현재 연구·교육기관에 자리를 잡고 지금의 과학기술발전 토대를 닦았듯이, 이들에게도 기회와 환경만 주어진다면 적절한 시점에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믿고, 그들과의 관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서 재미과학자들을 만난 것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건너 온 사연과 처한 환경은 각기 달랐는데 눈을 반짝이며 연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한결 같았다. 또 하나같이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았다.

특히 RTP지역의 B&B 모임은 인상적이었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시종일관 유쾌했다. 본격적인 강연과 발표 전에 조별로 둘러앉아 한식 뷔페로 저녁을 먹었는데, 사람들이 접시만 보고 한국에서 온 지 며칠 안 된 사람을 골라냈다.

"김밥을 집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김밥전문점이 많아 한국에선 이제 빵보다 흔한 김밥이지만 여기선 큰 맘 먹고 '김밥모임'을 가질 정도로 그리운 음식이다. 한국에서, 그것도 대덕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앳된 얼굴의 스무 살 청년이 고향이 대덕이라며 반갑게 말을 건넸다. 자신은 '방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단어 선택이나 한국말이 능숙치않길래 언제 미국에 왔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1학년 때 와서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조기유학 붐을 타고 대거 이민을 온 세대들이 벌써 대학을 졸업해 사회로 뛰어드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들은 부모의 선택에 따라 이민을 왔다는 점에서 앞선 세대들과도 또 다르다. 한국문화보다 현지문화가 훨씬 더 편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편견은 존재할 것이다. 언어의 강점은 있겠지만 한국인으로서의 한계도 맞닥뜨릴 것이다.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훨씬 많으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어른 과학자들의 모임을 찾아온 과학도 친구가 부디 어디든 취직해 번듯한 명함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뿌리를 잘 내려서, 이후 이민 간 친구들은 미국에서 명함이 아니라 책상에 명패 하나씩 올려놓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면 그것 참 좋은 일이지 않을까. 미국의 바이오현장에서 재미과학자들을 만난 후, 한국으로 품어 온 희망이다.

<샌프란시스코=대덕넷 정윤하 기자> yhjeong@HelloDD.com 트위터 : @and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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