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서재⑦]"영어 서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이해도 술술"
"책, 영화, 박물관 리뷰는 내 인생의 보물"

작은 몸으로 아무리 뛰어 놀아도 체력만큼은 튼튼했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또다른 '놀이'의 세계가 펼쳐진다. 집안 곳곳 서재에 전집이 가득 꽂혀있는 것이다. 세계아동전집에서부터 아동용 한국역사·문학 관련 전집까지 책을 사랑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서재는 항상 풍년이었다.

뜻은 잘 모르지만 집에만 오면 아버지 서재로 들어가 버릇처럼 책을 꺼내 읽던 소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지표통계팀 부연구위원인 김석현 박사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깨우쳐 준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 독서에 취미를 붙이게 됐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물론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찼던 대학시절이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도 대학생이 된 후 다시 보니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몸뿐만 아니라 생각과 정신도 한층 성장하면서 책을 이해하는 깊이 또한 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절정으로 좋아했던 대학·대학원시절에 정작 학과 공부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물리학과를 학부 졸업했지만, 제한된 실험실 생활과 공부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책들을 더 많이 읽었던게 아닌가 싶다.(웃음) 조금 방향을 바꿔 석사 때 수학을 공부 했는데 사회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수학 공부를 하기보다 사회과학 서적을 더 많이 읽었다. 그렇게 수학과를 마친 후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 산업기술 쪽 실증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맞을 것 같아 STEPI에 들어왔고 최근 몇 년 동안 과학기술 지표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  김석현 STEPI 박사는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닌 그는 학교 공부보다 독서가 더 즐거워 주로 도서관에서 사회과학 서적을 빌려 읽었다. 특히 외국 저자가 쓴 한국 역사책과 한국 기술책에 푹 빠졌는데 그들이 가진 동양에 대한 이해가 상상 이상으로 깊고 내용 또한 풍부해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글 서적이 아닌 영문 서적이기 때문에 책을 읽기가 불편했을 터. 일반 독서라는 차원에서 영문 서적이 부담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 박사는 "영어로 된 서적을 볼 때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집중을 하고 천천히 보는데 이는 좋지 않은 방법"이라며

"모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 우린 집중하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지 않는가. 영어책도 그런 마음으로 흐름을 읽는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시절과 다르게 지금은 일과 관련된 책을 70%정도 독서한다는 김 박사의 또 하나의 책 공부 방법은 중요한 부분에 '북 마크'를 하는 것.

그는 "일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만큼 인용해야 할 부분도 많은데 다시 찾으려 하면 잘 나오지 않아 북마크를 해두기 시작했다. 이젠 습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책에서는 손때 묻은 다양한 메모지와 밑줄이 눈에 띄었다.

◆ "지식은 나눠야 두배가 된다"…북리뷰 공유한지 20년
 

▲그가 리뷰한 글들을 몇개 발췌해 봤다. ⓒ2011 HelloDD.com

그는 독특한 독후감 습관을 지니고 있다. "책을 읽고 북리뷰를 작성한 후 책을 좋아하는 사람, 또 친분 있는 사람 20~30명에게 공유한다. 설령 그들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런 책이 있고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걸 소개하기 위함이다.

지식은 혼자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누고 확산하면 더 커진다. 리뷰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김 박사는 독서가 끝난 후 꼭 리뷰를 한다. 리뷰도 타이밍이라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때 하지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감성이 들어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책에 담긴 내용을 요약해 공유한다. 이 작업을 한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는 "책을 읽고 난 다음 바로 북리뷰를 하면 비린내 나기도 하지만 신선하다.

다시 보면 스스로 공부가 되고 귀감이 된다"며 "A4로 두어 페이지 정도 북리뷰를 작성하고 주변인 20~30명에게 공유한다. 그들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북리뷰를 공유하기 시작한 이유는 지식은 혼자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나누고 확산해야 더 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김 박사의 리뷰를 모아 놓고 보는 사람들도 생겼을 정도로 그의 글은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김 박사는 "글을 쓰는 시간은 얼마 안 들지만 공유했을 때 두배의 효과를 낸다"며 "책뿐 아니라 박물관, 영화, 여행에 관련된 리뷰도 좋다. 나중에 하나하나 꺼내보면 그것이야 말로 내 인생의 보물이다"라고 말했다.

나누면 2배가 된다는 그의 정신은 책 기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 박사는 5~6년에 한번 씩 누군가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책 정리를 한다.

"보통 사람이 꼭 장서가(藏書家)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5~10년에 한번 정도 책 정리를 해서 누군가가 읽을 수 있게 손 밖으로 책을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 책을 정리하다보면 놓치거나 좋은 책을 발견하는 일도 있기에 책 정리는 꼭 필요하다."

◆ "몇 페이지만 골라 보더라도 가치 있는 것은 '책'

" 책을 가장 좋아했던 학창시절, 김 박사는 곧잘 상상에 잠기곤 했다. '만일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가지고 가야 할 책은 무엇인가.' 그 때 김 박사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전집 ▲케인스의 전집▲칼 마르크스 전집만 보고 몇년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책들은 김 박사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책들이다. 그 때문인지 책에 대한 사치는 아깝지 않다. 골프나 명품 가방을 사는 것 보다 책은 그래도 검소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는 "책은 안보더라도 사서 꽂아놓으면 보게 돼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자녀, 친구들이 볼 수도 있다"며 "몇 페이지만 골라 보더라도 가치가 있는 것이 책"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읽은 '한국인의 마음'을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며 꺼내 들었다.

이 책은 한국인 스스로 '급한 민족', '냄비근성 민족' 등 폄하하지 말고 긍정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10~20년 전만해도 한국인은 한국인을 스스로 폄하했다. '조선 놈들은 뭘 해도 안된'다는 식으로 일제 당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인의 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담았다. 사람들의 내재된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는데 아주 좋은 책으로 후배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다"

◆ 악기 연주는 생활의 활력소…"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아"
 

▲김 박사가 클래식 기타로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를 연주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인터뷰하는 동안 사무실 안쪽에 세워져 있는 작은 클래식 기타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취미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한국가요 악보모음집을 꺼내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클래식 기타는 대학교 때 처음 배웠다.

유학시절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면서 마음이 위안을 얻었다. 음악은 우울할 수도 있었던 유학 생활의 친구이자 활력소가 돼줬다." 한때는 기타연주와 노래를 부르면서 음반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기도 했단다.

지금은 자주 연주하지 못하지만 연구와 생활의 활력소로 가끔 즐기고 있다. 김 박사의 부인 또한 악기를 즐긴다. 부인이 교사인데 이것 저것 연주가 가능한 덕분에 그의 집에는 악기가 많다.

그는 "요즘 고등학생들은 입시 스트레스가 정말 심할 것이다. 그때 악기를 배워두면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을 것"이라며 대화를 하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는 악기를 배울 것을 추천했다.
 

▲  김석현 STEPI 박사는 인용하고싶은 글귀가 있을 때마다 
체크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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