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명장은 국가의 보물⑨]박완철KIST박사 "환경 연구 실용화 중요"
"미생물 적용해 하수처리공법 업그레이드 시킬 것"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문길주) 구내의 제일 구석진 곳에 겉보기에도 허름한 연구동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는 오래된 건물이오'라고 말하듯 연구실과 연구실을 잇는 문과 벽, 사무실 하나하나에 세월의 때가 묻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낡은 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는 연구원이 있다. 바로 KIST 내에서 '똥 박사'로 유명한 박완철 박사(물환경센터)다. 허름한 연구실이긴 하지만 그가 여기서 개발한 분뇨정화조와 축산정화조, 합병정화조 등의 연구성과는 국내 물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은 물론이요 중소기업에게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기업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버팀목까지 선사했다.

그가 똥 박사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분뇨 정화' 관련 연구를 약 30년간 수행하면서, 세상의 여러가지 '똥'을 가져와서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는 등의 연구를 서슴없이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똥 아니, 분뇨를 학문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관심을 키워온 농학을 공부한 박 박사는 KIST에 처음 들어와 환경공학연구실에서 공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기오염의 주범을 없애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4~5년 지나고 나서였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강 개발사업이 활성화 되면서 물길을 바르게 하고, 고수부지를 만드는 등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한강개발사업 작업 막바지 즈음 모든 것이 다 갖춰졌는데 냄새나는 한강물이 문제였다.

'바로 그런'(?) 냄새가 나면 사람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강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시설을 연구하라는 대통령 긴급명령이 KIST에 떨어졌고 그 긴급과제에 박 박사가 투입되면서 그 인생은 본격적인 물연구로 방향을 튼다.

"환경공학연구실에서 대기관련 연구를 했지만 수질과 관련된 연구에도 관심이 많아 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정화조 개발 긴급과제가 KIST에 맡겨졌고, 시골출신이고 농업 경험도 있으니 이 연구를 담당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당시 실장님이 추천을 해줬다.

그것이 인연이 돼 분뇨 연구를 하게 됐다." 약 5년간 한강에 설치할 정화조를 연구해 상용화에 성공한 그는 자연히 시골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린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농촌지역의 소와 돼지의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축산정화조'를 만들면 시골에서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지금은 축산사업을 대규모로 하기 때문에 대규모 정화가 필요하지만 당시에는 시골에 사는 가정이라면 소나 돼지를 3~4마리 소규모로 키우는 곳이 많아 정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쉽지 않았다"며 "수질오염은 발생지에서 처리를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 축산정화조를 개발하게 됐다.

인분을 처리하는 연구를 기반으로 삼아 축산분뇨에 접근해 연구와 상용화를 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연구한 축산정화조는 나름대로 인기를 끌면서 일본이나 대만에 수출을 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수출국들에서 곧 모방 제품들이 출현하는 못된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는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특허를 내거나 돈을 버는 것보다 실용화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환경과 관련된 과학은 실용화 돼야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경에 보탬이 됐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엔 인분과 생활하수를 같이 모아 처리하는 시설 개발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박 박사에 따르면 생활하수의 30%는 인분, 70%는 설거지나 빨래 등에서 나오는 폐수다.

박 박사는 이런 연속된 연구를 통해 합병정화조를 개발해 보급하고 정화조와 관련된 특허도 30개나 냈다.

◆가짜 인분으로는 부족했던 실험, 진짜 ‘똥’을 가져오기까지

"분뇨정화조를 개발할 때 단백질, 전분, 암모니아 등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분뇨와 비슷하게 만든 후 실험했지만 실험실에서는 연구가 잘 진행되더니 현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실용화를 위해 직접 인분을 가져오자고 해서 중랑분뇨처리장에 찾아가 인분을 떠 와서 실험을 했다."

실용화가 가능한 정화조를 만들기 위해 직접 인분을 떠와 실험하려고 했지만 실제 인분을 가져오는 일을 연구진들이 기꺼이 동의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용가능한 공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박 박사와 연구진들은 직접 인분을 가지러 중랑분뇨처리장을 찾았다.

인분을 가져오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를 실험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덩어리'가 있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박 박사를 비롯 그와 함께 연구하는 연구진들은 덩어리를 망에 걸러 직접 손으로 비벼가며 분해했다.

이런 과정에서 옷에도, 살에도 튀는 분뇨에 모두들 눈쌀을 찌푸려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연구진들은 "오우! 이번엔 '좋은 똥'이 들어왔네"라고 말할 수 있는 종교적 경지까지 올라갔다.

박 박사는 지금 연구 생활하는 허름한 연구동이야말로 똥을 연구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말한다. 다른 연구동과 떨어져 있어서 냄새를 풍기거나 분뇨를 흘려도 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끔 밤마다 일어나는 정전이었다.

"옛날에는 여름에 KIST가 정전이 되곤 했는데 그러면 냄새가 환기파이프를 타고 온 연구동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늘 냄새를 맡으니 무뎌져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항의를 하러 우리 연구실을 찾은 박사들도 있었는데 미안한 마음이야 있긴했지만 정작 항의를 당하다 보면 그들에게 속도 상한 것이 사실이다." 하긴 누군 똥이 좋아서 주무르고 앉아 있나?

◆ 드디어 똥통에 빠지고 성수대교 무너지는 것을 보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박완철 박사는 연구를 하다가 똥통에 빠진 적도 있다. 박 박사가 개발한 정화조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궁금해 주말에는 직접 현장을 찾기 일쑤인데 그 때 제대로 볼려다 그만 미끄러져 정화조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휴 더러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람 키의 몇 배가 되는 깊은 똥통에 빠졌지만 별 탈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고 살았다는 데 매우 감사하고 있다. 그의 연구생활 큰 헤프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박사는 축산정화조를 연구할 당시 8시 출근해 늦게까지 연구소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의 집에서 KIST까지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 했는데 94년 10월 차를 몰고 가다 성수대교를 지나 백미러를 보니 뒤따라오던 그 많던 차가 다 사라지고 한대만 남았던 것이다.

반대편 차량은 꽉 차서 옴짝달싹 못하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가 건넌 후 바로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돌아가신 분들의 몫까지 열심히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긍정적인 사고와 다짐이 지금의 연구성과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 정화조에서 미생물을 이용한 시스템으로 …미생물 찾아 중국, 일본 고산지대 가다
 

▲미생물 공정에 대해 설명 중인 박 박사. 그는 기존 하수처리공법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연구를 지속 수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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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공정을 만들면서 그는 단순히 기계적 공정뿐 아니라 미생물을 이용하면 더 깨끗한 물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90년 중반부터는 미생물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미생물을 찾기 위해 그는 배낭을 메고 여행을 시작했다. 일본 화산토 주변에 좋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해서 가봤지만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실망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백두산과 한라산 등 고산지대를 직접 발로뛰며 물 정화에 적합한 미생물을 발견했고 우리 조상들이 천장에 매달아 놓던 청국장에서도 좋은 미생물들을 발견해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미생물은 영하 70도에 넣으면 포자상태가 됐다가 주변 환경이 따듯해지면 다시 활성화된다"며 "분뇨에 미생물을 넣어 처리를 하니 냄새도 많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년부터 서울 난지하수처리장에 미생물을 적용해 오염물과 냄새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배낭을 메고 더 좋은 미생물을 찾기 위한 발품을 팔고 있다. 정년퇴임 전까지 기존 하수처리공법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도록 지속할 연구할 계획이다. 최근 그는 자신의 연구 삶을 담은 '똥 박사 박완철입니다'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내 인생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책을 준비하게됐다"며 "우리 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힘든 성장과정을 겪었겠지만 이 책이 젊은이들의 도전적인 삶과 행복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고 설명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시기를 잘 탄 연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다양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시기를 잘 탄 것뿐 아니라 남들이 더럽다고 피한 '똥'을 스스로 찾아 다니고 연구한 덕분이 아닐까.

국내 정화기술에 큰 패러다임을 가져온 박 박사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똥! 꼼짝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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