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윤철 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출연연, 선택과 집중 필수"
"기획이나 연구성과 활용 부분 부족, 시야를 넓게 봐야"

이렇게 표현하기가 좀 미안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만병통치약에 관한 이야기같다. A부터 Z까지 대한민국 과학산업 가운데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열거하기도 숨이 차다.

바이오인프라 기획평가관리, 연구실안전환경구축사업(바이오안전성평가관리), 신약개발분야 기획평가관리,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첨단사이언스교육허브개발사업, 뇌연구원 설립 준비 지원, 뇌연구사업 지원, 21세기프론티어사업 총괄 및 글로벌프론티어사업 총괄, 기후변화대응사업, 해양극지사업 총괄,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공동개발사업, 핵융합 기초연구 및 인력양성 지원사업 관리, KSLV-Ⅱ, 나로호 발사점검위, 발사허가심사위, 우주핵심기술개발(기초분야), 원자력연구개발 5개년 계획 수립 등. 하는 일들이 워낙 많아 여기에는 쓰지 않은 것도 다수다.

안 다루는 분야가 없고, 못 다루는 분야가 없는 곳이다. 어디인지 궁금하다고? 바로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다. 생명공학단과 나노융합단, 녹색기술단, 거대과학단, 원자력단, 원자력기술팀, 원자력협력팀, 방사선기술팀, 미래원자력시스템사무국, 국책사업기획실, 국책연구총괄기획팀으로 나눠져 있는 국책연구본부는 현재 50여 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 본부의 선두에 서서 모두를 이끄는 이가 바로 얼마 전 취임한 정윤철 국책연구본부장이다. 연구 과제가 성립이 되려면 기획을 해서 좋은 과제가 도출돼야만 한다. 본부는 도출된 과제를 우수한 연구자가 맡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과제를 수탁하고, 수행 과정에서의 평가와 관리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한 성과도 홍보해야 하고, 실용화에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 한 마디로 총괄 지휘자다. 이 모든 것을 원활하게 작동시키려면 다른 무엇보다 기억력부터 비상하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상상이 앞선다.

정 본부장은 연구재단으로 오기 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원장 문길주)에 재직하면서 연구직과 행정직을 두루 섭렵했던 경험이 있다. 연구관리평가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이미 느껴본 터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에게는 KIST에서 연구재단으로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을 뿐이다. 나름대로 이쪽 업무에 관해서는 노하우를 쌓아놓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수록 일은 더 어려워진다는 게 그의 신조다. 천천히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정 본부장이 지금껏 지켜온 방식이다.

그는 "한 달 남짓됐기 때문에 아직은 업무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KIST에서 지냈던 일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국책연구를 다루는 곳인만큼 시야를 넓혀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는 학습을 꾸준히 진행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2년의 임기를 시작한 정 본부장의 운영 방침은 명확하다. 수없이 많은 분야에대한 개별적 간섭보다 연구소 및 연구원들의 창의적 연구환경 조성과 수월성 중심의 국책연구사업 구축에 집중할 생각이다.

정 본부장은 "연구개발이 모방형이 아닌 선도형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연구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우수한 잠재력과 재능이 뛰어난 과학자들이 도전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게 재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업무 성격을 규정했다.

수월성 측면에서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평가 과정이다. 기초과학 쪽에서 고른 기회를 준다고는 하지만 국책연구 자체가 대형연구이고 장기적인 연구다. 성과가 중심이 돼야 마땅하다. 당연히 우수한 연구자를 선정해 과제를 부여해야 한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PM 제도가 있고, 평가자 풀을 마련하고 있다.

사전 교육을 통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평가 기관의 전문가들은 다 빠지기 때문에 실제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기초원천연구는 더 심하다. "분야에 따라 국내에서 충분한 전문가를 찾을 수 없을 경우에 국외 전문가의 적극 활용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전문가를 도입함으로써 선정 과정에서 야기되는 전문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후에는 연구자 친화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불필요한 행정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면서 "재단에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어차피 신입직원이라고 생각한다. 조직 문화에 녹아들어가면서 조직 구성원들의 기획 능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 "출연연 국책연구사업에 꼭 맞는 조직, 미션에 기반한 연구해야"

출연연에 종사해왔던 정 본부장은 근래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사실 그전부터 느끼긴 했지만 출연연이라는 연구 조직은 국책연구과제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직이거든요. 제대로 연구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역량을 올릴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는 조직이 된다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그는 "아울러 강소형 연구소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조직에 대한 방향성은 명확하게 구축돼야 한다. 아직까지 진행 중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연구는 도전적이고 개방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중복연구에 대해서도 그는 "부처간 중복 연구가 사실상 많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초원천, 지식경제부는 응용 개발 등등 영역이 있지만 많이 겹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중복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재단에서 가급적이면 각 부처 연구 지원기관 책임자들을 만나 의사소통도 하고, 공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구개발이라는 것이 결국 싹이 터서 열매까지 맺어야 하는 것인데, 연속성과 지속성없이 각자 일에만 몰두한다면 열매를 맺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중복 투자 해결 문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부처간의 소통은 연구재단의 몫이라는 정 본부장은 "연구재단의 고객은 국민이다.

우리 연구가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연구 결과가 국민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들이 연구재단이 뭘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끔 하겠다. 작게는 과학기술계, 크게는 국민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야 하고,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그런만큼 경쟁은 필수적이다. 각각의 기관이 고유의 미션이 있고, 특징이 있지만 결국은 경쟁을 통해 연구의 수월성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출연연이 대학에서 연구하듯 학생들 몇 명 데리고 하는 연구를 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선택과 집중으로 해야 한다."

◆ "막연하게 느껴지는 녹색기술, 기후변화와 해양극지에 힘 쏟을 것"
 

▲소통과 융합을 강조하고 있는 정 본부장. ⓒ2011 HelloDD.com
"이명박 정부 들어서 녹색기술이 굉장히 중요시되고 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녹색기술이라는 게 정말 막연하거든요. 다 녹색기술이에요. 안 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할당된 예산은 제한돼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대응을 해야 하고 집중해야 할지가 명확히 나와야 하죠.

앞으로는 기후변화와 해양극지 연구에 좀 더 역량을 집중할 생각입니다." 정 본부장은 기후변화와 해양극지 쪽에서 좋은 과제를 발굴해 응용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하기 위해서는 기획이 많이 필요하다. 그는 "연구비가 많이 투입돼야 한다. 이런 분야에서 융합과 소통이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출연연의 경우 대개의 경우 소통과 융합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일전 유럽에서 진행된 바이오매스 컨퍼런스에서 정 본부장은 소통과 융합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정 본부장은 대부분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만을 중요하다고 외치는 학회나 포럼의 풍자극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소통을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융합을 경험했다고 한다.

혼자만 연구하기 좋아하는 현재의 출연연 연구자들의 방식은 화두에 걸맞지 않다고 아프게 꼬집는다. "출연연이 함께 융합연구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연구과제를 발굴하고, 거기에서 원천 기술을 개발해나가는 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출연연 선진화 정책과도 맞물려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구 지원을 책임지는 기관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

◆ "국제핵융합실험로, 예산 대비 성과 미흡하지 않다"

"첫 날 오자마자 핵융합 쪽 담당 책임자가 그러더군요. 앞으로 차세대 에너지원은 핵융합이라고요." 다국적 실험방식인 국제핵융합실험로(이하 ITER)가 예산 대비 성과가 미흡하다는 논란은 꾸준히 제기가 돼 왔던 문제였다.

이에 대해 그는 "핵융합이라는 것은 먼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연구 분야다. 앞으로 30∼4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ITER에 많은 예산이 투자되는 데 성과가 없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에 따르면 그동안 ITER 사업비로 들어간 예산이 현금 부담금으로 700억 원 정도다. 그는 "ITER에 30여 명의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파견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력 양성 효과가 200∼300억 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거기에 국제 공동기구에서 용역을 받아 수행한 것이 300∼400억 정도다.

오히려 투자한 것 보다 성과가 많다"며 "인력 양성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숫자화할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결국 피드백의 문제다. 조달 업체들의 수준도 월등히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핵융합로 시장의 수준을 높이는 데 우리나라가 일조하고 있다는 입장도 뚜렷하다. 그는 "우리나라 수준이 올라가면 파이를 키울 수 있다.

장기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원자력에 대응하는 신재생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의 예산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제컨소시엄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은 인력양성 부분에 있어서나, 국가의 수준을 높이는 부분에서나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핵융합 뿐만 아니라 원전 문제도 연구재단의 국책연구본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의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상반기에 나왔어야 할 원자력연구개발 5개년 계획이 하반기로 늦춰지게 됐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국책연구본부 원자력단은 5개년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정 본부장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것은 안전한가에 대한 자문이 계속됐다. 솔직히 말하면 그전에 안전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안전성 관련 연구는 많이 하지 않았다"며 "일들이 많긴 하지만 원자력 관계자들은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하더라.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원전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원자력 진흥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한 후 원자력개발계획 수립을 완료할 생각이다"고 피력했다.

◆ "기획이나 연구성과 활용 부분 부족, 시야를 넓게 봐야"

"기획이나 연구성과를 활용하는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연구 기획을 제대로 해서 좋은 과제, 정말 필요한 과제를 도출해 내야겠죠. 연구자 집단의 의견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크게 봐야죠. 제대로 과정을 기획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에게만 기획을 맡기면 도전적인 목표가 안 나올 수 있다는 게 정 본부장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성공과 실패만을 따지기 때문에 안전한 것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울러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도 시급히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실패를 하게 되면 연구자로서는 심하게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가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 사람이 정말 열심히 연구를 했는데, 실패했구나라는 게 보인다. 그럴 때엔 실패를 용인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만큼 연구 과정에 대한 평가나 관리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 있어서 국내외 해당 전문가 그룹 구축이나 제3자 리뷰 등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아 기대도 크다는 그는 "앞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 전문가들과 자주 만나서 동향도 파악하고, 소통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전반적으로 시야를 넓혀서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국책연구본부장의 임무는 개별 과학연구 프로젝트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과학산업을 통째로 방향짓고 가이드하는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바로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Taking Whole'의 전략 구사다. 시야를 넓혀 전반을 파악하는 안목이 바로 그것이다. 국책연구본부의 성공과 실패도 거기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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