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환경 방사능 인증표준물질(CRM)' 개발 현장 탐방기

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건강보조식품에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 중에 방사능이 함유된 광물로 만들어진 제품이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 그런데 몇년전 실제로 이런 일들이 발생해 국민의 우려를 낳은 적이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KRISS(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김명수) 방사선표준센터는 방사선과 관련한 측정 표준에 대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방사능 절대측정 기술을 확립하고, 환경과 식품 중에 있는 방사능을 분석하고 측정하며, 방사능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해 의료계, 산업계, 학계 및 원전 등에 보급하고 있다.

◆ 연구 틈새시장 공략해… 국내 CRM 개발 한계 극복!

방사선표준센터는 올해 세계 최초로 Cs-137과 K-40 방사성동위원소 측정을 목적으로 쌀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했으며, 국제도량형국(BIPM: Bureau International des Poids et Measures)은 이를 Supplementary Comparison (CCRI(II)-SC-9) 물질로 등록했다.

등록된 쌀 인증표준물질은 국제비교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 FDA 등을 비롯한 미국, 독일, 프랑스, 11개국의 국립표준연구원에 보급됐다. 그 결과 값들은 이미 보고된 바 있으며, 10개국에서 추가적으로 참여 요청이 들어와 시료를 보급하고 있는 중이다.

최종적으로 취합된 분석 결과들은 방사선표준센터의 결과 분석과 평가를 통해 2012년 BIPM에 보고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의 방사선 측정용 인증표준물질 개발 기술이 세계 수준에 근접하다는 것을 인증해 주는 실증적 사례다.

이상한 방사선표준센터 박사는 대표적 인공방사성 동위원소인 Cs-137과 대표적 자연방사선동위원소인 K-40을 측정하기 위해 국내 특성에 적합한 인증표준물질을 연구하던 중 쌀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수십 년간 방사능을 측정하기 위해 쓰이는 인증표준물질 개발을 도맡아왔어요. 국내에선 그쪽에서 개발한 인증물질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의 방사능 측정능력도 세계 수준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이 분야의 후발 주자로서 그들이 선점하여 개발한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진행되지 않은 틈새 분야를 공략했어요. 식품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쌀을 이용한 인증표준물질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만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확보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듣기엔 그저 간단한 것 같지만, 그동안 센터가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해온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협력해 1년간에 걸쳐 다양한 조건에서 Cs-137이 포함된 쌀을 재배하고, 건조시킨 쌀을 일정한 크기의 입자로 분쇄한 후, 수십 개의 동일 시료를 제작해 다양한 감마분광계측기(HPGe gamma spectrometry)를 이용해 방사능을 측정했다.

이 과정을 거쳐 시료의 동질성(homogeneity)과 안정도(stability)를 평가하고, 확인과정을 거쳐 최종 인증 값과 불확도가 결정되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환경이나 식품을 이용한 방사능측정용 인증표준물질의 개발은 그동안 다른 국가에서도 그 필요성을 인식해왔으나, 저준위 방사능측정이 어렵고 시간과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 활발하게 시도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수요에 비해 나와 있는 인증표준물질 품목들이 다양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 방사선표준센터는 국가공익과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투자해 우리의 인증표준물질 연구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 빗물·공기·먼지 속 방사능은 어떻게 측정할까?

방사선은 고속의 입자선과 파장이 극히 짧은 전자파를 총칭하는 말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α(알파)선, β(베타)선, γ(감마)선 그리고 X(엑스)선이다. 환경과 식품 중에 존재하는 감마방출핵종(예; Cs-137, K-40)의 경우 비교적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기에 국내 대부분의 환경 방사능측정기관들이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사능 물질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토양이나 빗물시료를 그대로 가져다 별다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non-destructive method), 적정 용기에 담아 감마분광계측기를 이용해 측정할 수 있다. 반면 시료 중에 특정 핵종, 즉 uranium 동위원소나 플루토늄(Pu) 동위원소 같은 알파방출핵종이나 Sr-90같은 베타 방출 핵종의 경우, 방사능의 직접 측정이 불가능하고 방해성분이 많아 시료를 용해하는 등 전처리 과정과 방사화학법을 이용해 측정하고자 하는 핵종들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복잡해 측정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destructive method). 일례로 빗물 중 알파방출핵종의 분석과정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료 농축 - 순수 핵종 분리 및 정제 - 선원제작 (전기 전착) - 측정 - 데이터 평가'
 

▲빗물 중에 있는 알파방출핵종을 분석하기 위해 빗물시료를 용기에 모아놓고 있다. ⓒ2011 HelloDD.com

빗물 중에 있는 알파방출핵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십 리터의 빗물시료를 자체 제작한 용기에 모으고, 시약을 이용해 수 리터 내외로 농축시켜야 한다. 농축된 시료는 방사화학법에 의한 이온교환수지(ion exchange resin)를 이용해 측정하고자 하는 핵종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분리된 핵종을 측정하기 위한 선원제작과정이 필요한데, 크게 전기 전착법(electro-deposition)과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를 이용해 여과지에 핵종을 집적한 미세공침법(micro-coprecipitation) 등을 사용한다.
 

▲전기전착 장비를 이용해 핵종을 스테인레스스틸판에
전착시키고 있다.
ⓒ2011 HelloDD.com

전기 전착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순수 핵종 용액을 용기에 넣고 pH농도를 조절한 후, 전해질 용액을 함께 넣고 전류를 통해주면 용액 속에서 핵종들이 스테인레스스틸판(stainless steel disc)에 전착하게 된다. 여과지를 이용할 경우, 간단한 실험과 여과장치만 사용하면 되므로 제작이 용이하고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특정 핵종에 제한적이고, 전기 전착 시스템을 사용한 것보다 해상도가 낮은 단점이 있다.

위 과정을 거쳐 제작된 선원은 알파분광계측기(alpha spectrometry)를 이용해 방사능을 계측하는데, 시료의 방사능 양에 따라 짧게는 수 분에서 길게는 수 주에 걸쳐 계측을 한다. 결과적으로 환경시료 내 방사능의 양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측정할 수 있다.
 

▲핵종분석기로 방사능 양을 측정한 결과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볼 수 있다. 측정된 농도가 높으면 피크가 활발하고,   농도가 낮으면 그래프 모양의 변화가 크지 않다. ⓒ2011 HelloDD.com

방사선표준센터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대기 감시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즉, aerosol(시료채집기)를 이용해 공기 중에 있는 방사능을 측정하고, dust collector(먼지 채집기)를 이용하여 먼지를 채집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먼지 속 방사능 성분과 양을 분석한다. 또한 빗물을 채집해 빗물 중 방사능의 종류와 양도 측정하고 있다. 이상한 박사는 "환경방사능을 연구하다 보면 육지, 해양, 대기 등 육해공을 다 다루게 되니 방사능이 어디에 있건 찾을 수 있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산업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CRM이 책임진다"

방사선표준센터는 방사선에 대한 측정 표준을 연구하고 있다. 방사능 절대측정 기술을 확립하고, 방사능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해 의료계, 산업계, 원전 등에 보급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인증표준물질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먼저, 사용자가 직접 측정기기나 측정방법을 교정하고 보정하는데 사용된다.

인증표준물질을 사용한 결과와 국제적으로 일치된 기준을 비교해서 측정된 결과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표준에 소급성을 가질 수 있고, 국제적 동등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의 측정방법이 정확한 결과를 산출하는가를 시험해 측정방법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방사능분석 등에서 매질효과에 의한 간섭 등을 측정절차에서 효과적으로 배제했는가를 검증하는데 유용하며, 이 유효성 검증절차는 시험기관의 품질시스템 확립에 필수적이다. 또한 인증표준물질을 품질관리용 시료로 사용해 매 시험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증표준물질은 우리 산업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준이 없다면 시작은 물론 마무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사선표준센터는 방사선을 검출하기 위해 이러한 인증표준물질을 만들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인증표준물질이 잘 활용되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 시료를 다양한 조건에서 연구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dust collector(먼지채집기)를 이용해 먼지를 채집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먼지 속 방사능 성분과 양을 분석한다.  비가 올 경우엔 자동으로 빗물을 채집해 빗물 중 방사능의 종류와 양도 함께 측정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수년 전, 건강에 좋은 물질을 발생시킨다는 건강보조상품들이 다양한 형태로 개발돼 시중에 유통된 적이 있었다. 이중 일부 영세회사에서 방사능이 많이 함유된 광물을 사용해 개발한 제품을 시중에 유통시켜 국민을 걱정과 혼란에 빠뜨리게 했으며, 유사제품을 생산하는 건전한 회사들까지 피해를 입힌 사건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국민의 보건과 안전을 위해 방사능이 많이 함유된 생활용품을 규제하고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방사선표준센터와 원자력안전기술원에 의뢰해 원료에 들어 있는 방사능을 규제하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을 만들었다.

이 법안은 지난 6월에 통과됐고, 1년 뒤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는 법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상한 박사는 "얼마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방사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앞으로 발표되는 방사능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인증표준물질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며 "역량이 허락하는 한 환경과 식품 시료를 이용해 표준물질을 개발해서 국내 수요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요에 대응하는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하고 싶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방사선표준센터 연구원들의 모습. 화목한 연구 분위기가 지속적인 연구 개발에 큰 힘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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