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스티브 잡스가 지난주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네요. 잡스의 퇴장으로 IT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글로벌 규모의 대격변이 몰아닥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로서는 남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법정으로 비화하는 등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둘러싼 양사의 경쟁과 갈등이 첨예화하는 마당에 앞으로의 판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할지 일면 당혹스러울 테니까요.

초반전으로만 국한하자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애플과 삼성 간의 다툼은 애플의 완승에 가깝습니다. 삼성전자가 기기 제조에 치중하는 사이에 애플이 제품의 기능 차원을 넘어서 디자인이나 컨텐츠 운영체제에 초점을 맟추는 등, 씨름판 자체를 뒤집어버렸기 때문이죠. 삼성이 강점으로 삼았던 분야와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다른 겁니다. 이러니 가뜩이나 소프트웨어 쪽에 취약했던 삼성으로서는 크게 한방 맞은 격입니다.

사실 제품의 성능 즉 하드웨어만 따진다면 애플은 삼성의 경쟁 상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조업 기반이 삼성에 비해 취약했으니까요. 따라서 애플은 굳이 하드웨어로 삼성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치고 들어갔을 뿐입니다. 삼성이 뒤늦게 소프트웨어 강화를 부르짖으며 반격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전체적인 양상은 ‘허우적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손자(孫子)병법’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전장(戰場)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적을 기다리는 군대는 편안하다. 뒤늦게 싸움터에 달려가는 군대는 피곤하다.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장수는 적을 조종은 하되 적에게 조종을 당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도 있네요. "적의 수비가 약한 곳으로 나아가야 하며 적의 뜻하지 않은 곳을 공격해야 한다." 허허실실의 구절도 있습니다. "충분한 병력(實)을 가지고 적의 허점(虛)을 친다."

싸움의 과정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손자병법에 충실한 쪽은 삼성이 아니라 애플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최종 승부가 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손자의 표현을 빌자면 "적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편에 달려 있다. 이편이 승리하는 것은 적군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즉 "적이 이편에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편이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편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적을 공격할 빈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삼성전자가 찾으면 애플도 어딘가에 빈틈이 있을 것입니다. 그 빈틈을 찾아 공격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애플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겠죠.

애플에게 ‘빈틈’이란 바로 잡스의 퇴장일 수도 있습니다. 해외 매스컴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의 반격 가능성을 점치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잡스 없는 애플…천재 집단이 이끈다’라며 애플 내에 포진하고 있는 인재 군단을 지적하면서 당분간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글쎄, 그럴까요? 일본 자동차업계에서 제조 기술에 관해서만은 닛산이 도요타를 앞서고 있었습니다. 닛산은 기술자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닛산은 망해서 프랑스 르노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기술에서 밀리던 도요타는 그 후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고요. 나라가 망할 때 그 나라 안에 인재가 없어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삼성도 인력으로만 치자면 세계 어느 일류기업 못지않게 글로벌 준재들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그들의 역량에 힘입어 여기까지 발전해왔고요. 인재풀로는 결코 애플에 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인재가 흘러넘쳐서 골치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해 손자는 지적했습니다. "병사들은 강한데 지휘관이 유약하면 병사들을 통솔하지 못하게 되고 군기가 해이해질 것이다. 이런 군대를 이병(弛兵)이라고 한다." 자, 양쪽 다 병사들이 강하다면 삼성과 애플의 싸움은 이제 지휘관 싸움이 될 공산이 큽니다. 누가 지휘 능력을 발휘해 강한 병사들의 능력을 한껏 펼치도록 할 수 있느냐겠죠.

그러지 않아도 애플사 직원들에게 잡스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각종 조사에서 ‘직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로 꼽혀왔습니다. 잡스의 후계자 팀 쿡이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과연 ‘직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손자는 장수의 역량을 다음 다섯 가지로 평가합니다. 즉 지혜(智)·신뢰(信)·어짊(仁)·용기(勇)·엄정(嚴)입니다.

손자는 유능한 지휘관일수록 부하 병사들의 능력보다 판세에 더 큰 강조점을 둔다고 합니다. 즉 "세(勢)에서 승기(勝機)를 찾을 뿐 부하들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이 판세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지휘관들이 할 일입니다. 둥근 돌을 평지에 놓으면 가만있지만 비탈에 갖다 놓으면 저절로 굴러간다는 거죠.

삼성은 이번 싸움을 계기로 자신의 약점인 소프트웨어 분야를 크게 강화할 모양입니다. 공교럽게도 잡스가 퇴진을 발표하는 날에 맞춰(?) 독자적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바다 2.0'을 발표했습니다. 그럼 이 바다 2.0은 이번 애플과의 싸움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것이 애플의 약점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전략적 차원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바다 2.0은 아직 문제가 많습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라면 노키아도 있고 다른 회사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운영체제라는 이름만으로 애플 것을 능가할 수 있느냐는 거죠. 프로그램 정도라면 이제 어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제조사들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핵심은 바다 2.0에 소비자들이 반드시 갖고 싶고, 느끼고 싶고, 꿈꾸고 싶은 드라마나 스토리가 담겨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영철학이야말로 애플의 포르테, 즉 강점이 아니겠습니까.

손자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편에서 교전을 하고 싶은 경우에, 적이 비록 요새 안에 처박힌 채 교전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응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반드시 구출하지 않으면 안 될 급소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다 2.0이 성공하려면 애플의 경우처럼 소비자가 억지로 귀와 눈을 막고 있다가도 결국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바다 2.0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바다 2.0이 그렇게 소비자의 성감대를 울리는 소프트웨어일까요? 아니면 그저 1/N에 불과할까요?

바다 2.0을 글로벌 시장에 내놨다가 괜시리 스티브 잡스에게 한마디 들을까봐 걱정됩니다. 그러지 않아도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했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취향’이 없어요.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문화를 불어넣는 법을 모릅니다."

삼성이 애플이라는 거인과의 한판 승부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지 애플의 새 CEO 팀 쿡과의 옛 인연을 들먹이며 싸움이 확전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감도 표명하는 모양입니다. "이재용 삼성 사장이 쿡과 친밀한 사이"라던가, 아니면 "삼성전자는 애플의 소중한 부품 공급 파트너"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팀 쿡이었다는 과거의 발언까지 소개하는 모양새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를 기대감에 따라 처리해나가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적이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지 말고, 적이 공격할 수 없음을 믿어라"라고 손자는 충고하고 있습니다. "정(正)으로서 방어하고 기(寄)로서 공격한다"는 가르침이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적이 감히 공격할 수 없는 방어가 정(正)이고 한발 더 나아가 적의 허(虛)를 공격하는 것이 기(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애플이 잘 정비된 대군(大軍)으로 삼성을 공격해오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손자병법을 인용해보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선 적의 기선을 잡아 그들의 소중한 바를 탈취하라. 그렇게 하면 아군이 주도하는 대로 따를 것이다…적이 미치지 못한 약점을 이용하고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길을 경유하며 적이 경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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