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 과학정책을 논하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에서 최근에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화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조성사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5월 16일에 과학벨트 조성사업에 대한 추진계획이 발표된 후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단에 지원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다.

과학벨트 조성사업은 과학기술정책의 여러 영역 중에서 기초연구정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학벨트 조성사업이 추진될 당시에는 기초연구에 대한 논의보다는 지역간 경쟁에 대한 보도가 더욱 많았다. 이제라도 기초연구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초연구는 향후에 기술개발을 거쳐 새로운 제품이나 공정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데 효과적인 영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의 시차가 축소되면서 기초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곧바로 창업을 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그밖에 기초연구는 실험장비와 연구방법론의 개발을 통해 기술혁신에 기여해 왔으며, 혁신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시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도 유력한 매개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추격의 단계에서 탈(脫)추격 혹은 창조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거나 창의적 인력을 양성하는 기반으로서 기초연구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기초연구정책은 아직까지 정상적인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초연구의 주체로는 대학이 꼽히는데,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의 비중이 2004년에 33.5 대 34.6 대 31.9를, 2006년에는 33.4 대 32.2 대 34.4를 기록한 바 있다. 대학이 기초연구보다 응용연구나 개발연구를 많이 한다는 비정상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대학의 기초연구 비중이 2007년 47.1%, 2008년 49.3%, 2009년 52.5%로 상승하는 추세에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대학이 진정한 기초연구의 요람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과학벨트 조성사업이 많은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한다. 주지하듯이, 과학벨트 조성사업은 상당히 큰 규모의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데, 혹시 과학벨트 조성사업의 추진으로 기초연구를 위한 기존의 사업이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점검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기초연구활동의 사정으로 볼 때 50개 이상의 우수한 연구단을 빠른 시일 내에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로 판단된다. 이전에 다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집단이 이름을 바꾸어 과학벨트 조성사업에 편성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따라서 과학벨트 조성사업은 지속적인 정책학습을 통해 그것의 바람직한 방향을 가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초기 단계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실제적인 연구사업의 경우에는 한꺼번에 많은 일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사태의 추이를 보아가면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무난하다고 보여진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혁신체제(NIS)의 전환에 대한 선진국의 성공사례들은 시범사업을 통해 해당 정책의 정당성과 효과성을 확인한 후에 이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꺼번에 끝장을 보겠다는 식으로 매우 중요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날의 정책적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며, 더구나 기초연구와는 속성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송성수 교수  ⓒ2011 HelloDD.com
송성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을 지냈습니다.

또 2006년부터 부산대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주요 연구실적은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특성에 관한 시론적 고찰' '대중과 과학기술' 등 다수이며, 저서로는 <과학기술의 개척자들>, <과학기술과 문화가 만날 때>,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 등 저술 활동도 활발합니다.

이외에도 '과학기술기본계획' '과학기술문화창달 5개년 계획' 등 정책연구에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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