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충식 KISTI 책임기술원, 출연연 통합 재해복구센터 필요성 강조
"어마어마한 예산 투자 불가피, 그래도 필요한 작업"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8분, 보잉747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로 날아들었다. 꽝하는 굉음과 함께 세계무역센터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유리로 감싸져있던 세계무역센터의 건물 한 가운데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가 흉측하게 남겨져 있었다.

또 한 번의 충돌 후, 세계무역센터는 힘없이 무너졌다. 초대형 사건 사고와는 별개로 건물 안에 있던 수많은 기업들이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당시 대형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내 총 50개 층을 임차해 쓰고 있었다.

충돌과 함께 모건스탠리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러나 평소 업무연속성경영(BCM:Business Continuity Management) 프로그램에 따라 재난 대비 훈련을 쌓아온 모건스탠리 임직원들은 즉시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뉴욕 브루클린의 백업센터로 대피한 임직원들은 즉시 백업 사이트를 재개, 10분 뒤부터 지휘 본부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사고 발생 24시간 후 본사를 제외한 전 세계 업무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기민한 대응은 기상이변과 사이버 테러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해 온 덕분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BCM'이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볼 때 모건스탠리는 위험의 순간에도 자사에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즉시 수행했다. 그 결과 엄청난 손실을 '신뢰'와 '극복'을 통한 이익으로 창출해냈다. 모건스탠리는 전무후무한 재난의 직격탄을 맞고도 하루 만에 업무를 정상 재개해 투자자들의 신뢰와 관심을 이끌 수 있었다.

일단 예상해보자. 우리나라에 전쟁이 발발하면 제일 먼저 공격받을 곳은 어느 곳일까. 대부분 서울과 대전을 꼽는다. 우리나라 인구의 반이 상주하고 있는 서울은 국가 중심 기관들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전이라고 예외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내 최대 국책연구원들이 모여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는 국가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두뇌다. 각종 국가 R&D가 수행되고 있는 대전의 파괴는 한국의 적국들이 꾀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일 수 있다. 커다란 로켓 하나가 대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대전이 쑥대밭이 되는 건 한 순간일 것이다. 특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몇 십년간 축적해 온 R&D 관련 데이터들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말이다. 전쟁뿐만이 아니다.

정보가 자산이 되는 시대이지만 특구는 놀라운 정도로 재해에 무방비한 상태다. 각 기관마다 백업센터가 마련돼 있다고 하지만, 자료를 옮겨놓는 것에만 국한된 현재 상황에서는 모건스탠리의 위기 극복 모델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재해복구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의 논리를 피력해 온 오충식 KISTI 책임기술원은 최근 또다시 답답함을 토로하고 나섰다. 위기의식까지 보이고 있다. 각 연구원에서 나오고 있는 각종 데이터가 중요한데 반해, 한 번에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재해에 대한 대비는 전무한 상태기 때문이다.

그는 "대전과 광주에 있는 제1, 제2 정부통합전산센터에 이어 백업 전용센터로 불리는 제3 정부통합전산센터 설립이 공식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며 "제3 센터는 백업이 아닌 업무를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계획들이 포함된 재해복구센터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지 않아도 재해복구센터의 필요성은 공공연히 논의돼 온 부분이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제1, 2 정부통합전산센터 기능이 중단될 경우, 국가 행정 업무 및 대국민 서비스 중단으로 국가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오 책임기술원은 "중단없는 연구업무를 보장하기 위해선 지속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업무의 중요도를 분석하고, 그것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복구해야 하는 가에 대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각 부처마다 필요성을 절감하고 시도는 하고 있는데, 비용이나 성과 면에서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추진에 힘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 "첨단 실험장비 투자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
 

▲오충식 KISTI 책임기술원. ⓒ2011 HelloDD.com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연구개발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왔으며, 현재는 대부분의 시험 장비들이 연구개발 효율성 확보를 위해 컴퓨터와 연동돼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연구업무 성격과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기관별로 10대 내외의 서버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관에 따라서는 과학기술정보 공공서비스를 위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간 데이터들은 대부분 저장 공간의 한계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실험 분석을 통해 논문이나 특허로 등록을 마치면 파기하거나 개인적으로 보관하다 유실되는 게 현실이다.

또한 이전의 연구노트 가치가 상세한 연구결과를 기록하고 정리해 연구개발의 연속성을 보장하는데 있었다면 현재는 연구개발을 위한 실험 데이터의 폭발적인 증가로 기록 매체로서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에 있으며, 실험 결과와 연구개발비 사용의 투명성 보장 수준의 기능에 그치고 있다는 게 오 책임기술원의 설명이다.

정부통합전산센터, 국토해양부 등 정부는 이미 국가 정보자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합·공동재해복구센터 구축을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출연연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부분 각 기관별로 자체 정보시스템에 의해 관리·운용돼고 있으며, 아직까지 물리적인 서비스 장애와 해킹, 바이러스 등 인위적인 공격과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및 재난에 대비한 출연연 공동의 재해복구 환경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 책임기술원은 "연구개발 환경에 많은 변화가 거듭되고 있음에도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대부분의 재원이 첨단 실험장비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연구개발 연속성 보장을 위한 대안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 "어마어마한 예산 필요한 재해복구센터, 그래도 필요한 작업"

"실제로 공공기관들 대부분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못하고 있죠. 그건 바로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일겁니다.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하는데 비용이 1600억원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죠.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오 책임기술원에 따르면 재해복구센터 구축 시 몇 가지 요소들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재해복구센터는 지진과 전쟁, 홍수 등을 고려해 100km 이상의 원격지에 구축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국내의 환경 상 지진 발생 가능성이 낮음을 고려해 재해 발생 시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에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협소한 단일권 지역에서 주전산센터와 재해복구센터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 오 책임기술원은 "주전산센터와 복구센터의 위치가 동일 재해권에 속해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그러나 폭발이나 복합적인 화재, 낙뢰, 고의적인 시설 파괴 등에 의한 재해일 경우에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출연연의 통합 재해복구센터 구축과 관련해서는 이처럼 입지후보지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오 책임기술원의 설명이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낙후지역 발전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후보지가 될 지역의 안전성과 효율성 등 환경적 여건 등이 고려돼야 하며, 연구개발 및 인력기반, 산업기반시설, 기존산업과의 연계성 등 경제적 요건도 충족돼야 한다.

그는 "재해복구센터의 설립이 되려면 여러 요건들도 중요하지만 우선 막대한 예산이 확보가 돼야 한다. 제안을 계속 하고 있긴 하지만 워낙 큰 사업이기 때문에 향후 계획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며 "많은 이들이 이 사업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대를 느껴야만 추진될 수 있는 일이다. 예산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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