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신 이사장 “출연연, 거버넌스와 기득권 다툼 아닌 연구성과 낼 때"
세계기술大戰에서 대기업보다 더 큰 기여 강조··· "'국부창출 연구' 역점”

"출연연은 이미 병들었다. 그늘 밑에서 노는 정도로 연구한다. 그 병을 만든 주범은「PBS」다. 운동회의 사탕따먹기 게임같은 PBS때문에 연구책임자는 과제 따러다니고 그 밑의 계약직 연구원들이 연구하는 등 연구다운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연구자가 완전 소외됐다."

권철신 산업기술연구회의 이사장은 정부출연연이 PBS제도로 인해 병들었다고 진단하며, "이제 산업기술을 연구하는 출연연은 연구성과를 세계시장에서 기술료로 벌어와 국민이 10년간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첨단 산업기술이 발전해 외국에서 재화를 벌어와야 하고, 특히 정부 출연연 중 산업기술연구집단이 최일선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계 기술전쟁의 제1선에 서 있던 것은 우리나라 기업으로서 개량기술제품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와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톡톡히 제 역할을 해 왔다. 제2선은 산업기술연구집단이며 제3선은 기초과학연구집단, 제4선이 대학연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산업기술연구집단이 제1선에 포진한 기술기업들과 함께 선진기술 및 제품들과 싸워야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 치열한 제1선 전투를 약간씩 돕는 식으로 제2선에서 기술지원만 해서는 산업기술연구집단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0년간 투자한 총량에 비해 국가연구원들이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제 산업기술연구집단이 제1선에 들어가, 다시말하면 해외로 나가 기술거래를 하고 해외기술료를 벌어오는 등 연구성과를 돈으로 벌어와야 한다"며 "국민이 10년간 충분히 먹고살 기술을 터뜨려야 한다"면서 「R&B(Research and Business)」의 연구풍토로 산업기술연구집단이 급성장해야 한다는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가 R&B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출연연을 직접 들여다 본 이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출연연을 들여다볼 틈이 없었던 그는 이사장으로 부임하며 처음으로 출연연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출연연 내부사정을 둘러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기초과학연구집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산업기술연구집단은 연구결과를 산업화시켜 돈을 벌어야 하건만,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세계 1등 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고, 그 결과 각 출연연이 연구원 수보다 더 많은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 연구자가 1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가면 출연연은 머지않아 황폐해질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기업연구계는 물론 세계 어느나라에서 조차 볼 수 없는 기현상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 방대한 량의 과제들이 어떤 연구인가를 따져보니 대부분 개량개선과제로 PBS를 따와 수행 중인 것들이었다.

이걸 왜 하느냐 물으니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 하더라. 출연연도 먹고 살아야 한다기에 그 부분을 건드리는 건 뒤로하고, 수 천개의 과제들 중 세계최고 수준의 소위 ‘도전과제’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각 연구소의 세계 최고 R&D과제는 수행 과제의 숫자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0개에서 많으면 3~4개 정도였다. 한 해 출연연에 2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데 비해 이는 너무 심했다. 그렇다면 금후 R&D비용을 얼마든지 투입해 준다면 세계 1등이 될 수 있는 소위 ‘소원과제’를 발굴해보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러자 제출된 것은 출연연당 1~2개. 그것들 모두 다 지원해 준다고 해도 세계 최초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권 이사장은 또다른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나온 해답이 산업기술 연구집단이라는 곳은 기술을 산업화시켜야 하며, 과제교류를 통한 융복합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먼저 출연연의 첨단기술력을 대표하는 ‘도전 및 소원 과제’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전 출연연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어 만찬후에는 과제를 발표한 연구리더들을 모아 ‘와인파티’를 열었다.

그 과정에서 출연연이 내놓은 도전/소원과제 중 상호 관심있는 요소기술을 서로 협동하여 ‘융복합테마’를 발굴할 수 있도록 오픈 이노베이션을 준비했다. "오픈 이노베이션 과정에서 협력논의가 성사된 테마가 있을 경우, 다음날 발표를 하도록 밤새 토론할 수 있는 일정을 준비하고 다과를 준비해 놓은 소회의실도 4개정도 마련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도 컸다. 융복합테마 구성에 대한 의견일치가 한 건도 성사가 안되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했다. 첫째날 융복합시스템화에 대한 3시간짜리 특강을 통해 연구자의 프로정신과 융합의 시대적 사명을 설파하며 사전 분위기를 일구어 놓았기는 했지만." 그러나 당초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4개의 회의실에는 출연연의 P/L들로 가득찼고 밤새는줄 모르고 열심히 논의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온 성과는 4개 연구팀, 7개 연구테마. 2시간의 발표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우렁찬 박수 속에서 깜짝 테마들이 발표됐다. 그는 "7개의 테마들은 정말 대단했다.

아직 컨셉단계이기 때문에 금후 과제화를 하면 지원금을 대주기로 했다"면서 "출연연간에 이렇게 서로 맞대고 밤새 논의해 본 것이 처음이라고 하더라. 이러한 융복합 미팅방식은 1회로 끝내지 않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라고 피력했다.

권 이사장은 ‘융복합 전략체제’를 통해서 성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민간연구소와 정부출연연구소, 그리고 방산연구소가 모두 어울어져 융복합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 연구집단이 국가공동체의식으로 하나가 돼서 연구저력을 모을 때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끼리 R&D인적자원을 모두 모으면 대단한 저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S&T정책’과 ‘R&D전략’이 빈곤하다 보니 아까운 세월 놓치고 살아온 것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우리 연구집단이 힘을 합치면 세계적인 비밀무기라도 능히 만들 수 있다.

산업기술연구집단이 이런 것으로 기여를 해야하지 않겠는냐"며 민간연구소, 그리고 정부출연연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체제를 재차 강조했다.

◆ 제2차 기술세계대전, 한국 승리하려면 '전략체제'를 짜라
 

▲과학기술발전 형태를 설명하고 있는 권 이사장. ⓒ2011 HelloDD.com
세계적 연구성과를 세계기술시장에서 비지니스로 연결시켜 재화를 벌어와 국부를 창출하는 것, 그가 ‘R&B’를 강조하는 이유는 오늘날 과학기술발전의 주기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그에 따르면, “인류문명사에서 처음으로 기존의 기술체계를 완전히 뒤집는 다양한 혁신적 과학기술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 1940년대 전후부터로, 이를 ‘제1차 기술혁신기’라고 규정하며,

또한 25년 정도 이어지던 혁신기술군들이 60년대 중반 경부터 정체되면서, 새로운 기술 대신 기존 기술들을 엮어 만든 '개량기술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제1차 기술진보기’로 표현한다.”

그는 또 “약 25여년간 지속되던 개량기술 또는 개량제품들도 더 이상의 집적 내지는 복합이 어려워지자, 다시금 ‘기술돌파(Technological Breakthrough)’에 의한 새로운 혁신기술들이 1990년대부터 터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제2차 기술혁신기’로서, 이 시기는 제1차 기술혁신기 때와는 달리, 터져나오는 각종 혁신기술들이 상호복합화 또는 융합화되는 경향을 나타냄에 따라, 금후 약 2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술선진국들이 증기선 만들고 비행기 만들던 제1차 혁신기에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던 저기술 수준이었지만, 다행이 제1차 기술진보기의 끝무렵인 80년대부터 진보기의 파도에 잘 올라타서 당시에 존재했던 기술들을 도입해서 잘 엮어 값싼 개량제품군으로 만들어 해외수출에 성공하면서 10대 무역강국으로 진입했다”며,

“이제 그 재원으로 제2차 기술혁신기의 중심에 들어설 수 있는 R&D투자 및 체제로써 제2차 세계기술대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권 이사장은 금후 한국이 세계 4대기술 강국인 미국, 구라파, 중국, 일본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는데,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인의 똑똑한 두뇌와 도전정신, 정신적 오기 내지는 근성, 그리고 ‘빨리빨리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것은 'R&D전략체제'. 권 이사장은 “예전의 제1차 기술진보기 때는 미국, 일본 등이 개발한 기술들을 모방·개량하여 성공했지만, 지금은 기술특허로 방어를 쳐서 무임승차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10억 들어갈 연구를 8억 들여 투입자원을 절약하자는 ‘인풋중시의 관리’가 아니라, 20억 들여서 100억짜리 연구성과를 만들어내는 ‘아웃풋중시의 전략’이 중요한 시대다.

따라서, 연구 수장들이 이를 인식하고 무엇보다 R&D전략을 중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일이 전략중시의 시대인 만큼 전략부서가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주장으로 그는 “얼마 전 출연연의 전략관리부서 워크샵을 개최하여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그간 행정잡무만 해왔다”라며,

“이제는 전략부서에 전략다운 업무지시가 내려져야 하며, 전략승부의 시대로 들어갔기에 기술진보를 주도하던 관리중시원리 곧, ‘능률성원리(Efficiency Principles)’보다 기술혁신기를 주도하는 전략의 시대를 관통하는 ‘유효성원리(Efficacy Principles)’가 철저하게 중시돼야만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1차 기술혁신기는 ‘군집형 혁신기술’이 주도를 했다면 2차 기술혁신기는 ‘융합형 혁신기술’이 주도해 갈 것이기에, 이 분야기술들의 융합에 성공하는 집단이 세계기술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며, 이것을 만들어 가는 것은 연구기관의 수장이다.

우리가 제2차 기술전쟁시대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R&D관리'가 아닌 'R&D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관장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좀 알았으면 한다. 지금은 때 늦은 거버넌스문제와 기득권싸움이 아닌, 세계적인 연구성과들을 터뜨려야만 할 때”라고 일침을 놓았다.

◆ "R&D공학 40년 하고 이제야 제 자리에 왔다"

권 이사장은 이전 성균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24년을 ‘입실수도’ 학문인생을 살아온 ‘국민교수’로 유명하다. 일주일 중 6일은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R&D시스템공학’이란 특수분야를 개척하고 차세대 인재양성에 온 인생을 바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창적 연구자’로 또한 후학사랑이 지극한 ‘열정적 교수’로 많은 언론매체와 공중파방송을 통해 소문이 났다.

하지만 권 이사장은 교수로 재직할 때 보다 지금이 있을 자리에 있는것 같다고 말한다. "나의 전공은 ‘R&D 경영공학’ 중에서도 ‘R&D전략체제설계’분야로서 30여년간을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키워오면서 제자들에게 세계를 흔드는 학자가 되라고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물론 대기업 R&D전략팀에 인재를 송출하거나 논문 쓰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R&D이론 및 수법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됐지만, 왜 제대로 잘 못할까라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왔다.

R&D공학 시작한지 40년 만에 제자리에 왔다." 그의 집무실에는 책상 3개가 놓여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하나는 결제업무 또 하나는 PC 등을 사용하는 집무에 관한 것 나머지 하나는 R&D시스템구축 연구를 하는 곳이라고 답했다.

그는 교수시절 R&D공학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교수로도 유명한데, 연구논문을 창출할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현장에서 R&D 공학이론을 연구기관에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지 주야로 궁리한다는데, 출근하자마자 갖는 30분의 큐티시간은 가장 소중한 영감창출시간이다.

그는 "R&D쪽을 전공한 석박사들이 기업에가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산에서 칼싸움 연습만 하다가 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라며 "오랜세월 이론연마와 대기업들의 R&D경영 지휘경험에서 터득한 R&D 병법과 진법을 바탕으로 우리 출연연에 우선적으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 뭔지, 궁극적으로 세계기술전쟁에서 속전속결 할 수 있는 방책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체제화해야 할지를 매일 구상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구상한 것들이 지금 추진 중인 ‘도전과제’, ‘소원과제’와 ‘융복합테마’, ‘기술전략 및 기술마케팅 부서강화’, 연구원장을 대상으로 하는 월1회의 ‘연구경영포럼(RMF)’ 등이다. 권 이사장의 철학은 “국가연구자가 살맛나는 국가연구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연구원을 만들기 위한 가장 큰 요건이 '세계적 기술성과를 내는 것'”이라며 정부출연연이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연구소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민이 환호할 수 있는 세계적 기술성과, 국민으로부터 박수받는 국가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최고의 기술을 창출해야 한다.

그래야 살맛나는 국가연구원이 되지 않겠느냐. 대학출신자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대기업이 아닌 출연연이 돼는 날이 그날이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