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 찬성 '퇴진 성명' 채택 …학교측 "소통 제도적 장치 마련중"
경종민 교수협회장 "새로운 리더십 기대했지만 철저히 배신당했다"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KAIST 서남표 총장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우수한 이공계 전문인력을 배출해 내는데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강한 소신과 특유의 업무 추진력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개혁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따라다닌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도 지대하다.

하지만 KAIST 안에서의 처지는 다르다. 서 총장이 최근 구성원간 소통 부재에 대한 대책을 안이하게 대응해온 탓에 또 한 번 코너에 몰리고 있다. KAIST 교수협의회로부터 불통의 문제로 서 총장이 '퇴진 요구'를 받게 됐다. 로버트 러플린 전 총장에 이어 두번째다.

KAIST 교수협의회(회장 경종민)는 총장 거취와 관련, 합의서 불이행의 책임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69명 중 63.4%(234명)가 찬성을 표시했다면서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29일 총장 퇴진 요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협은 이날 교내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혁신비상위원회 합의내용 즉시 불이행 ▲혁신위 합의서 서명에 대한 기본정신 ▲대학평의회 미구성 ▲개인 특허 소유에 대한 윤리성 ▲학교기금 운용손실 등 총괄적 책임 ▲독단적 학교운영 방식 고수 등의 이유를 들어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경종민 회장은 "지난 4월 자살 사태 이후 진정한 소통을 발휘하며 새로운 리더십으로 지휘해 줄 것을 당부하고 기대했으나 철저히 배신당했다"며 "독단적 의사결정과 구성원 소통 부재 폐해가 악화돼 더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용훈 KAIST 교학부총장은 "서남표 총장은 현재 퇴진할 의사가 없다"고 전하며 "앞으로 교수와 학생, 직원 등 전 구성원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발전적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하겠다"고 학교측 입장을 밝혔다.

이 부총장은 또, "혁신위에서 제안한 내용 가운데 아직 시행이 완료되지 않은 사항들도 절차에 따라 완료할 것"이라며 "전체 교수의 40% 정도가 총장 퇴진을 요구한 결과에 대해서는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소통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 교수협이 말하는 소통 부재?…학교측 "대학평의회 신설 신중히 검토해야"
 

▲경종민 교수협의회장. ⓒ2011 HelloDD.com

"서남표 총장께 비서실을 통해 면담 신청을 두세차례 했는데 전혀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메일로도 드렸는데 답변이 없더군요." 경종민 회장은 "대학평의회 신설 등 소통에 관한 것은 하나도 반영이 안됐다"며 "문제의 근본은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 회장에 따르면 서남표 총장은 펀드 투자 손실의 축소 은폐에 대한 해명과 340억원의 부채상환 이자 부담액 및 상환계획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또한 연간 500억 원의 연구비 오버헤드 사용에 대한 적법성·공정성과 적합성을 확보를 위해 요구하고 있는 연구비 오버헤드 운영위원회 신설에 대한 답변이 없으며, 건물 명칭과 위치 선정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 수렴절차 및 체계 확립에 대한 움직임도 없다고 지적했다.

KI 연구소 건물에 대한 생산성 확보 문제와 KAIST 행정지원 선진화 등에 대한 실천과 답변 역시 없다고 경 회장은 꼬집었다. 학교측은 그러나 대학평의회 신설 요구 등에 대한 교수협 입장에 신중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용훈 교학부총장. ⓒ2011 HelloDD.com

이용훈 교학부총장은 "대학평의회의 경우 강제 심의 의결권이 있어 현 이사회와 충돌할 우려가 있다"며 "한마디로 학교발전을 위해 현 체제인 대통령제가 좋은지 의회중심제가 좋은지 심도있게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총장은 "대학평의회에 대해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토의한 다음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부총장은 "혁신위 의결사항 중 외국인 학생의 한국어 시험 난이도 평가 등 학교의 글로벌화와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의결사항의 합리적 실천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연구비 오버헤드위원회 신설에 대해서는 올 연말쯤 구성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서 총장의 단독 원천 특허 보유에 따른 윤리적 논란에 대해 이 부총장은 과학벨트 연구단장을 빗대어 "만약 단장이 자기가 아이디어를 내고 특허권을 가질 수 없다면 그것도 고려해봐야 할 문제 아니겠냐"며 "단순히 기관장이니까 특허권을 포기하라는 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KAIST 문제를 지켜보는 과학기술계 현장에서는 총장과 교수협의 계속되는 갈등에 대해 어떠한 문제든 서로 얼굴 맞대고 소통을 위해 노력하면 안될 것이 없다면서 쌍방간의 조속한 이해와 공동발전을 위한 행보가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 교수협 설문결과 구체적 내용은?

KAIST 교수협 설문결과에 따르면 대학평의회를 즉시 구성하고 미비점은 발전적으로 보완한다는 설문에 84%(310명)가 찬성했으며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6.8%(25명)이었다.

또, 지난 4월 총장과 교수협의회장이 서명해 발족한 혁신위의 합의내용 그대로 실행한다는 의견이 84.6%(312명)로 나왔으며, 총장이 혁신위 합의서에 서명해 놓고도 무엇을 사인하는지 모르고 사인했다는 발언은 합의서 기본정신을 파기한 것이라는 의견이 84.3%(311명)로 나왔다.

또 총장이 구성원과 소통없이 독단적인 학교 운영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의견이 82.9%(306명)로 조사됐으며, 총장 재임 중 발생한 학교기금 운용손실·교과부 감사에 대한 학교 측의 무능한 대응 등 학교 전반에 걸친 문제들에 대해 총장은 포괄적인 책임을 져야한다에 87.3%(322명)가 나왔다.

총장이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사업에 대한 특허를 소유하고 이를 편중되게 지원한 것은 총장으로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에 70.5%(260명)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마지막으로 총장 거취와 관련, 합의서 불이행의 책임을 물어 총장의 퇴진을 요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설문 참여자의 63.4%(234명)가 찬성을 표시했다.

이는 전체 교수협 회원 522명의 44.8%에 해당한다. KAIST 전체 전임교수는 585명이다. 설문은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전체 교수를 대상의 전자투표 방식으로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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