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의 한의학이야기]

한약재에서 추출한 관절염치료제 '신바로'라는 한약제제를 두고 한의사와 의사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논란의 요지는 이렇다. "신바로는 오가피, 우슬, 방풍, 두충, 구척, 흑두 등으로 만들어진 한약제제로 전통적으로 한의사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처방해왔던 약이다.

한약재에서 추출한 관절염치료 한약제제를 의사는 처방할 수 있고, 한의사는 처방할 수 없는 현실이 합리적인가?" 아마도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런 상황이 됐는지 의아해하실 것 같은데, 식약청의 입장은 이렇다.

"신바로의 효능을 입증하는 임상시험이 양방 병명에 입각해 양방병원에서 이루어졌다. 한의학적 원리에 의해 한방병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한의사를 위한 제제라 볼 수 없다." '한의학적 원리에 의한 임상시험'을 하려면 한의학적 연구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

지난 7월에는 대한의사협회가 한국한의학연구원에 대해 10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요청했다. 올 봄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가 한의약의 정의에 포함된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과학적 응용·개발의 중심인 연구원에 공격이 가해진 것으로 이해되는 시점이다.

자, 이 시점에서 국가는 어떤 과학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한의학의 발전은 한의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가적 관점에서 보면 한의학은 '한국고유의 원천기술'과 '국민보건향상' 이라는 두가지 면에서 가치가 있다.

먼저 국민보건향상의 측면에서는 한의학 임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선결과제다. 이를 위해 전통의료기술을 표준화하는 동시에 이에 바탕한 신의료기술을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표준화와 과학화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되며, 이 작업의 결과 얻어진 성과의 사용자는 현재로서는 한의사가 될 것이다.

의사들이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갖도록 교육받고, 나아가 동서의학의 벽을 허물고 하나의 의료체계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음으로 원천기술 측면에서는 한의학을 소재로 각종 융합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공학자와 함께 진단기기를, 생물학자와 함께 한의학 이론의 생물학적 해석을, 의학자와 함께 동서융합 의료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세계 다른 곳에서 전범을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어서 연구방법론부터 창조해나가야 할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호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을 먹여살리고 있는 자동차와 IT 산업은 모두 일정 기간 국가적 보호와 장려정책을 통해 성장했다.

그런 장려 정책에 의해 어렵게 포니엑셀이 미국에 상륙하고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홀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까지 다시 적어도 2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다가오는 생명과학의 시대에 가치가 높은 전통의학과 현대과학의 융합연구도 30-40년 전 현대차와 같은 처지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연구방법론과 연구장비들이 확립되어 있는 기존 과학 속에서 모든 점에서 연구경쟁력이 열등하기 때문이다. 보호 장려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많은 기관에서 융합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한의학융합연구에 대한 관심과 목표가 과학기술정책 차원에서 설정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후에 구체적으로 한의학융합연구 프로그램을 교과부 연구사업 내에 설치하거나, 현재의 융합연구영역 내에 한의학융합 분야를 소분야로 설정해 일정 연구비를 배분하는 방식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한의학! 몹시 매력적인 연구분야지만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애정어린 매를 드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현대차처럼 20년만 기다려 달라. 그동안 흡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진전된 연구성과가 나오면 나오는대로 지원 규모를 늘려가 달라. 한의학은 어차피 살리고 키워나가야 할 민족의 자산이므로!"

▲융합연구를 통해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탄생시킨 건강관리 의자. ⓒ2011 HelloDD.com

▲김종열 본부장 ⓒ2011 HelloDD.com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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