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기계를 부수고 있는 러다이트들.  ⓒ2011 HelloDD.com
1811년 11월 4일, 잉글랜드의 불웰이라는 마을에서 한 무장 괴한이 방직 기계 6대를 파괴하였다.

그후 영국에서는 러다이트라고 불리는 이들 무장 노동자들에 의한 방직 기계 파괴 행위가 조직적으로 일어났으며, 약 6년 동안 계속되었다.

러다이트운동을 기계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폭력적 집단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러다이트운동은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었을 때 그것이 사회적 규범, 가치관, 관습 등과 어떻게 갈등하는지, 또 어떠한 방식으로 갈등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공동선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례이다.

러다이트들은 초기 3개월 동안 1100대의 방직 기계를 파괴하였으며, 영국 정부는 새로운 산업자본가들의 편을 들어 법률을 제정하고 러다이트들의 저항에 대처하였다. 방직 기계를 부순 러다이트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였고, 러다이트들의 폭력 행위를 막기 위해 군대까지 출동시켰다.

러다이트들은 단순히 이기적인 폭력 집단, 반국가적인 야만 집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다이트들은 자신들을 홍보하는 책자를 통해 자신들은 기계나 기술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은 일반 대중이 제어할 수 없으며 대중의 집단적 복지와 이해에 해로운 기술의 사용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러다이트운동은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로부터 영향을 받는 개인과 사회의 시각 차이가 불러온 비극이었다.

◆기술, 인간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다

기술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어떤 기술들은 그 영향의 범위와 규모가 막대하기도 하다. 20세기의 대표적 문명의 이기들, 예컨대 기차를 비롯한 운송수단, 전화를 비롯한 통신 수단, 백신을 비롯한 의료기술 등은 우리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 등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슐리펜 계획(Schliefen Plan)은 열차가 없는 시대였다면 불가능한 작전계획이었다. 독일은 전쟁 초기에 프랑스와 러시아를 모두 상대해야 했다. 당시 독일은 동시에 두 곳에서 전선을 유지해야 했다.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독일은 먼저 프랑스를 신속히 격퇴하고 열차를 이용해 군대를 러시아 전선으로 수송해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좀 더 최근의 사례로 정보기술을 생각해 보자.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현실 세계와는 또 다른 가상의 세계(cyberspace)가 만들어졌으며, 현실 세계의 물리적 구조가 정보의 기능성으로 대체되었다. 화폐는 대표적인 가치의 상징으로 동전이나 지폐 등 물리적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정보기술의 등장으로 화폐가 물리적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가정이 사라져버렸다.

기억 혹은 기억능력은 대표적인 인지능력으로 좋은 기억능력은 우수한 인재, 엘리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기억능력의 분산을 불러와 오늘날 고도의 기억능력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 미래의 
로봇을 상상해 볼 수 있다. 
ⓒ2011 HelloDD.com
로봇공학 역시도 중요한 사례다. 이제 전투는 인간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이라크에 배치된 군용 로봇만 4000기를 넘는다고 한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 하지만 로봇 병사는 조작자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수행할 수 있으며, 인간 병사가 할 수 없는 일도 척척 해낼 것이다.

더욱이 로봇은 두려움을 모르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상을 한다. 머지 않아 보모나 간병인의 역할도 로봇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아시모프의 공상과학 소설 '나는 로봇이다'에 등장하는 소녀 글로리아와 로봇 로비처럼 인간과 애완 로봇이 친구처럼 지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책적 변화를 요구할 것이며,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의 양식이 변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위용이 크면 클수록 이런 예상이 빗나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생 기술들에 대한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당연해 보인다.

◆사회, 신생 기술의 위협에 저항하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기존의 질서와 믿음 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 개인과 인간 사회는 늘 저항해 왔다. 이런 저항은 기술과 사회의 갈등을 나았으며,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 재판, 러다이트 운동 등은 이런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실 중요한 과학기술의 등장에는 언제나 논쟁이 뒤따랐다. 원자폭탄, 유전자변형식품(GMO), 복제기술, 컴퓨터 등 대부분의 혁명적 기술들은 커다란 논쟁을 불러왔다. 지금은 모두 잊었겠지만,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컴퓨터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컴퓨터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추론하는 능력은 과거 오래 동안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인정되어왔는데, 추론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했다는 것은 인간이 단지 기계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그릇된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컴퓨터에 대한 비판의 요지였다.

왜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사람들은 위협을 느낄까?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인간 삶의 질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들은 우리가 세상과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그런 변화는 종종 파괴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인간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사회가 궁합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술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 이 두 방향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노력이 부족할 때 규범의 공백 상태가 나타난다. 여기서 크게 규범이란 법률적 규범과 윤리적 규범을 포함하는 말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기는 다수의 문제들이 기존의 규범과 정책으로 쉽게 해결된다는 경험이 새로 등장하는 기술들에 대한 규범적 검토에 게으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기술들 가운데는 우리가 경험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반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신생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적합한 규범이 새로이 마련되고 그것을 공식화하고 정당화하는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규범의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개인적, 기술적 피해는 종종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워드라이빙에 사용되는 장비들. ⓒ2011 HelloDD.com
한 가지 간단한 사례를 들어 보자. 최근 와이파이(Wi-Fi) 기술이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무선통신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와이파이 존의 보편적 확산은 워드라이빙(wardriving)이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탄생시켰다.

물론 이것을 스포츠라고 봐야 할지는 사실 의문이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워드라이빙은 자동차로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타인의 네트워크와 무선연결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얼핏 보면, 이런 행동은 명백히 타인의 사적 공간, 타인의 컴퓨터 시스템에 무단침입한 것이다. 하지만 워드라이버는 다르게 말할지 모른다. 무선파는 공개된 장소인 거리에 있었으며 워드라이버도 거리에 있었다.

그는 타인의 컴퓨터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해 그 사람의 집에 무단칩입한 것이 아니다. 공개된 장소인 거리를 지나가는 타인의 무선파를 슬쩍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흘끔 쳐다보듯이. 이러한 개념적 혼란의 사례는 앞으로 수도 없이 발생할 것이며, 개념적 혼란은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사회적 혼란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신생기술이 불러올 공포?

오늘날 신생기술들은 가히 혁명적인 것들이다. 대표적인 신생기술로는 나노기술, 생명공학, 정보기술, 신경공학, 로봇공학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기술들을 혁명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존의 기술들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나 그 결과물의 성격에서나 혁명적으로 다른 기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기술들이 인간 사회와 인간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혁명적으로 막대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조셉 허커트 교수는 무어의 법칙을 변형하여 사회적 충격이 큰 기술적 혁신일수록 윤리적 문제가 증가한다고 말하였다.

2004년 유럽공동체(EC)는 신생기술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생기술들이 여타의 기술들과 다른 특징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들 몇 가지를 정리해냈다. EC의 연구보고서는 나노기술, 생명공학, 신경공학, 정보기술, 로봇공학 등의 신생기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방식으로 중첩되기 때문에 융합기술(convergence technology)이라고도 불릴 수 있다고 하였다.

신생기술들은 자아, 자연, 사회적 환경 사이의 전통적 경계를 허문다. 또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기술적 해결을 약속한다. 신생기술들은 살상 로봇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기계에서부터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통한 인간 한계 초월까지 마음과 몸에 대해 공학적으로 접근한다.

이 보고서가 정리한 특징들을 보면 신생기술들이 위에서 말한 의미로 혁명적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생기술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빌 조이는 '와이어드' 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나노기술과 신경공학, 로봇공학 같은 신생기술들이 미래에 인류에게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였다.

신생기술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전망 못지 않게 그것이 불러올 미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공포는 두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는 기술의 발전을 가로 막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술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검토와 바람직한 수용 방식에 대한 고민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신생기술,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하다

기술과 사회 사이의 영향 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신생기술은 그 막강한 위력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처할 것을 요구한다. 유전자변형작물을 개발한 사람들은 재배상의 이점뿐만 아니라 상품성 면에서의 뚜렷한 장점으로 인해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반응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유전자변형에 대한 대중적 공감을 확보하지 않고 전문가들의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확신'에만 기초하여 사업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상당한 대중적 저항에 직면했다.

이 사례는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대해 낙관적 전망만을 제시하고 일반 시민은 우리의 말을 그냥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할 때, 과학기술의 장기적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인간유전체 계획은 GMO와는 반대의 상황을 맞이했다. 인간유전체 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효용에 대해 일반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인간유전체 계획은 시행 초기부터 ELSI(윤리적, 법률적, 사회적 함의) 프로그램과 더불어 했다는데서 한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유전체 계획에 대한 공개적 논의, 과학적 연구와 더불어 진행된 규범적 논의가 그 계획에 대한 대중의 신뢰감을 상승시켰다고 판단된다. 다트머스 대학의 제임스 모어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이제 도덕적 관념 및 믿음과의 협상이 과학 기술 연구의 일상적인 부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라는 말처럼 어떻게 도덕적 관념이 과학과 기술에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잘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윤리를 좀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절차와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방식을 통해 사회적 가치에 좀더 잘 조화되는 과학적, 기술적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Deborah G. Johnson, "The role of ethics in science and engineering",
Trends in Biotechnology, 2010,
pp.589-590. Gary E. Marchant,
"The Growing Gap Between Emerging Technologies and the Law",
The Growing Gap Between Emerging Technologies and Legal-Ethical Oversight, ed. by Gary E Marchant et. al., Spring, 2011, pp.19-33. James H. Moor,
"Why we need better ethics for emerging technologies",
Ethics and Information Technology, 2005,
pp.111-119. Joseph R. Herkert, "Ethical Challenges of Emerging Technologies",
The Growing Gap Between Emerging Technologies and Legal-Ethical Oversight, ed. by Gary E Marchant et. al.,
Spring, 2011, pp.35-44.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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