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대표 "설계 제조서 유통까지 원스톱 책임"
중국, 일본 등 틈새 시장 공략 해외진출 모색

"기계를 판매만 했지 뭘로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는 처지였다. 그런데 어느날 덜컥 수주를 해왔다. 유통업을 하면서 고객들이 뱉어내는 불만을 들으며 직접 만들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하나로만 일을 저지른 것이다." 소프트웨어와 기계 유통회사를 운영하던 최승호 프로테크코리아 대표의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지 않아도 기계 유통을 하면서 그는 늘 고객들의 불만을 접하고 있었다. "디자인이 왜 이래?" "사용하기가 영 불편한 걸" 등의 불만 사항이었다. '안되겠다.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직접 나서야지'라는 사명감(?) 하나로 CNC공작기계(computerized numerically controlled machine tool)제조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모하다고? 3년전 이렇게 시작된 프로테크코리아는 올해 매출 규모가 30억원을 육박한다.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소리 아닐까. 국내에서만 그런게 아니다.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하며 차근차근 해외 진출까지 준비하고 있다. 최 대표는 회사 창립년도와 날짜가 자녀의 출생년도, 생일과 꼭 같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면서 아들·딸을 키우듯이 회사를 성장시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자, 이쯤 되면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공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어떻게 CNC공작기계 제조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비전공자였기에 오히려 겸손, 공부하며 소통으로 고객과 신뢰 쌓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당시 잘나가던 기계벤처기업 해외영업부에 취업했다. 그런데 회사 사정상 국내 영업부에서 일을 하게됐다. 기계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남보다 더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됐고 그런 영업 자세가 오히려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됐다. 지금도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기에다 벤처회사에서 벤처정신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으면서 사업도 자신있게 시작할 수 있었다."" 최 대표는 2003년 1인 유통 벤처를 시작했다. 타고난(?) 벤처정신과 신용하나만 믿고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길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매출이 쑥쑥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를 찾는 이도 많지 않았다. 안되겠다싶어 그는 자신만의 전략으로 고객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당시 큰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간다. 그런 성장 기간에 필요한 것은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들처럼 키워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조급해 하지않고 우직하게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내디뎌 나갔다." 그는 우선 자신이 비전공자임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 서적을 공부하며 기계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대신 인문학도답게 다양한 스토리 컨텐츠를 개발하고 소통을 통해 접근했다. 그는 "고객들과 제품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적으로 그들과 가까워질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신뢰를 쌓아가니 마케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마케팅은 자신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만들고 부수기 수십번 만에 1호제품 성공, 제조단가 제품가격보다 높아

▲최 대표(사진 왼쪽)가 생산한 기계에 대해 직원들과 논의를 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면서 항상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디자인은 왜 이렇게 밖에 안되는 건지, 좀더 사용하기에 편리하게는 안되는 건지 등. 그래서 직접 기계를 만들면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최 대표는 단지 고객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에 2008년 5명의 식구들과 함께 지금의 프로테크코리아로 회사를 전환했다. 그렇다고 사무실과 생산 공장을 갖춘 번듯한 회사도 아니다. 그저 남의 공장 한 쪽을 이용하기로 한 것. 그는 자신있게 고객사의 주문을 겁없이 받아들인다. "주문을 받아 왔는데 직원들이 그러더라고. 당장 기계를 만들 공구도 없는데 무얼로 제작할거냐고. 기계 전문가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고 만들고 부수기 수십번 만에 드디어 제품 1호가 탄생했다. 당시 제품 가격이 3000만원이었는데 제조비가 5000만원이나 들어갔으니. 하하." 그는 "고객에게 가장 완전한 제품을 전달해야 하는데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또 다른 문제가 이어서 터졌다"면서 "너무 힘들어 기술도 없이 괜히 시작했나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고 당시 어려웠던 처지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고객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남의 공장 한켠에서 난로하나 놓고 직원들과 기름을 뒤집어 써가며 일주일간 밤을 세운 끝에 드디어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제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정말 기쁘고 보람이 있었다. 마치 자식을 낳은 듯 사랑스러웠다. 집에 가서도 기계가 보고싶어 밤에 혼자와서 기계를 만져보고 집에 다시 갈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기계 사랑은 2호, 3호로 이어졌다. 고객들 역시 그의 정성과 노력을 믿고 신뢰하며 지속적인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극심한 산고 끝에 탄생한 아이같았다. 지금도 (초기 제작품들을) 거래처에서 잘 사용하고 있다는 인사를 들으면 가장 행복하다"며 제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최 대표는 자신의 생각을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전한다. 신입사원을 선발하면 회사 설립과정부터 자신의 꿈까지 고스란히 전하며 꿈을 향해 같이 갈것을 제안한다. 그래서일까. 처음 1호제품을 같이 만들던 직원들을 포함해 15명의 직원이 프로테크코리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성장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 꿈은 지금도 진행중 그러나 사업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또 유통업과 제조업은 성격부터 달랐다. 당장 제조 원가, 장비 구입비 등 목돈이 들어갔다. 그런 현금 흐름표를 읽는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단다. 그야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사업을 시작한 셈이었다. 물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 할수 있었던 데는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무렵 지금의 테크노밸리는 지반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곳을 혼자 조용히 찾고는 다짐한 게 있다. 언젠가는 이곳에 내 공장을 갖겠다고. 늘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2008년 마침내 대전테크노파크 로봇지원센터에 입주를 했고 지난해에는 드디어 임대지만 테크노밸리 내에 자신의 공장을 갖게됐다. 그러나 그가 꿈꾸는 최종 무대는 국내가 아니다. 글로벌 무역시장이다. 기업운영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것이다. 그 꿈을 향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내년 일본과 중국 진출을 위해 착착 준비 중이다. 올해는 지식경제부에서 주관으로 11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로드쇼에 참가할 예정이다. 내년 10월에 동경에서 열리는 국제공작기계전시회도 출품을 신청해 놨다. 또 올해 중국 전시회에도 참가하게 된다. 그는 "중국 시장에서는 정밀도면에서 이미 제품을 인정받고 있고 일본에서도 제품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면서 "자체 기술력으로 AS가 거의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 높은 제품을 생산해 글로벌 무대에서도 신뢰를 높여 가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최승호 대표(왼쪽에서 네번째)와 직원들이 같은 꿈을 향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출장으로 빠진 직원들이 있다).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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