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⑤]日 연구수주 비율, 블록펀딩 70%·경쟁적 체제 30%
"크고작은 연구 흔들지 않고 꾸준히 지원한 것이 日 과학발전 비결"

유가와 히데키, 도모나카 신이치로, 에사키 레오나, 후쿠 겐이치, 도네카와 스스무...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일본은 지금껏 물리, 화학, 문학, 평화 등의 분야에서 총 18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기초과학분야에서 가장 많은 수상자가 나왔다. 일본 과학기술의 세계적 경쟁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많은 일본인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이유의 편린을 우리는 일본 연구원들의 일반적인 연구수주방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일본 정부연구기관은 소관부처로부터 연간 1회의 운영비 교부금을 지원받는데 대부분 블록펀딩식으로 전체 연구비의 70~80%를 받고 있다. 특히 문부과학성, 경제산업성 등 정부기관은 90% 블록펀딩으로 연구비를 지급한다. 우리나라 출연연의 평균 PBS 비율현황(50~60% 수준)에 비하면 매우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체제를 운영한다고 볼 수 있다. 운영비 교부금의 사용처는 각 법인의 재량에 맡긴다. 원장이나 이사장이 자유롭게 각 부서에 연구비를 지원해주면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따기위해 밖으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단지 자기가 속한 그룹에서 연구만 하면 된다. 연구평가는 한 연구부서가 아닌 기관 전체의 성과로 평가하기 때문에 어느 박사가 연구 성과를 못 냈다고 질타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다만 각 연구소는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 주무관청이 정한 중기목표를 4년에 한번씩 작성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작성을 거부한 기관의 경우 운영비의 집행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바로 이 행정적 부분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과제기획서(RFP), 과제별 수행계획서(시장조사, 연구내용, 참여인력, 예산 등 포함), 마일스톤 점검을 위한 각종 자료, 관련 기술 및 특허동향의 조사 분석 등 각종 서류에 묻혀 본연의 업무인 연구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과제가 종료되면 연차실적보고서, 연구보고서, 자체평가서 등을 작성해야 하며 대내외적으로 수시로 요구되는 문서들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러한 서류들은 과제가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여러 과제를 맡고 있는 연구원이라면 연구보다 행정처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뿐만아니라 부처감사와 국무총리감사 등 잦은 감사도 과학기술자 연구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연구비를 많이 받는 연구자는 감사의 주요 타깃이 되는데 이 때문에 대형연구과제의 책임자를 맡기를 꺼려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정부의 안정적 연구비 지원과 더불어 연구소의 자율적 분위기를 통해 크고 작은 연구성과를 배출했다. 그 중 이화학연구소의 113번 원소 발견과 교토대학의 마우스 피부세포에서 줄기세포(iPS 세포)를 만들어낸 것 등이 대표적인 연구성과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소립자 이론, 양자전기역학을 특수 상대성 이론, 인체의 항체생성에 관해 주요한 발견을 하는 등 과학분야 노벨수상자를 대량 배출해냈다.

◆ "과학과 정치 따로 가는 과기 일본 정책"…꾸준한 연구비 지원의 비결

일본은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해왔고 그 결과 다양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왔다. 이렇게 안정적인 과학기술지원이 가능했던 이유를 히라사와 료 미래공학연구소 이사장은 '과학과 정치가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때 마다 과학계가 흔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연끼리 합병했다 떨어졌다하는 일 부터 컨트롤타워가 바뀌고 없어지는 등 일본에 비하면 지나치게 변화가 많다.

반면 일본의 경우 총리가 바뀌더라도 과학을 거론하는 정치인은 없다. 이미 과학자들과 정책관료들이 만들어 놓은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연관이 돼 지속적인 안정적 지원으로 이어지고 곧 과학기술 강국이라는 방정식이 정착됐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한국의 심화되는 PBS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는 "대학이든 연구소든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경쟁을 심화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면서 "나 때만해도 하고 싶은 연구에 대한 제약이 없었다. 일본은 연구법이 좋아서 과학이 발전했다기보다 그런 제약이 없었기에 좋은 일들(노벨상 수상 등)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경쟁적 프로젝트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머지 연구비 총액 가운데 20~30%가 바로 그것이다. '경쟁적 자금 제도'라고도 불리우는 데 연구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을 경우 연구자 스스로 자금 지원을 받거나 국가 행정기관의 지시를 받아 연구를 수행한다. 이 경우에는 정부기관인 NEDO(신에너지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와 JSPS(일본학술진흥회) 등이 자금을 배분한다. 관리 방법은 제각각이다. JSPS의 경우 비교적 자유로운 경쟁적 자금을 지급하지만 NEDO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기관이 경쟁적 자금제도를 수행하고 있으나 기관에 따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일일히 나열하기는 쉽지 않다는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경쟁적 자금에 대한 일본 연구관계자들은 크게 반발하거나 거부감이 없다. 한국의 단편적이고 역동적인 연구수주경쟁이 아닌 정부가 연구자들과 호흡하며 서서히 변화를 준 결과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노벨상과학자를 배출한 일본이 과학계에서 100보를 갔다고 치면, 우리는 아직 50보를 걸은 수준이다. 때문에 현재 일본을 비롯한 과학 선진국들이 펼치고 있는 정책을 단순 모방하기에는 우리나라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 환경이 무조건 경쟁체제를 도입하기에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부터 먼저 살펴보는 것이 정도라는걸 잊지 말아야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