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명장은국가의보물-12]정우식 원자력연 종합안전평가부 박사
'FTREX'·'VIPEX' 개발로 국내 원자력 기술의 세계 경쟁력 확보 기여

원자력과 관련된 사고는 일반적으로 발생 빈도가 극히 낮다. 그렇지만 한번 발생하면 위험의 파장이 엄청나다. 1986년 4월 26일 구소련(현재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는 현재까지 발생한 원자력 사고 중 최악의 사고로 꼽히고 있다.

앞으로도 위험한 방사성 원소가 충분히 감소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현재도 사고 수습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원자력과 관련된 사고는 당시 뿐만 아니라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사건이다.

그런 탓에 원전 운전 및 유지 보수는 전세계적으로 더욱 철두철미하고 정교·치밀하게 접근하려는 추세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PSA(확률론적 안전성 평가:Probabilistic Safety Assessment)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전성 확보 및 향상을 위해 PSA를 수행하고 있다.

원전의 안전한 운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관련 PSA 전산코드 개발이 필수적이며 이 전산코드의 핵심은 고장수목 정량화 소프트웨어의 계산속도와 정확성이다. 최근 정비 규정의 시행으로 원전의 폐기 때까지 매일 매일의 원전 위험도의 변화를 추적하는 위험도감시 전산시스템의 사용이 일반화하고 있다.

위험도감시 전산시스템의 한번 계산은 한번의 PSA 계산에 해당한다. 위험도감시 전산시스템의 사용으로 각 원전 당 1년에 3000번 정도의 위험도 정량화가 수행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초고속 고장수목 정량화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의 핵심엔진 역할을 하는 'FTREX'. ⓒ2011 HelloDD.com

정우식 한국원자력연구원 종합안전평가부 박사는 세계적인 고장수목 계산 소프트웨어인 'FTREX(Fault Tree Reliability Evaluation eXpert)'를 개발해 국내 원자력 기술의 세계 경쟁력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고장수목이란 대규모 시스템에서는 랜덤한 이상이 거듭되어 바람직스럽지 못한 사상(事象)이 발생할 때가 많은데, 이와 같은 이상의 조합을 조직적으로 구하는 그림과 같은 논리 다이어그램을 고장수목이라 한다.

정 박사가 개발한 'FTREX'는 원자력 발전소의 모든 사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노심손상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PSA분야 핵심 소프트웨어다. 이 FTREX는 국내외의 유명 PSA 전산코드와 위험도감시 전산시스템의 핵심 계산 모듈로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미 정 박사는 'FTREX'의 전 단계인 'FORTE'를 개발해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미 항공우주국 NASA를 포함해 미국, 캐나다, 유럽 등 해외 각지에 10년 이상 수출해 왔다. 2000년대 초반 새로운 고장수목 정량화 신기술을 개발하였고 그리고 이를 새로운 고장수목 소프트웨어 'FTREX'에 구현했다.

그는 2006년부터 'FTREX'를 미국, 캐나다, 스위스, 그리고 스페인 등 전 세계의 수많은 원전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의 원전 70%가, 그리고 캐나다의 원전 100%가 정 박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 박사는 "고장수목 계산 분야는 국내 기술이 세계 최고이다.

또한 고성능 고장수목 소프트웨어 'FTREX'를 개발해 전 세계 대형 기간시설에 대한 위험도의 초고속 계산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원자력 기술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했다"며 "국내 원자력 기술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교두보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FTREX' 수출액은 15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전 세계 많은 전력회사들을 대상으로 판로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 박사는 "'FTREX'의 판매 호조로 총 3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시장은 유럽이다. 정 박사는 "유럽의 판매 대행사와 현재 방법을 찾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득이 되면 남의 것이라도 가져다 파는데, 유럽의 후보 판매 대행사가 속한 국가가 대한민국만큼이나 국가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판매 대행 계약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FTREX' 성능의 우수성 때문에 스페인과 스위스 등에 유럽에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한꺼번에 유럽시장을 장악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차근차근 진행해 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표명했다.

◆ 기술 신뢰성 때문에 어려움 겪었던 판로 확보, '신뢰'로 뚫다
 

▲'FTREX' 소프트웨어. ⓒ2011 HelloDD.com
2005년 'FTREX' 초기 개발을 마무리하고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판매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해도 팔리지 않거나 실질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면 사장되게 마련이다.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최대 시장인 미국 전력회사들에 판로를 뚫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미국 전력회사에 직접 판매를 모색하였으나 우선 문제가 됐던 점은 바로 QA(quality assurance)였다. 미국 전력회사 입장에서 볼 때 'FTREX'는 미국에서 멀고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였고, 그로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 전력회사들 중에도 미국 전력연구소(EPRI)가 품질 보증을 해준다면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이 많았다. 결국 EPRI를 판매 대행사로 뚫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개발한 제품의 사장을 막기 위해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직접 판로를 개척하기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한국과학재단의 인력양성프로그램을 지원하여 2006년 일 년 동안 EPRI로 파견을 갔다.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는 EPRI의 변호사와 직접 협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변호사와의 싸움은 머리 아픈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 아닌가. 2006년 내내 1년 동안 이어진 설득과 협상으로 마침내 길이 뚫렸다. 마침내 EPRI와의 판매대행 계약을 맺고, 2006년 12월에 플로리다 원자력발전소에 'FTREX'를 첫 수출하였다.

병목이 뚫린 만큼 그 이후로는 탄탄대로였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그의 소프트웨어는 북미의 원전들에 일제히 깔리기 시작했다. 'FTREX'의 우수성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정 박사는 "과거에는 PSA를 한 번씩만 수행했다.

그러나 미국의 규제가 바뀌었다. 원전운전에 사소한 변화가 있을 경우 원전 위험도를 무조건 재계산해야 한다. 이에 각 원전 당 1년에 3000번 정도의 위험도 정량화가 수행돼야 했다"며 "이러한 상황의 변화 속에서 계산 속도가 중요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수준을 만족시켜주는 소프트웨어가 없었다.

'FTREX'는 다행히 그 기준에 부합하는 유일한 소프트웨어였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력 시설의 물리적 방호구역 설정시 필수적인 핵심구역(Vital Area) 파악을 위한 소프트웨어인 'VIPEX(Vital area Identification Package EXpert)'도 개발했다.

핵심구역은 원자력 발전소를 구성하는 복잡한 시설들 중에서도 대규모 방사능 누출을 일으킬 수 있는 파괴 행위로부터 방호돼야 할 최소한의 공간을 가리킨다. 지난해에는 IAEA에 교육용으로 'VIPEX'와 'FTREX'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현재 IAEA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물리적 방호 관련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이번 기회를 통해 국제 공인을 획득하고, IAEA 및 회원국들과 관련 기술 교류 강화를 통해 선진 원자력 방호 기술을 습득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 새로운 알고리즘 개발을 통한 패키지 수출과 후진 양성 목표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정 박사. ⓒ2011 HelloDD.com
'FTREX'는 자동차로 얘기하자면 엔진이다. 즉 전 세계에 자동차 완제품(소트트웨어 패키지)이 아닌 엔진(핵심 고장수목 계산 소프트웨어)을 수출하고 있다. 정 박사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패키지 수출은 매우 어렵다.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패키지 수출국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게 가장 큰 꿈이다. 소프트웨어를 계속 수출하면서 미국의 EPRI처럼 중요한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하는 유저그룹을 만들고, 유저그룹을 대한민국이 관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FTREX'의 개발이 성공한 데는 그의 개인적인 호기심이 크게 작용했다. 성공 가능성이 미지수였기 때문에 개발 초기에 팀이 아닌 개인 연구를 진행했다. 그 이유로 개발단계에서의 과정 공유와 확산이 누락됐다.

그에게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이라도 개발한 기술을 공유하고 함께 연구개발해 기술을 발전시킬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정 박사는 원전 설계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한 제도적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원전 설계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역사는 길지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 초기에 지적재산권 개념이 미약했고 해외 수출이 아닌 국내 기술자립만이 시대적인 요구였기 때문에, 해외 수출에 꼭 필요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개발한 설계 소프트웨어들이 있다.

수출이 확대되면서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는 개발 초기에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기술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원자력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우수하다"며 "정부의 체계적인 연구개발 투자 및 수출지원 정책이 추진되는 환경에서 연구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한다면 그 전망은 더욱 밝을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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