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공청회 개최…연구 활동비 규제 완화 및 서류 간소화 특징
연구비 부정 관련 참여제한기간 확대 등 조치 강화

"간접비 사용 부분이 중요하다. 각 기관에 맞게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원칙이 마련돼야 한다."(서은경 전북대학교 교수) "일부 제약을 강화한 부분들이 보인다. 개선안의 행간을 읽어보면 숨어있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투자를 제대로 해도 모자랄 판에 일일이 제약을 거는 건 개선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이광형 KAIST 교수)

"연구원으로서 떳떳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연구자가 세금 잡아먹는 도둑놈처럼 비치는 것은 좋지 않다. 룰이 명확해야 하고, 연구관리가 투명해야 한다. 투명할 수 있다면 관리의 강화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이어야 한다."(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김도연)와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공동으로 마련한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제도 개선안' 공청회에서 나온 과학기술자들의 목소리들이다. 그들은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 제도가 개선이 아닌 과학기술계의 옥상옥 구조를 고착화할 규제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랐다. 개선안의 요지는 연구원 식대 등의 연구활동비 규제가 없어지고, 과제계획서나 연구결과 보고서 등 연구과정에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간소화된다는 내용이다. 다만 연구자의 연구비 부정에 대해서는 참여제한기간을 확대하는 등 조치가 더욱 강화된다. 이같은 개선안은 관리자 중심의 현행 제도를 연구자 중심으로 개선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

먼저 현재 부처별로 마련해 운영중인 100여가지 국가R&D사업 관리규정에 들어있는 불필요한 기준들을 표준화한다. 현행 기준에서는 연구활동비와 관련, 연구원 식대는 얼마, 평일 저녁 몇시 이후 사용 금지 등 과도하게 구체적인 규제들이 망라돼 있고 부처별로 서로 달라 연구자들의 혼란이 큰 상황이다. 이같은 규제들을 없애고, 미래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자율성을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개인 기초연구사업에 대해서는 그랜트(Grant) 방식을 도입, 아이디어가 연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년도 협약이 가능하도록 하고,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과제계획서나 연구결과 보고서 등 연구수행과정에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간소화한다. 연구과제 종료 후 발생한 집행잔액은 반납하지 않고 주관기관에서 연구자 단위로 관리, 해당 연구자가 후속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비 풀링제도 도입된다.

다만 연구비 부정은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여러가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최장 참여제한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고, 연구비 부정사용 등 중대한 사유로 3회 이상 참여제한을 받아 총 참여제한 기간이 10년을 초과할 경우엔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를 영구 제한한다. 이 경우 기존에 수행 중이던 다른 과제도 참여를 중단시킬 수 있다. 이밖에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됐다. 중소기업과 공동연구개발과제로서 일정금액 이하인 경우는 과제 수 제한기준 적용을 제외하고, 중소기업의 기술료 납부 금액을 정부 출연금의 10%로 낮췄다.

이에 대해 서은경 전북대학교 교수는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제일 중요한 점은 이공계 연구자들이 행복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긍심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들이 관리를 위한 연구에 묶여있다 보니 좋은 연구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이번 개선안의 경우 상당부분 연구자들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 듯이 보인다. 선의의 연구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원칙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형 KAIST 교수는 "그랜트 방식 연구과제, 인건비 풀링제도, 간접비 기준 정비 다 좋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초기 연구환경 개선의 목적과는 달리 기준을 정비한다면서 제약을 넣은 부분들이 보인다"며 "연구자 인센티브 역시 마찬가지다. 종합 검토해 재정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행간을 읽어보면 무슨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연구자들의 인센티브 마저도 어떻게 하려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는 "기본적인 추진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국가연구개발사업에 관여하는 기관이 워낙 많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어 유연한 사업 관리에 해가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대형 사업을 하는 연구자들에게 융통성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그는 "성실, 실패에 대한 개선안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기초연구에 대해서는 성공이냐 실패에 대해서 가늠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랜트라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다면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성과 지표를 내놨으면 좋겠다. 성실과 실패라는 말은 기초연구에서 쓰지 말아야 한다. 실패라는 말이 나올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신 박사는 "지식재산권 소유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여러 기업과 학교, 연구소가 대형 과제를 함께 하다 보면 지식재산권 소유를 누구로 하느냐를 둘러싸고 마찰이 일어날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주관기관이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기관에서는 반발한다. 이해가 간다. 현재 제도로는 룰이 명확하지 않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용현 대전·충청벤처협회장은 "자율과 책임이라는 두 단어 중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끌어내리지 않는 한 국가과제를 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가 많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연구에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최소 20년은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며 "연구하고 싶은 분야에서 헌신할 수 있는 자세가 나와야 하는데, 현재는 그 자세가 깨졌다. 개선안에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항목이 들어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이날 논의된 개선방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심의를 거쳐 12월 중 확정될 예정이며, 이후에는 과학기술기본법 등 관련법령 개정 등 후속절차가 추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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