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구자용 박사, 원자 관찰용 '저온STM 기술개발'
연구결과 정밀검증·수율 향상 등…신제품 개발·생산효율 극대화

"이제 우리도 원자를 직접 볼 수 있게 됐어요." "에이, 말도 안 돼. 그렇게 작은 원자를 어떻게 본다는 거야?" 30여 년 전, 직접 원자의 구성을 볼 수 있는 장비인 주사관통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을 개발했다는 논문이 발표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리학자들마저 그 논문 결과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두고 내기를 할 정도였다. 애초에 원자를 관찰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에 걸쳐서 연구의 결과가 사실로 입증되자, STM을 통해 개별원자들의 배열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과학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원자의 배열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물성을 근본적인 수준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됐으며,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제품 생산 공정의 효율성까지 높일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원자의 배열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무엇일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김명수) 나노소재평가센터의 구자용 박사는 바로 이 최적 조건을 찾고 있다. 특히 원자의 본질적인 상태를 확인하고자 STM 기술 적용에 최적 조건을 부여할 저온 환경 구축에 매진 중이다. ◆ 저온에서만 볼 수 있는 '진짜' 원자의 모습 '저온 STM'은 저온환경에서 원자의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장치다. 구 박사가 저온 STM 기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0년 초지만, 사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STM 기술을 이용해 연구해온 베테랑이다. 그가 저온 환경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낮은 온도에서야말로 원자의 본질적 현상이 더욱 활발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온도에 따라 다양한 현상을 보이는데, 온도가 올라갈수록 열작용으로 인해 원자들 사이의 본질적인 현상이 흐지부지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 저온에서는 초전도나 초유동 등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많이 생기게 되지요. 바로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절대온도를 기준으로 0(零)K는 원자들이 에너지를 잃어서 모든 것이 정지되는 온도다. 섭씨로 따지면 영하 273도에 해당한다. 대략 4K 이하의 저온 상태에서는 입자와 파동이 구분되지 않거나 입자가 파동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 심하게는 입자가 한 곳에만 존재하지 않고 전 우주에 퍼져 있는 비국소성을 보이는 경우 등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다양한 양자역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보통 우리가 생활하는 섭씨 27도 정도의 온도에서는 원자들의 진동이 매우 심해져 원자들이 가지고 있던 이러한 본질적 현상 중 많은 것들이 자취를 감춘다. 당연히 보다 정확하게 원자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상온에서 열작용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원자의 배열을 확인하는 방법보다 저온 상태에서 원자의 본질적인 배열과 결합상태를 살피는 것이 필수적이다. 저온에서 원자의 배열과 원자들 사이의 결합을 직접 측정하게 되면, 온도차를 기반으로 상온에서의 원자배열과 물성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겉으로 드러나는 물성을 측정한 후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하면서 매번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원자모델의 가설을 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만들어진 원자모델이 반드시 맞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면 STM 기술을 이용하면 물질 속 원자의 상태를 직접 측정해 보다 근본적인 연구를 할 수 있지요. 결과적으로 물질이 드러내는 성질이 아닌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를 직접 측정해 물질의 성질까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피상적인 현상을 기반으로 수행된 기존 연구결과의 정밀 검증도 가능해질 수 있지요."

▲영하 272.7℃ 이하와 고자기장에서 가동되는 '저온·고자기장 STM'의 전체 적인 모습. STM의 기계장치와 제어부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2011 HelloDD.com
◆ 원자 배열을 알면 '완벽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행복한 삶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잘 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가 중요하죠.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산업 중에서도 튼튼한 제조업이 가장 중요하며, 그 제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 기술이며 그 기술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이 산업기술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직접 부딪혀야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도 과학을 통해 쌓인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한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 특히, 원자구조의 직접적인 측정기술은 제조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이것이 결국 우리네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으며, 원자의 배열은 물성을 결정한다" 단단함, 딱딱함, 부드러움 등의 물리적인 성질을 비롯해 화학적인 성질, 전기적인 성질, 광학적인 성질 등 물질의 모든 성질은 '원자의 배열'에 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와 흑연, 숯.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탄소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같은 물질로 구성됐다 하더라도 원자 배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석에서 숯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물질이 탄생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원자의 배열을 조절해서 인위적으로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산업체의 경우 원하는 목적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설계가 가능해진다. 보다 정밀한 공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STM 기술의 강점이다. 특히 최근 반도체나 LED, 자기적 메모리, 원자현미경 등 보다 정밀한 공정이 요구되는 분야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원자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구 박사는 저온 STM 기술이 과학계에서 나오는 연구 결과를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산업계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체에서는 제품의 성능은 물론 수율을 높이는 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보통 첨단제품을 처음 생산할 때 수율이 50%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불량이 많아질수록 손실이 커지지요. 항상 일정한 공정을 유지하고 품질 제어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부품의 원자구조를 설계해 원하는 목표에 맞는 조건을 충족시키면 항상 똑같은 공정으로 똑같은 제품을 99.999%의 수율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산업체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지요. 또한 새롭게 얻게 되는 다양한 물질의 양자역학적인 정보를 산업에 이용하면 미래에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효율·고성능의 새로운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저온 STM 기술 개발은 1단계로 2012년까지 3년간 진행된다. 1단계의 목표는 연구 장비와 연구 환경의 구축. 이후 약 10년 동안 장기적으로 기술개발과 연구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끝으로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 과학계의 정밀측정 연구와 산업계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 (왼쪽부터) 서언미 학생, 구자용 박사, 엄대진 박사, 양광은 학생. 함께 연구하는 김원동 박사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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