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위원장, "관련 법안, 내년 2월 국회 통과 노력할 것"
융합연구 도움되도록 유럽연합(EU)식 통합 추진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와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 소속으로 나뉘어 운영되던 27개 과학기술 관련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19개 기관이 하나로 묶인다.

19개 기관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산하 단일 법인으로 편제되며, 나머지 8개 기관은 부처 직할 체제로 전환된다. 과기계 모든 이들의 관심을 모았던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김흥남)는 지경부 잔류가 결정됐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는 폐지된다. 김도연 국과위 위원장은 14일 브리핑을 통해 국가연구개발원으로 단일법인화되는 기관은 기초소속 11개(KIST, KISTI, 기초과학지원연, 표준연, 생명연, 한의학연, 해양연, 극지연, 항공우주연, 원자력연, 핵융합연)와 산업소속 8개 기관(기계연, 재료연, 철도연, 에너지기술연, 전기연, 화학연, 지질연, 안전성연)이며, 나머지 출연연은 농식품부(식품부, 김치연), 지경부(생기연, ETRI, 정보보안연), 국토부(건설기술연)로 부서 직할된다고 밝혔다.

기초연구의 성격이 강한 수리연과 천문연은 교과부 소속 기초과학연구원의 부설기관으로 이관한다. 국과위는 제일 먼저 단일 법인 운영의 공정성과 객관성 강화라는 취지에 맞도록 원장과 이사회, 평가제도 등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다시말해, 독립성 확보를 위해 단일법인의 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관련 부처의 의견 반영을 위해 당연직 이사로 기획재정부와 교과부, 지경부 등 관계부처 차관을 포함해 이사회를 구성하게 되며, 단일법인은 이사회를 통해 독립적으로 기관 주요사항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평가제도는 국과위가 상위평가를 수행하는 점을 감안, 자체평가시에는 외부전문가 평가단을 구성해 국과위 관여를 배제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관련 법안을 내년 2월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 각 연구원의 독립성을 잃는 단일법인이 아니라 자율성을 키울 수 있는 유럽연합(EU)식 통합을 추진하겠다"며 "연구소간 단일법인이 되면 A연구소 연구원이 B연구소를 왔다갔다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융합연구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ETRI의 잔류 이유에 대해서 "연구원은 융합하는 측면도 있으나 IT와 산업을 연계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한다"며 "ETRI의 예산 지원을 보면 지경부가 70%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부 예산이 아닌 정보통신진흥기금을 통해 연구하는 비율이 크다. 산업에 밀접하게 붙어 일한다는 측면에서 지경부에 잔류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의견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과위에 따르면 관련 법안이 내년 2월 국회에서 통과할 경우 국가연구개발원의 6월 발족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력과 조직 등 세부적인 개편은 융합의 취지에 맞도록 경과 기간을 두어 점진적으로 개편하게 된다.

◆ 개편 후 출연연의 변화?…"과학자들에게 자율성을 주겠다"

그렇다면 선진화 방안이 적용된 후의 출연연은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까. 국과위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기술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한 큰 변화는 우선 없다. 먼저 경과조치 기간을 가질 예정으로 그 동안에는 현재의 기관명도 기존 그대로 가게되며, 현 원장들의 임기 역시 보장된다. 그러나 폐지되는 양 연구회의 이사장은 사임이 결정됐으며, 연구회 직원들은 단일법인의 직원으로 승계될 예정이다.

김차동 상임위원은 "양 연구회의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는 일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연구개발원으로 오는 걸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일 법인 설립을 통해 국과위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융·복합 연구의 촉진이다. 김도연 위원장은 "법인이 통합되면 ETRI를 비롯해 연구소끼리 융합연구가 가능해 질 것이다. 500억 원 규모의 융합 펀드를 새로 확보했다. 내년 예산으로 사용될 예정"이라며 "연구는 중복되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서로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중요하다. 단일 법인화되면 서로 소통이 활발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일법인에서의 인력 수급 역시 이전보다는 훨씬 자유로워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연구소마다 정원이 정해져 있어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단일 법인이 될 경우 시급히 요구되는 중요한 연구 분야에 인력을 추가적으로 더 투입하는 등 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개별 출연연 법인격 해체에 따른 급격한 변동 등 불안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과조치 기간은 주어지게 된다. 경과조치 기간 동안 기존의 개별 연구기관의 원장들은 각 기관에서 인사·조직권을 독립적으로 보유하게 되며, 원장의 임기는 경과조치 기간까지 보장된다.

단일법인 출범 후 연구기관 원장의 임기가 만료될 경우, 신규 원장의 선임없이 통합법인 원장이 겸임 혹은 위임 관리를 하게 된다. 또한 개별 연구기관의 독립성이 유지되는 유예기간 동안은 통합 법인의 기능이 제한된다. 유예기간 동안 법인은 사실상 기존 연구회 기능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 "껍데기 보다는 알맹이를 봐야"…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은 연구현장

"국과위 산하로 가는 것에는 동의합니다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그냥 '합치자' 아닌가요? 그런데 합쳐서 뭘 어떻게 할 건가요? 제발 현장 의견을 수렴해주세요." "'옥상옥' 폐해가 그려집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봐서는 쉽게 기대하기가 쉽지 않네요." "국가 미션을 수행하는 연구원들이 하나의 콘트롤타워 밑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어디는 이래서 부처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궤변같습니다." 연구 현장은 새로운 체제 변화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오랜 시간동안 거론돼 왔던 출연연 개편 논의가 사실상 마무리됐다지만, '혹시' '설마' 등의 의혹감이 쉽사리 사라질 순 없다. 우선 단일 법인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조율되어야 할 과제들을 슬기롭게 현장과의 소통을 기반해 풀어가야 한다는 데 현장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단일법인 통합에서 일부 문제점이 있더라도 국과위가 예산 확보, 집행, 관리의 책임을 갖게되고 현행 PBS 제도가 개선되고, 나아가 연구원간 벽이 무너져 기술간 융합(IT, NT, BT, CT 등)을 통한 융합원천기술 연구개발이 활성화되면 시너지 효과가 창출된다고 생각된다"며 "그동안은 과도한 과제 수주와 평가, 과제 관리로 연구자들이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껍데기 보다는 알맹이를 보고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ETRI나 생기원 같은 거대 연구소들이 다 빠져나가면 국가 R&D 체제에서 국과위가 힘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경부가 ETRI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언가 의미가 있다"며 "국과위의 위상이 강화돼야 한다. 예전 과학기술부 역할을 할 수 있을만큼 강화돼 예산지원도 많이 하고 자율성도 많이 주어야 과학기술계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K 연구원 L 박사는 "혼란이 걱정된다. 서두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2개, 3개 기관의 통합에도 시끄러운 게 과학기술계다. 하물며 19개 기관 통합이 하루 아침에 될리가 만무하다"며 "일시적인 통폐합은 가능하지 않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내년이 권력 재편기 아닌가. 시간을 가지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연구에 신경쓰기에도 모자란 연구원들이 다른 곳에 신경쓰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상민 국회의원은 출연연 개편에 대해 '졸속 부실'이라고 비판하면서 과학기술계 염원인 정년 환원 문제와 과학기술인연금확충, PBS개선부터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반영하지않은 졸속부실이며, 국가 과학기술의 백년대계를 좌지우지할 매우 중대한 문제를 1년도 남지않은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서둘러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고 추진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일로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또한 40년동안 쌓아온 출연연을 없애고, 단일법인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고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출연연은 외국에도 충분히 알려져 있는 역사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완전히 부인하고 단일법인화 하겠다는 것은 국가 과학기술의 소중한 자산을 없애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며 "이사회체제로 출연연의 명칭은 그대로 존속시키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40년 역사의 각 출연연을 해체한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회장 정정훈) 역시 14일 성명서를 통해 " 부처 직할 및 부설기관 이관으로 분류되어 있는 8개 연구기관도 출연(연) 및 과학기술계의 의견 수렴을 통하여 국과위로 이관하여야 한다.

또한 민영화로 분류되어 있는 KIT는 즉각 민영화를 취소하여 고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며 "법인 개편은 출연(연)연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가적 브랜드와 연구의 자율성, 연속성 및 전문성이 담보되는 개편방안이 수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연협은 "연구 몰입환경을 위한 연구과제중심(PBS)제도 개선, 연구원 정년 환원 및 신진 연구자의 정규직 채용 확대 등 연구 기반을 조속히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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