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용광로처럼 뜨거웠던 삶 돌아보다

지난 9월 19일 오후 6시 반. 단정한 회색정장에 중절모를 눌러쓴 84세의 남자가 포스코 한마음체육관으로 들어섰다. 굳게 다문 입에 띈 옅은 미소로 참석자들에게 반갑게 화답하며 단상을 향했다. 박태준 포스코(포항제철) 명예회장이 손수 만들고 일군 참호이자 고향인 포항제철을 떠난지 19년 만의 일이었다.

포항제철을 함께 만들며 그렇게 뜨거웠던 전우들이 세월엔 이기지 못해 하얗게 머리가 세어버린 탓이었을까? 단상에 올라섰던 당당한 걸음에 비해 그는 쉽사리 말을 떼지 못했다. 가늘게 입가가 떨려왔다. "미안합니다…" 가늘게 떨리던 입은 잠시 다물어졌고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여러분을 뵈니까 눈물부터 나옵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우리가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청춘을 보내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여러분들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우리는 후세들에게 행복을 주기위해 희생하는 세대였던 것입니다." 포스코역사관 3층 박태준 기념관에는 그가 재직 중에 사용하던 군지휘봉과 안전화가 그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남아있다.

과거 그가 회장으로 재직 중 그의 안전화와 지휘봉은 직원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인부들과 같은 작업복 차림으로 지휘봉을 들고 현장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빠짐없이 지적하기 시작하면 직원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현장에서 조인트(정강이)를 차고 직원들의 화이바(안전모)에 지휘봉을 내리치기 일쑤였다. 총무과에 근무하다 퇴직한 강원수(67)씨는 "현장이 지저분하다며 화이바를 때려 지휘봉이 부러지는 것을 보곤 기절할 뻔했다"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 "사심없이 헌신하라. 무한경쟁시대일수록 필요하다"

1970년 포항제철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다. 박 회장이 영일만 옆 모래벌판에 공장보다도 먼저 지은 것은 '연구자'들과 '사원'들이 살 집이었다. 이는 그가 유럽 방문시 경험한 '안정적인 생활 속에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기술인'에 대한 고민과 꿈의 발현이었다. 안팎으로 수많은 세력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으나 그는 꿋꿋이 건설해 사원들의 정주환경을 마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종이마패'  ⓒ2011 HelloDD.com
또 다른 문제는 막대한 공사자금에 눈독을 들인 정치인들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령으로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기관으로부터 여러 번의 가택수색을 받았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설비 구매에 관한 재량권 위임장(일명 종이마패)'을 써줬다. 사실상 "박태준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권을 일임받은 박 회장은 사원 채용에 있어 철저한 공개 채용과 투명화를 고수했다. 자신이 손수 키운 자식과도 같은 포항제철에 더러운 청탁이 묻지 않기를 바란 그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준 '마패'는 최고의 무기이자 빚이었다.

공채 1기 평사원으로 입사해 포스코 5대 회장직을 역임한 이구택 회장의 경우만 봐도 그가 만든 포항제철의 원칙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알 수 있다.

1988년 포항제철 기업공개에서 그는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에겐 주식을 나눠줄지언정 나를 비롯한 임원들은 1주도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생전에 1주도 소유하지 않았다.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포항제철을 만든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우향우'다. 소위 '우향우 정신'이라 불리는 결사의 각오가 지금의 세계적인 기업 포스코를 만들었다. 대일청구권자금을 사용해 포항제철의 기반을 다지며 박 회장은 "이 제철소는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금. 말하자면 조상의 혈세로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만일 실패한다면 우리는 바로 우향우해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각오로 일하자"며 필사의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박 회장은 제철소 건설에있어 공기 단축, 단가 최소화, 부실공사 불허의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1970년 제일 먼저 착공한 열연공장 건설공정이 늦어지자 '열연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행정 사무직을 포함한 전 직원을 공사현장에 투입하는 전대미문의 답안을 제시해 일정을 맞췄다.

또한 1977년 여름, 건설 중인 설비 콘크리트가 울퉁불퉁한 것을 보고는 이미 80%의 공정이 진행되었음에도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이를 폭파, 재건설을 지시했다. 포스코 역사관은 지금도 이 콘크리트를 보관, 전시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켰던 사람. 호된 질책과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던 사람. 故 박태준 명예회장은 "짧은 인생 영원조국에"라는 그의 좌우명대로 짧다면 짧은 84세의 일기를 국가건설에 바쳤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라는 말처럼 그의 뜨거운 삶과 말들은 계속 살아 곁에 남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올곧았던 그의 삶만큼이나 솔직하고 열정이 가득했을 그의 뜨거운 발길질이 문득 그립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故 박태준 회장의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주요 정·재계 인사들과 포스코 임직원,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이며 영결식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故 박태준 회장의 삶을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저 이대환. 현암사)', '박태준(저 조정래. 문학동네)', '우리친구 박태준(저 안상기. 행림출판사)'을 참고하면 된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박태준 회장의 글귀와 함께 그 정신을 잇는 후대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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