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박태준 회장의 별세는 시대의 변곡점
공업화 반세기 마침표, 과학 반세기 출발점
김정일 사망 등 동북아 정세 급변…인류 공영 거시적 관점서 대응해야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서울 국립 현충원에 17일 안장됐다. 그의 평소 입버릇이던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가 현실로 된 것이다. 그의 죽음은 한국호에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공업에서 과학으로!

2012년은 한국사에 매우 의미심장한 해이다.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이던 국가가, 2만달러로 되고, 원조받던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환골탈태하는 출발점인 공업화가 시작된지 반세기가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을 기념해 세워진 공업탑. 선언문에는 '검은 연기'란 표현이 들어있어 당시 공업화에 대한 우리의 절박함을 알게해준다. ⓒ2011 HelloDD.com
울산공업센터 기공을 기념해 세워진 공업탑. 선언문에는 '검은 연기'란 표현이 들어있어 당시 공업화에 대한 우리의 절박함을 알게해준다. ⓒ2011 HelloDD.com
박 회장이 지휘봉을 잡았던 포스코의 출발점도 그 뿌리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에서 찾을수 있다. 그해 1월13일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선포됐고, 2월3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단인 울산공업센터가 기공된다.

그 기공식장에서 박정희 당시 혁명평의회 의장의 아래와 같이 연설한다.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 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당시 연설문은 울산시 공업탑에 새겨져있다)

경제개발이란 방침에 따라 울산공업센터에 이어 63년 광부,간호사 독일 송출 65년 구로공단 기공, 베트남 파병 및 한일국교 정상화 66년 여천공단 기공, 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 포철 설립 70년 포철 기공, 71년 10월 유신 및 중화학 공업화 선포, 구미 전자공단 기공, 74년 창원 기계 공단 및 대덕연구단지 기공 등등의 국가 프로젝트가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며 한국호를 가난의 바다에서 희망의 바다로 항해시켜 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단위로 도약과 비약을 거듭하며 마침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선진국의 반열에 접어들었다.

◆92년 박태준 회장의 임무 완수 보고문

박태준 회장의 보고문 사진. ⓒ2011 HelloDD.com
박태준 회장의 보고문 사진. ⓒ2011 HelloDD.com
한국호가 잘 살기 위해 한창 항해를 하던 중, 박 회장은 지난 92년 개천절에 일반인의 눈에는 다소 뜬금없이 현충원을 찾았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며 자유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이전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평가절하되던 시기였다.

그 자리에서 박 회장은 두루마리 한지에 붓글씨로 된 보고문을 읽어 내려갔다.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와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광양의 양대제철소에서 조강생산 2천1백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지었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하지 말고 맡아!" 1967년 어느날 영국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을 내리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25년이란 긴 세월을 철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 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열세 차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셨을 때는 '2천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리나라는 6대 철강대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 삽을 뜬 이래 4반세기 동안 연인원 4천만명이 땀흘려 이룩학 포항제철은 이제 세계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울 뿐입니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각하! 염원하시던 '철강 2천만톤 생산국'의 완수를 보고 드리는 이 자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근영·지만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자녀분들도 이 자리를 통해 오직 조국근대화만을 생각하시던 각하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각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저 또한 옆에서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립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진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서소.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안면하소! 92년 10월 3일 불초 태준 올림'

◆죽음을 뛰어넘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신뢰의 기반은 애국

이후로도 박 회장은 집무실에 박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두며 '충성'을 했다고 한다. 대덕단지의 어느 과학자는 포스코 역사관에서 박 회장의 보고문을 본 뒤 "온 몸에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람들간의 신뢰가 이익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세태에서, 죽음도 뛰어넘어 이어지는 두 사람의 '절대 신뢰'가 동서고금 어디에 존재할까하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박태준, 두 사람을 묶은 것은 시대정신에 사명감이었다.

식민지에 전쟁, 가난이란 아픔을 딛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두 사람을 묶어주었다. 그러기에 한 사람은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를 좌우명으로 삼았고, 다른 사람은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를 신조로 삼았다. 두 사람에게 조국은 종교이자 신앙이었으며, 근대화는 절대과제였던 것이다. 대전 국립 현충원에 가면 손기정 선생의 묘가 있다. 그 묘비명에는 심훈 선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듣고 쓴 글이 새겨져있다.

그 글에서 심훈 선생은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이라고 쓰며 패배가 당연시되던 식민지 시대의 암울함을 엿보게 한다. 그 당연하던 열등감에, 부족한 자원이란 좌절감, 안돼만 이야기하던 폐색감 등등의 온갖 부정적 요소 앞에서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상상조차 안되던 '잘사는 나라'란 미래를 그리며 두 사람은 나아갔다. 여기에 이병철, 정주영, 오원철, 김학렬, 김정렴, 최형섭 등등의 지도자와 과학자, 근로자, 농민 등이 하나가 되며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갔다. 두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깊이 포옹했을 것이다. 한 묘역에 나란히 누워 32년만에 해후를 즐기며 반갑게 포옹했을 것이다. 죽음을 뛰어넘은 신뢰란 유산을 후손에 남겨준 두 사람의 포옹에, 조국을 위해 몸바친 영령들이 둘러싸고 박수 치며 환호했을 것이다.

◆과학의 시대, 국가 발전에 과학자의 사명감 자문해야

잘살게 된 한국이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어려움을. 우리가 이제 풍족해졌다고 하나 역사적으로 보아 일본과 중국이란 두 나라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격랑에 휩싸일수 있다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지적이다. 마음을 조금만 풀어도 곧바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역사는 말한다. 더군다나 19일 점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특보가 세상에 알려졌다. 앞으로 급변하게 될 북한정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북한과의 관계 문제는 우리 세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라는 측면에서 더욱 정신차려 슬기롭게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박 회장의 서거는 풍족해진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게 해주었고, 애국심이란 불변의 가치관을 일깨워주었다. 1973년 쇳물이 쏟아지던 그 광경을 우리 가슴속에 새기자. '철'이란 테마를 갖고, 조국을 위해 인생을 불사른 그의 정신을 배우자. 앞으로의 시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특히 한국이 주권 국가로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과학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명제이다. 산업화의 시대에 경제역군들이 근대화의 제단에 섰다면 앞으로는 과학자들이 그 제단을 이어받아야 한다. 과학자 각자의 마음속에 자신의 '쇳물'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할 필요가 있다.

그 쇳물이 각자의 사명이 되어, 개인을 뛰어 넘어 국가 공동체를 생각할 때 과학자 개인도 살고, 국가도 살 수 있을 것이다. 2012년은 공업화 반세기가 과학 반세기로 나아가는 변곡점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모두는 뒤를 돌아봄과 함께 우리나라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업화 반세기를 눈 앞에 둔 세밑에 일어난 박 회장의 별세를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조국을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근대화와 애국이란 불변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었다. 이를 기반으로 후손들은 국가 번영과 인류 공영이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과제를 부여받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심훈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특히 "···인제도 인제도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는 절규가 기억되었으면 한다. 아직도 우리는 외세의 위협에 노출돼 있기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횃불)를 켜 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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