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의 한의학 이야기]

중국에 가면 대형 중의학병원에 설치된 미병센터가 눈길을 끈다. 중의학과 서의학의 진단기법을 모아서 건강상태를 평가하고 관리해주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천년전의 한의학 고전인 '황제내경'의 '불치이병 치미병'이란 구절에서 따온 이름인데 '명의는 병든 다음에 치료하지 않고 병들기 전에 (병들 기미를 미리 보아) 다스린다'는 뜻이다.

수명이 늘어나 고령자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세계는 웰빙의학이란 이름의 신 예방의학이 큰 흐름을 타고 있다. 백신접종으로 전염병을 예방하는 정도의 소극적 예방의학을 넘어서 전반적 건강수준을 지키고 향상시키는 예방의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에도 양방병원의 건강증진센터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비하여 그 진단기술은 매우 막연하고 비체계적이다. 질병 영역을 진단하는 기술이 지난 세기를 통해 크게 발전한데 비하여 건강상태를 평가하는 기술은 발전된 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건강상태를 몇점 정도로 볼 것인지, 또는 질병상태로 진입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평가할 방법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의학의 천재 이제마는 이 방면에도 명맥실수라는 멋진 틀을 만들어 놓았다. 즉 질병상태와 건강상태를 각각 크게 네 단계로 나누고 이를 다시 3개의 세부 단계로 나누어놓아 모두 24단계의 명맥으로 건강상태를 세분화하고 그에 따라 수명이 정해진다고 한 것이다. 과연 어떤 개념인지 살펴보자.

먼저 건강상태는 강녕-쾌경-청랑-신선의 네단계의 명맥으로 나뉜다. 강녕은 그저 병이 없는 상태로 우리가 보통 '건강하다'고 말하는 단계다. 이에 비해 쾌경은 '몸이 가볍고 날래다'는 뜻으로 육체적 활동능력이 보통 수준을 뛰어넘는 단계다. 단전호흡, 기공, 무술 등으로 잘 단련된 상태로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청랑은 '정신이 깨끗하고 맑다'는 뜻으로 육체적 능력 뿐 아니라 정신적 능력도 뛰어난 상태를 이른다. 나이가 들어도 사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출중한 분들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신선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한 건강상태를 이른다.

이 명맥을 알아야 하는 까닭은 그에 따라 남은 수명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64세 때 명맥이 강녕한 사람은 수명이 92세, 쾌경한 사람은 수명이 104세에 이를 수 있고, 청랑한 사람의 수명은 116세, 신선은 128세까지 이를 수 있다. 신선도 수명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지 않은가?

질병상태는 외감-내상-뇌옥-위경의 네단계의 명맥으로 나뉜다. 외감은 한번씩 외적 환경에 따라 감기 몸살 수준의 문제가 생기는 단계로서 질병상태는 1년중 3달을 넘지 않는다. 내상은 이미 내부 기능이 손상을 입은 상태로서 자리에 눕거나 활동에 지장이 있는 상태가 연중 3달에서 6달 정도 지속되는 단계이다. 뇌옥은 병이 몸속 깊이 자리를 잡아 몸이 감옥에 갇힌 듯한 상태로서 연중 건강한 시기가 3달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위경은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태이다.

외감은 약이 필요없고, 내상은 음식과 운동 등 생활관리를 위주로 하되 약을 보조적으로 쓰며, 뇌옥은 약을 위주로 치료하고, 위경은 약을 쓰지 않고 먼저 마음을 다스린다. 64세 때의 명맥이 외감인 사람은 80세, 내상이면 70세까지 살 수 있지만, 명맥이 뇌옥이나 위경인 사람은 잘 다스리지 못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남은 수명을 보장할 수 없다.

비록 개념만 세웠을 뿐 구체적 기준까지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 내용이면 큰 규모의 장기적 연구를 통해 세부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질병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치료를 하고 건강증진을 할 것인지에 대해 체질별 대책까지 제시해놓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발전시키기에 따라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웰빙의학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곧 이 미병연구를 본격화할 것이다. 이미 몇 년간 '체질건강지수'를 만드는 기초연구를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 바탕이 잘 마련되어 있다. 건강수준의 진단에 관해서만큼은 적어도 중국보다 앞서있다고 평가된다. 앞으로 이 연구가 유헬스케어와 결합이 되면 집에서 매일매일 자기 체질에 따른 건강점수를 받아보며 하루의 식단과 운동을 관리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이 의학을 전세계로 수출할 수 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진 일이 아닌가?

<한방 유헬스 그림>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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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본부장 ⓒ2011 HelloDD.com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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