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주희 KIST 연구원 부부, 7년 만에 실험실서 벗어나 크리스마스 추억 만들어
유병철 KIST 건설운영팀 전문원, 세 딸과 함께 트리 제작

대덕넷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집에서 직접 트리를 꾸미는 연구원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연구실을 벗어난 그들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아빠 엄마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201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끝자락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들의 스위트 룸에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는 KIST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편집자 주]

KIST 의공학센터 테라그노시스연구단의 류주희 연구원과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다니는 그의 남편 조의리 씨는 둘 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대 출신이다. 공대 출신 아니랄까봐 대학원 시절 실험실에서 만나 연애를 3년이나 하고 결혼했건만 여지껏 변변한 크리스마스 추억이 없다.

크리스마스 때도 실험실이나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게 고작. 조 씨의 그럴듯한 변명(?)에 따르면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란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하는 다른 젊은 여성들과 달리 흔쾌히 실험실에 동행해 준 여자친구의 진심에 감동한 조 씨와, 남자친구의 낭만보다는 성실함과 한결 같음을 높이 산 류 연구원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골인했다.

하지만 어디가랴, 부부가 됐다고 두 사람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특별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각자의 일과 연구에 바빴고, 2009년 12월 첫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육아까지 겹쳐 더더욱 기념일을 즐기기 힘들었다.

그런 부부가 결혼 4년, 연애를 시작한지는 7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추억 만들기에 나섰다. 게다가 어린 자녀들에게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할아버지는 꿈의 세계. 만3세가 되면서 부쩍 말이 늘은 첫 딸 하린이가 “산타할아버지 집에서 본 트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두 눈을 반짝이는데 더욱 용기를 얻었다.

마침 KIST에서 가족 트리 만들기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진행했고, 류 연구원이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다.

류 연구원의 가족이 트리 제작에 몰두했던 시간은 19일 저녁 8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와 다름없이 세미나에서 성실히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후 온 가족이 처음으로 트리를 만들 생각에 들떠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자 그럼 기자도 류 연구원의 추억 만들기 현장을 찾아가 볼까?

◆ 네살박이 딸의 첫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이거는 엄마 별, 이거는 나(내) 별”

“꺄르르르~.” 집안에 들어서기 전, 여자 아이의 웃음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거실 가운데 세워진 아직은 푸른색 그대로의 크리스마스 트리 주위를 하린이가 춤을 추며 빙빙 돌고 있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소위 두 손을 배꼽에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90도 이상 숙이는 배꼽 인사를 하고는 장식물들을 가져와 구경까지 시켜준다. 초승달처럼 가늘어진 눈에 즐거움이 한 가득이고,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선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린아, 크리스마스가 뭔지는 아니?” 재차 물어도 대답 없는 하린이 대신에 옆에 있던 류 연구원이 “하린이가 잘 모르는 건 짐짓 못 들은 체를 한다”고 설명하며 대신 하린이가 대답할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트리 어디서 봤지?”라고 묻는다.

엄마를 닮아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진다는 하린이가 어느 때보다 우렁차고 씩씩한 목소리로 “산타할아버지 집에서”라고 대답한다. 옆에서 류 연구원이 “마트나 어린이집에서 본 거 아니냐”고 확인해도 하린이의 생각은 달랐다.

하린이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 것은 분명 산타할아버지 집에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본다는 남편 조의리 씨의 얼굴에도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무엇보다 하린이가 좋아하는 모습이 가장 흡족한 듯했다.

조 씨는 “크리스마스에 좋은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그런 기억들이 나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이번 이벤트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는 “하린이가 세 돌이 될 때 이런 기회를 마련하게 돼서 행복하다”며 “아이가 매우 좋아하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덧붙였다. 살짝 졸린 표정으로 한 쪽에 앉아 구경하던 9개월 된 둘째 아들 하율이도 분위기를 타면서 슬슬 반짝이는 장식물에 손을 뻗는다.

하율이의 손에 잡힌 장식물들은 트리 위에 걸리기도 전에 곧장 작은 입으로 직행한다. 중간 중간 인터넷으로 완성된 트리 모델을 참고하랴, 하린이의 질문에 대답해주랴 바쁜 류 연구원의 임무 중 하나는 하율이의 입에서 장식물을 구출해내는 것.

류 연구원이 가루가 떨어지거나 부서질 염려가 큰 것 대신에 비교적 안전한 것들을 갖고 놀게 해줬건만 하율이의 얼굴에는 어느새 반짝이가 여기저기 묻힌 상태에서 혼자 낑낑거리며 상자 하나와 씨름을 벌인다.

▲나무 밑동을 장식하는 천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하린이. 트리를 만드는 동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2011 HelloDD.com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의 에이스는 역시 하린이. 작은 손으로 부지런히 장식물을 나무에 걸며 “점점 예뻐진다”고 좋아한다. 하린이는 어느 틈에 트리 밑동에 덮는 장식 천을 치마처럼 허리에 두르고 있다.

웃음으로 이어진 꾸미기 작업이 1시간쯤 지났을까, 트리에 조명을 밝히고 주변에 인형친구들을 세우는 것으로 류 연구원 가족의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가 완성됐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지만 하린이의 감각적인 트리 만들기 소질 덕분인지 산타 마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완성된 트리를 앞에 두고 류 연구원에게 소원을 묻자 “남편이 광주에 가서 너무 우울해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고, 우리 가족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대답한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습기가 가득하다.

사실 크리스마스를 늘 일상의 하루와 다름없이 보내던 류 연구원 부부가 올해에 유독 추억을 만들어보자고 나선 데는 별도의 이유가 있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조 씨가 광주로 발령을 받아 떨어져 지내게 된 것.

예상보다 일찍 발령이 결정돼 트리를 만드는 당일, 조 씨는 다음날 새벽 5시 기차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둘 다 애정표현을 잘하거나 무슨 일에 유난을 떠는 성격들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며 기쁨을 함께하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서로를 많이 의지했던 터라 걱정과 아쉬움이 앞선다.

연구만으로도 힘든 류 연구원에게 어린 두 아이까지 오롯이 맡겨놓고 떠나는 조 씨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조 씨는 “부친이 순환근무를 하셔서 그리움을 많이 느끼며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 같이 있을 때의 행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가족이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데 타지 근무를 하게 돼 아쉽지만 주말마다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크리스마스 소원은 아주 현실적인 바람들인데, 내가 없는 2년 동안 애기들이 안 아팠으면 좋겠다”며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인이 힘든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만들어요"

▲유병철 전문원은  2살된 채민이와 쌍둥이 희원&희우의 아빠다. 유 전문원은
결혼하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2011 HelloDD.com

"흰눈 사이로 / 썰매를 타고 / 달리는 기분 / 상쾌도 하다∼." 제일 큰 딸 아이가 부르는 캐롤음악이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아빠 엄마의 박수 소리에 둘째, 셋째도 덩달아 신이 났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 19일. 유병철 KIST 건설운영팀 전문원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두 살 된 첫째 딸 채민이와 이제 돌이 된 쌍둥이 희원&희우가 트리 만들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채민이도 이제는 제법 컸다보다. 말도 잘 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채민이는 길가에 꾸며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산타할아버지 선물이다!"라며 반가워할 정도다. 그런 채민이에게 아빠는 예쁜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유 전문원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일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즈음 태어난 쌍둥이를 맞이하느라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크리스마스는 아무도 몰래 스쳐지나가 버렸다. 하긴 두 살난 첫째 딸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조금 일렀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작년의 채민이가 아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시작되는 것을 눈치라도 챘는지, 눈망울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아빠가 트리가 든 상자를 뜯기 시작하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흥이 나서 집안을 콩콩 뛰어다닌다.

쌍둥이 두 딸은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문제인가. 언니의 신나하는 모습에 덩달아 즐겁기만 하다. 먼저 유 전문원이 트리를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부인은 트리에 장식할 알록달록 공과 인형, 별 등이 가득담긴 상자를 열었다. 순간 보물상자이라도 열리는 듯 채민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중 반짝이는 금색 공을 꺼내 동생들에게 쥐어주고 트리의 마지막을 장식할 별을 집어 들고는 "아빠 아빠~. 마지막 별은 내가 달게~"라며 보챈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트리가 세워지자 채민이는 트리 장식구들을 어디에 달을지 고민하다 작은 의자에 올라가 금색 리본, 빨간 공을 매달기 시작했다.

쌍둥이는 언니가 달아 놓은 공을 만지작거리다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채민이는 여기 저기 공을 매달아 놓느라 정신이 없다.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은 "엄마, 아빠 저기 위에다가 곰인형 달아주세요"라며 트리 디자인까지 한다.

트리 장식의 하이라이트 '별 달기'는 결국 키가 큰 아빠에게 양보했다. 유 전문원이 "채민아 트리 완성됐다~"라고 말하자, 자신의 곰 인형을 가지고 와서 트리 밑에 앉혔다. 이로써 약 2시간 만에 채민이 몸집보다 훨씬 큰 트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엄마는 세 딸에게 씌워줄 산타모자와 머리띠를 준비했다. 그러자 채민이는 "언니가 예쁘게 씌워줄게"라며 직접 동생들에게 머리띠를 씌워준다. 그리곤 신이나 어린이용 키보드를 두드리며 캐롤을 부르고 쌍둥이는 자기네들도 다 안다는 식으로 박수를 친다.

유 전문원은 "작년에는 쌍둥이가 태어나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보냈다. 올해가 가족과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라며 "결혼하고 처음으로 만드는 트리 작업이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채민이도 "트리 만들기 재밌어요. 너무 예뻐요. 친구들에게 보여줄 거에요"라며 신나는 표정이다.

세상에 태어나 첫 크리스마스를 맞은 쌍둥이와 첫 트리를 만든 채민이, 그리고 동심으로 돌아가 트리 만들기에 열중한 유 전문원 부부에게 2011년 크리스마스는 이미 행복으로 가득하다. 다섯 가족 모두 크리스마스 트리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공을 달고 있는 채민이와 채민이가 매달은 공을 만지작 거리는
쌍둥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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