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 과학정책을 논하다]

지난해 12월 2일에는 기술경영경제학회, 한국기술혁신학회, 혁신클러스터학회의 연합콜로키움이 부산에서 열렸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향후 과학기술정책의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화여대 박영일 교수는 출연연이 과학기술정책의 거의 모든 측면과 연관되어 있는 복잡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고, 순천대 박기영 교수는 연구개발인력의 고용 확대와 고용안정성 확보를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을 주문했다. 출연연은 해당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출연연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과학기술정책이 출연연을 매개로 추진되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이 도마에 올랐으며, 최근 몇 년 동안에도 출연연 거버넌스를 매개로 숱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출연연은 이른바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사회적 중요성은 높지만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출연연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자"는 제안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약 10년 동안 출연연에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출연연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시각을 논의함으로써 뜨거운 감자를 약간이나마 식혀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꺼내고 싶은 화두는 '진정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 문제가 계속 다루어져 왔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급하게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자는 한탕주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출연연 문제는 출연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종사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출연연의 '다양성'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출연연 중에는 기초연구에 가까운 기관도 있고, 응용연구나 개발연구에 중점을 두는 기관도 있다. 전자가 대학과 긴밀히 교류하고 후자가 주로 기업과 협력해야 하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모든 출연연에게 거의 동일한 정책을 주문하고 그것이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세 번째 화두는 '책임성'이다.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다양성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출연연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소용이 없다.

출연연의 많은 사업은 국민의 세금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더욱 책임성에 민감해져야 한다. 책임경영, 전략경영, 고객만족경영 등을 매개로 출연연 스스로가 '잘 되는 집안'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출연연의 '미래지향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과거에 잘 했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으며, 자꾸 과거를 들먹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에 출연연이 필요했던 맥락과 지금의 출연연에게 요구되는 사항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출연연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는 존재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도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대표적인 예로 묶음예산(Block Funding)을 들 수 있다. 정부가 큰 틀에서 연구방향과 총액만 결정하고, 각 기관에게 예산집행의 자율권을 주면 된다. 정부가 어차피 지원할 자금이라면, 출연연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자율과 책임은 동전의 양면이므로 출연연이 자체 발전계획에 따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시작되었고, 기초과학연구원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부터는 기초과학연구원을 매개로 출연연에 대한 논의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출연연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길 바란다. 번드르하게 그릴 필요도 없고 한꺼번에 바꿀 필요도 없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 진솔한 그림을 마련하고 꾸준히 시행하면 된다.

▲송성수 교수  ⓒ2011 HelloDD.com
송성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을 지냈습니다. 또 2006년부터 부산대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주요 연구실적은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특성에 관한 시론적 고찰' '대중과 과학기술' 등 다수이며, 저서로는 <과학기술의 개척자들>, <과학기술과 문화가 만날 때>,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 등 저술 활동도 활발합니다. 이외에도 '과학기술기본계획' '과학기술문화창달 5개년 계획' 등 정책연구에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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