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지질조사소가 김정호 지질자원연 박사 '찜'한 사연
산사태 예측·파괴 조기 예보위한 전기적 물성변화 기술 전수

지난 2010년 말. 김정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가 오스트리아 지질조사소로부터 한 통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함께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머나먼 땅 한국의 김 박사를 위해 새로운 연구 과제를 알아서 기획한다는 점에서 끌렸다.

오스트리아 과학연구기금(이하 FWF:Funds zur Forderung der wissenschaftlichen Forschung)에서는 브레인 파워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을 오스트리아 기초과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케해 자국의 혁신 역량 강화를 도모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김 박사의 노하우가 필요했던 부분은 지하 변형의 예측과 파괴 조기 예보를 위한 지하 전기적 물성 변화 모니터링 기술의 평가와 개선, 그리고 구축이었다. 산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지질재해 취약 지역인 오스트리아의 경우 재해를 대비해 상시 관측소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지하 파괴 예측을 위한 핵심 기술인 지하 전기비저항의 변화, 지하 전류의 발생과 그 변화를 시공간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하는 기술 개발이 미비했었다. 막대한 양의 자료가 축적되고 있었지만 자료를 해석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이 부족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지질자원연의 김 박사를 찾아나선 것이다.
 

▲오스트리아 Gschliefgraben 마을 산사태 장기 관측소가 설치된 실험장(上)과 지형(下).. ⓒ2012 HelloDD.com

풍부히 수집된 상시 관측 자료를 이용해 전기적인 지하물성의 시공간적인 변화를 지하 변형, 특히 산사태 예보 인자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자는 것이 연구의 골자다.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김 박사는 자신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도와줄 준비가 돼있었다.

오스트리아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관련 분야의 저명한 한국 과학자를 모셨으니, 이제는 연구 과제를 기획하고 심사를 통과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예산이 주어져야 연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건은 연구주제와 국제적 수준에 적합한지, 예상되는 응용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가능성과 외국인 과학자의 연구기간 체류 방법 등이었다.

연구 과제 평가는 유럽 각국의 전문가들이 평가해 공정성과 전문성을 기한다. 라이벌도 많았다. 전 과학기술계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 박사팀의 경우 수정없이 연구팀에서 원하는 대로 승인이 났다.

김 박사도 마음이 뿌듯했다. 평가 결과 김 박사에 대해서는 전기 탐사 자료 역산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자리 잡은 존경받는 세계적 수준의 권위자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또한 연구과제의 외국 책임자는 이미 수준이 검증돼 있으며, 지질자원연과의 협력은 혁신적인 4차원 토모그래피 역산 알고리듬의 개발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기대도 평가에 한 몫했다.

▲지난해 말 열린 국제워크숍에 참석한 김정호 박사. ⓒ2012 HelloDD.com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연구는 벌써 2차년도에 들어선 상태다. 김 박사는 1년 중 3개월 가량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하고 있다. 올해에는 5월에 나갈 예정이다. 김 박사는 "지난해에 가서 해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왔다.

내가 알기로 100% 예보는 있을 수 없다. 계속해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경제적 파급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전기적인 물성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응용연구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연구비는 39만9028유로(약 6억원). 이 중 25% 가량이 김 박사의 지원을 위해 쓰인다.

그는 "유럽에서는 파격적인 대우에 속한다. 정량적인 부분보다는 과제의 참신성을 가지고 평가한다"며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세계는 그 부분을 활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모르는 것 같다"고 현 한국 과학기술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꼬집기도 했다.

김 박사는 지난해 6월 그리스 명문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구 물리 탐사 분야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학교 개교이래 지질 과학 분야에서는 3번째로 수여됐는데, 김 박사는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이래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 박사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라는 정말 좋은 틀 안에서 과학자들이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며 "세계가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과학자들이 움츠러드는 게 아닌 마음껏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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