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철 표준연 박사팀, 루비듐 원자 이용한 'BEC 관측' 성공
"광레이저로 측정할 수 없었던 현상, 원자레이저 이용해 측정할 것"

서울시민 1,000만 명과 대전시민 150만 명이 동시에 맞절을 하게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들에게 동시에 맞절 명령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전화, 컴퓨터, TV, 휴대폰 등 갖은 수단을 이용해도 거리에 따라 생기는 시간차나 신호 전달 속도의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는 법. 만약 서울시민 단 한 명에게 ‘대전을 향해 절하라’고 명령했을 때, 모든 서울시민이 동시에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날이 오면 서울시민과 대전시민 모두가 동시에 맞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나만 조종해도 모두가 똑같이 움직이는 현상. 엉뚱하게만 들리는 이 모든 상황이 BEC(Bose-Einstein Condensation)에서는 가능하다. BEC 상태에서는 수많은 원자 중 하나의 원자만 조종해도 모든 원자를 동시에 조종할 수 있다. 여러 원자가 한데 뭉쳐 하나의 성격을 띠는데, 이때 물리적인 크기도 커지기 때문에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BEC 관측의 활용 범위는 무한대(無限大)다. 미시세계 측정 뿐만 아니라 극저온에서 전기저항이 0에 가까워지는 초전도현상, 화학적인 여러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 분야 중 하나인 양자화학 등 그동안 과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BEC 연구를 통해 인류 과학사의 새 지평을 펼칠 대표 연구팀이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강대임)에 나노양자연구단의 문종철 박사팀은 국내 최초로 루비듐 원자를 이용해 BEC 관측에 성공했다. 문 박사를 만나 BEC의 원리와 특성, 연구방향, 관측기술 개발이 측정 분야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 양자역학적인 현미경, BEC란 무엇일까? 우리에겐 생소한 BEC란 무엇일까. BEC는 극도로 차가운 원자 기체다. 온도가 굉장히 낮아져서 절대온도의 1억분의 1도(절대온도 1도는 섭씨로 -273.15도)인 초저온이 되면, 물체는 BEC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원자는 더 이상 입자가 아닌 파동의 형태로 움직인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온도가 낮아질수록 물질파(물질이 가지고 있는 파동성)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데, 상온에서는 0에 가까운 물질파의 크기가 초저온에서는 1/0, 즉 무한대로 커지게 된다. 이렇듯 온도가 낮아질수록 원자 간에 구분은 희미해지고, 원자들은 한데 뭉쳐 거대한 물질파 형태를 띠게 된다." 문종철 박사의 말에 따르면, BEC 상태에서는 원자들이 모여 거대한 물질파가 되어 특별한 장치 없이 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원자의 조종이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물론 앞서 예로 든 사람의 경우 일괄적인 조종이 불가능하지만, BEC 상태에 있는 원자의 경우에는 가능하다. 원자의 형태를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하면 보다 이해가 수월하다. 물질을 이루는 다양한 원자들은 제각기의 성질과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초저온 상태가 되면 원자들은 한데 뭉쳐 동일한 성질과 움직임을 띠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BEC라 한다.

▲SCIENCE지 1995년 12월 22일자에 실린 BEC의 이미지. 각기 움직이던 원자들이 한데 모여  동일한 움직임을 띠는 것을 볼 수 있다. ⓒ2012 HelloDD.com
BEC의 관측은 미시적인 세계 양자역학계를 거시적인 세계 양자역학계로 만들었다. 상온에서는 볼 수 없던 원자의 크기가 mm 단위 정도가 되며, 이에 따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양자역학계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문 박사가 성공한 BEC 관측은 지난 200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주제로, 그 실험을 재현하는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정도로 의미가 큰 분야다. BEC를 관측하기에 이른 문 박사는 초저온에서 나타나는 원자의 물질파를 이용해 기존에 있던 광학 간섭계의 한계를 뛰어넘는 원자 간섭계를 만들 계획을 밝혔다. "물질파를 이용한 원자 간섭계를 이용하면 양자역학적인 현상에서도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며, 물리상수 중에서도 미세구조상수와 같이 세밀한 측정이 가능해진다. 특히 상수를 측정하는 행위는 물리 분야에서는 가장 중요한 절차로, 물리상수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측정된다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물리 분야의 모든 계산이 달라질 정도로 절대적이다." 측정의 경우, 원자의 물질파를 이용하면 미시적인 현상을 거시적으로 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미세한 원자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됐으며, 서로 다르게 움직이던 원자들이 한데 뭉쳐 같은 움직임을 띠기 때문에 조종이 매우 수월해졌다. 따라서 측정의 질이 한층 높아지게 된다. 그는 이를 두고 "BEC는 양자역학적인 현미경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BEC 관측… "연구의 스펙트럼을 무한대로 넓히다" "BEC 관측은 여러 분야에 활용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초전도체 현상에 대한 설명이나 3차원이 아닌 1, 2차원의 물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또 양자화학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다. 학계에서는 BEC를 이용해 지구상에 없었던 물질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내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그가 BEC 관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밝히지 못한 난제들을 풀거나 전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보고, 이론에서만 가능했던 현상들을 직접 재현할 수도 있다. 그는 "BEC 연구만으로도 연구의 스펙트럼을 무한대로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정의하면서 보람을 얻는 과학자의 모습이다. 문종철 박사팀의 루비듐을 이용한 BEC 관측 연구는 단 3년 만에 이룩한 성과로,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결과였다. 표준연의 창의과제로 선정돼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으며, 주위 동료들의 꾸준한 응원이 비교적 빠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3년의 연구가 그리 수월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독일, 미국, 프랑스에서는 이미 큰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하고 있는 분야지만, 국내에서는 BEC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기 때문. 문 박사가 처음 연구를 시작한 2009년 9월부터 약9개월 동안은 변변한 연구실도 없이 연구를 이어나가야 했다. 무엇보다 활발한 과제 수행을 위해서는 함께 일할 연구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지금까지 3년의 연구 기간 중 약2년은 문 박사 혼자서 모든 일을 진행했다. 그래서인지 문 박사에게 그 동안의 연구기간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자, 그는 "파트너를 구했을 때"라고 답했다.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과제를 꾸준히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힘이 절실했던 것이다. 현재 문 박사팀은 고정 팀원 4명과 조언을 해주는 참가자 3명까지 총7명으로 구성돼 있다. 마지막으로 문 박사는 "지금까지 광레이저로는 측정할 수 없었던 현상을 원자레이저를 이용해 측정해보겠다. 굉장히 큰 정밀도의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까지 젤 수 없었던 물리현상을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BEC 분야가 기초과학 분야이므로 당장의 성과를 눈으로 보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렇지만 기초과학인 만큼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의 모든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도 충분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측정뿐만 아니라 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그의 연구가 기대된다.

▲BEC 관측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연구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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