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최근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약물복용 문제로 시끄럽다. 지난해 MVP를 수상한 라이언 브론(Ryan Braun)이 수상 직후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사이클 스타인 알베르토 콘타도르(Alberto Contador)는 올초 스포츠중재재판소로부터 금지약물 복용에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투르드프랑스 대회와 올초 지로디아탈리아 대회에서 우승한 콘타도르는 입상 실적이 취소되고 2년간 경기 출전 자격이 정지되었다. 운동선수(sportsman)의 약물 복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아마추어와 프로 모두 약물 복용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져 콘타도르처럼 한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거나 심지어 선수자격을 영구박탈 당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잘 나가던 선수가 선수자격을 전 세계적으로 박탈당하는 일도 있었다. 운동선수의 약물 복용은 승부조작만큼 중대한 잘못일까?

운동선수의 약물 복용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신경과학의 발달로 과거보다 훨씬 효과적인 치료 약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좋은 약물들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이런 치료 약물은 치료 이외에 정상인의 능력 향상(enhancement)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약물이나 기타 기술적 수단을 동원한 개인의 능력 향상이 최근 신경과학이나 나노기술 등과 관련한 윤리적 논의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켜주는 약물의 복용을 계속 금지시키는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경기력향상 약물 복용을 지지하는 이유들

스포츠에서 약물 사용을 금지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공정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적인 방식의 스포츠인 경우에 공정성의 훼손은 분명한 것 같다. 비슷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선수 가운데 한 선수가 약물을 사용해 경기력을 끌어올린다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다른 한 선수를 이길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그런데 공정성이 문제라면 약물의 사용을 금지하지 않고 보편적 접근이 허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럭비경기를 하는 여성들
럭비경기를 하는 여성들
사실, 스포츠에서도 모든 약물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 선수들은 효과가 좋다는 보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아무리 검사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약물 복용을 검사를 통해 모두 적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약물 복용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선수들은 언제나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억울함의 감정 속에는 자기 말고도 여러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데 운 나쁘게 자신이 걸렸다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약물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약물 사용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운동선수들에게 법으로 금지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제외하고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약물을 마음대로 복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선수들의 경기력이 향상될 것이다.

운동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은 운동경기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는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모든 운동선수에게 경기력 향상 약물의 복용을 보편적으로 허용한다면, 약물 복용자를 찾아내기 위한 어려운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또 운동선수들도 약물 복용 여부를 가리는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비용도 절감되고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남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유하기 위해 힘들고 고된 훈련을 참고 견뎌낸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타고난 것이 더 훌륭한 선수라면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타고난 바가 적은 선수보다 더 나은 기량을 보유하게 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혹은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나은 기량을 보유하게 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불공정의 원천이 아닐까? 오히려 능력 향상 약물이 자연의 교활한 불공평에 대한 개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능력 향상 약물로 인해 선수들 간에 자연이 준 불공평한 차별이 극복된다면, 이제 가장 애써서 노력하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고된 훈련을 이겨낸 선수가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합리적 결말이 나지 않을까.

경기력향상 약물을 금지시켜야 하는 이유들

축구경기를 즐기는 어린이들.
축구경기를 즐기는 어린이들.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다. 경기 규칙은 스포츠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특히 경쟁적 방식의 스포츠인 경우에 경기 규칙은 선수 간의 공평성을 확보하고 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능력 향상 약물을 포함해 혁신 기술을 운동선수가 모두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경우에, 선수 간의 공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혁신 기술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쪽과 이득을 얻을 수 없는 쪽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최근 국제수영연맹이 전신 수영복 사용을 금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혁신적인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신기록 제조기가 된 전신 수영복이 수영 경기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국제수영연맹은 이런 수영복을 금지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스포츠연맹총연합(Sport Accord)은 스포츠를 규정하는 기준으로 경쟁의 요소를 가지고 있을 것과 어떠한 생명체에도 결코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이외에 운동경기에 관해 특별히 고안된 행운 요소에 의존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혁신기술이나 능력향상 약물이 선수 간 불공평함을 야기하지 않도록 하려면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혁신기술과 능력향상 약물을 경기 단체 등 운동경기를 주관하는 기관 등이 선수들에게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 마치, 고대 로마의 검투사 경기에서 서로 싸울 두 검투사에게 동일한 무기 목록을 제공하고 마음대로 고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혁신 기술로 탄생한 장비나 약물 등은 경기 직전이 아니라 선수가 훈련을 하는 기간에도 제공돼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운동선수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기를 위해서 운동선수를 사육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사육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도대체 스포츠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스포츠는 타고난 재능을 훈련을 통해 갈고 닦아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타고난 재능이 오히려 불공평한 요소라는 비판은 스포츠의 목적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이해한 듯하다. 스포츠의 목적은 경쟁보다는 자기완성(self-perfection)에 있지 않을까? 국제스포츠연맹총연합이야 국제경기단체들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스포츠를 경쟁이 있는 것으로 국한해서 이해했지만, 비경쟁 스포츠도 있다. 경쟁 요소를 스포츠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는지 여부는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시선을 약간 바꾸면 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선수가 아닌 사람은 스포츠에서 주체일 수 없는가?

스포츠는 선수만이 직접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인가? 선수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스포츠에서 단지 관객일 뿐인가? 스포츠를 경쟁으로 국한해 이해하려는 관점은 스포츠의 상업화 논란과 연결되어 있다.

스포츠맨 정신과 스포츠의 목적

'스포츠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통일된 규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약간 달리 접근해서, 스포츠맨 정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에 도달할 수 있을 듯하다. 스포츠맨 정신을 이해하면 스포츠가 목적으로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으며, 그를 토대로 스포츠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스포츠맨 정신으로 이야기하는 덕목들을 열거해 보자. 인내심, 안정성, 공정성, 자제력, 용기, 끈기, 불굴의 의지 등 우리가 좋은 성품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이런 덕목들이 스포츠맨 정신이라는 말은 스포츠를 통해 이런 덕목을 함양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스포츠는 이런 덕목들의 함양을 목표로 한다는 뜻이다.  

스포츠를 통해 우리는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배우고 대인관계의 개념을 이해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성숙한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면 스포츠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무엇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체조경기 종목인 평행봉을 연기하는  선수
체조경기 종목인 평행봉을 연기하는  선수
스포츠는 개인의 인격적 성숙과 사회화를 돕는 수단이다. 스포츠는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의 기본 요소인 규칙에 대한 이해, 규칙 따르기와 규칙 위반에 따른 벌칙, 경쟁과 수용,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고난과 장애에 대한 극복 의지와 용기, 욕구와 경향성에 대한 자기통제 등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람들이 탁월한 기량과 성품을 갖춘 운동선수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스포츠에 대한 이런 이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대략 네 가지 정도이다.

첫째, 그것은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탁월한 기량을 성취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다.

둘째, 그런 기량의 희귀성이다. 그 정도의 기량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 수준에 도달한 선수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셋째,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얻기까지는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헌신적 노력과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내심, 끈기, 용기, 투지, 강한 의지 등 사회적, 윤리적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뛰어난 운동선수의 성취에는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가정한다.

넷째, 성취가 그 자신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 성취는 다른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성취한 자 바로 그 자신만의 것이며, 오로지 선수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는 점이다. 정리하면, 탁월한 기량을 가진 운동선수는 헌신적인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훈련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며 자신을 완성시킴으로써 남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에 도달한 희귀한 성공적 사례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것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탁월한 기량을 지닌 운동선수가 만일 약물에 의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이 네 가지 가정은 모두 거짓임이 판명되고, 그의 기량은 더 이상 감탄의 대상이 아니며 그는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게 된다. 스포츠에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능력향상 약물 등을 허용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스포츠의 본질을 손상시키고 스포츠 정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허용할 때, 스포츠에서도 군비경쟁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모든 선수들 개개인이 다른 선수들 모두로 하여금 나머지 선수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군비증강(경기력 향상)에 매진하도록 만들 것이다.

약물의 과다복용과 오용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선수들 가운데 성공하는 사례들이 발견될 것이고, 일반 대중은 그 성공의 주요 요인 가운데 약물이 포함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운동선수 개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의 건강 역시 약물의 남용과 과다복용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스포츠를 전문선수와 관객의 구조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포츠를 상업적 관점에서만 이해한다는 비판 이외에도 운동선수를 인격적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는 중요한 명제를 망각한 것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스포츠는 관객을 위한 겻이고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운동선수의 경기력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그럴 듯해 보인다.

스포츠가 관객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의 문제점은 위에서 언급하였다. 또한 이런 이해 방식은 운동선수를 수단으로 취급할 우려가 있다. 현대 스포츠, 특히 프로 스포츠에서 운동선수를 인격으로, 목적으로가 아니라 단지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ric Racine & Cynthia Forlini, “Cognitive Enhancement, Lifestyle Choice or Misuse of Prescription Drugs?“, Neuroethics 3, 2010, pp.1–4. Fritz Allhoff, "Germ-Line Genetic Enhancement and Rawlsian Primary Goods", Kennedy Institute of Ethics Journal vol.15, no.1, 2005, pp.39-56. J. Savulescu, R. Meulen, & G. Kahane (ed.), Enhancing human capacities, Wiley-Blackwell, 2011 Matthew Liao, Julian Savulescu & David Wasserman, "The Ethics of Enhancement", Journal of Applied Philosophy, Vol. 25, No. 3, 2008, 159-161. N. Bostrom & J. Savulescu (ed.), Human enhancement,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이상헌 교수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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